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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이선경의 讀書, 督書, 毒書

집을 지키는 문학 집을 부수는 문학

  • 이선경 | 문학평론가 doskyee@daum.net

집을 지키는 문학 집을 부수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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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정유정의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집을 지키는 문학 집을 부수는 문학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땅이 단단하고 푸른 대지가 아니라 깊은 수렁 위였다거나, 삭막한 쇳소리와 적막한 살풍경만이 펼쳐진 도살장의 한가운데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느닷없이 고의적인 일격에 의해 찾아올 때가 있다.

어떤 책들은 때로 독소(毒素)를 뿜어낸다. 특히나 최근의 책들은 겨우 안전하다고 여겼던 일상이 사실은 불안과 공포라고 냉소하며, 우리가 믿는 것은 다 거짓이며 가짜라고 이간질한다. 그래서 독서(讀書)를 하기보다는 독서(毒書)를 경계하게 된다.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진부한 말이나, 때로는 그런 위태로운 놀이를 즐겨야 한다는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이 지금 여기의 독서(讀書, 毒書)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해두고자 한다.

‘어쩌면 독(毒)이 될지도 모르는 서(書)’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는, 더 이상 스위트홈을 지켜주지 못하는 책, 추리소설에 대한 것으로 시작한다.

추리소설, 범죄소설, 탐정소설 장르의 기원을 아는가. 원래는 집을 지키려고 탄생한 장르다. 고전적 추리소설이라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떠올릴 것이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생각해보라. 대충 이런 내용 아닌가. 시체가 발견됐다 → (독자 포함) 등장인물은 충격과 공포에 빠진다 → 탐정 혹은 경찰이 나타난다 → 범인이 잡힌다 → 모두는 안심하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전적 추리소설을 읽을 때 나타나는 서프라이즈와 서스펜스, 사건 해결 후의 안도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범죄에도 나와 나의 집은 보호받는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적 장르로 탄생한 추리소설은 개인의 사유재산, 이를 위협하는 범죄자, 그럼에도 모든 것을 지켜주는 경찰(혹은 탐정)이라는 삼각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사유재산 보호제도가 일찍부터 마련된 영미권에서 추리소설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추리 장르의 발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알고 싶다면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을 참고).



누가 집을 지켜주는가

한국은 어떤가. 자본주의나 사회제도의 안정성이 추리소설 발생의 전제라면, 오랫동안 이렇다 할 추리소설이 한국에 없었던 것이 어느 정도 설명은 된다. 그럼에도 그간 번역된 추리문학이나 범죄 드라마에 대한 한국 독자(시청자)의 열광을 고려한다면, 추리소설에 대한 요구, 추리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욕망만큼은 상당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이 돼서야 한국 사회는 정유정이라는, 대중적 공감을 얻어내는 한국적 추리소설 작가를 만났다. 추리소설이라는 고전적 장르의 기원에 걸맞게 작가는 줄곧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한국적 추리 장르를 탄생시킨 정유정의 ‘7년의 밤’(2011)은 인물들 각자가 자신들의 집을 지키는 이야기다. 사건의 가해자인 최현수는 이제 막 중산층 진입을 가능케 해준 33평 아파트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범죄로부터 도망친다. 사건의 피해자인 오영제는 자신의 왕국인 세령마을과 세령호 안에 침입해 딸 세령까지 죽인 최현수를 용서할 수 없어 법 밖의 방식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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