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특전사·해병대 깨고 ‘27전 전승’ … ‘대항군’은 눈빛이 달랐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07-05-04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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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은 지형을 손금 보듯 꿰뚫고 있었다. 반복된 전투에 단련된 병사들은 ‘프로’였다. 야음을 틈탄 포 사격에 많은 병사를 잃은 지휘관은, 적의 취약지에 주공(主攻)을 집중하는 지략으로 판세를 뒤집을 마지막 기회를 노린다.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마지막 결전, 이윽고 날이 밝아온다.강원도 인제의 육군 과학화훈련단에서는 매년 십수개의 대대가 들어와 이곳에 있는 전문대항군 대대와 자유 공방전을 벌인다. 두 부대가 맞붙어 작전을 짜고 서로를 속이며 사격과 폭격을 가한다. 총에 맞으면 그대로 실려 나가는 ‘실제의 싸움’. 산과 개울을 뛰어다니는 병사들은 죽음을 실감케 하는 전투를 치르며 ‘군인’이 된다. 대항군의 전적은 27전 전승. 대한민국의 모든 내로라하는 부대가 무릎을 꿇었다.3월28일 밤새도록 벌어진 이 무적의 ‘가상 북한군’과 ○○사단 대대의 전투훈련 과정을 현장에서 함께 뛰며 낱낱이 기록했다. 과연 ‘전쟁의 신’은 누구에게 미소지을 것인가.

    개전 초기 대대장 전사는 다반사, 훈련군 60% 이상이 전사처리

    종심(縱深) 깊은 배합전 구사해 훈련군 공격 무너뜨리는 대항군

    실전과 똑같은 훈련… 아군 오인사격 희생자만 15%

    ‘소모 소위’는 빈말 아니다…엄청나게 높은 분대장·중대장 희생률



    “실력으로 불운 극복하고 노력으로 행운 만든다”

    “대항군 놈들 패주면 안 되겠습니까” 감정 격해진 훈련군

    전사처리되면 ‘죽음의 의례’ 치러야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무릇 전투에서 공격은 ‘주공(主攻)’과 ‘조공(助攻)’으로 나눠 시작된다. 주공은 전선 돌파를 담당하고, 조공은 주공의 전선 돌파가 용이하도록 적을 엉뚱한 곳에 붙잡아두는 일을 한다. 가장 이상적인 공격은 아(我) 조공이 적(敵) 주력을 붙잡아두는 사이, 아 주공이 적 조력을 공격해 전선 돌파에 성공하는 것이다.

    한국의 육군 부대는 대개 ‘3단위(일부는 4단위)’로 편제돼 있다. 3개 소대가 1개 중대이고, 3개 중대가 1개 대대, 3개 대대가 1개 연대, 3개 연대가 1개 사단, 3개 사단이 1개 군단을 이룬다. 따라서 공격은 ‘2대1제’로 펼치는 경우가 많다. 2의 세력으로 주공을, 1의 세력으로 조공을 만드는 것인데, 이는 가로로 ‘2대1제’를 구성한 경우다.

    전투는 생물이다

    ‘2대1제’는 세로로도 구성한다. 전선 돌파는 대개 돌격과 초월(超越)로 구성된다. 적 방어선에 구멍을 내는 ‘돌격’은 가장 힘든 공격이므로 2개 부대가 담당한다. 구멍이 생기면 뒤에 있던 1개 ‘예비부대’가 돌격부대를 초월해 들어가 돌파구를 확장한다. 예비부대의 초월공격으로 구멍이 확대되면 지휘관은 후방에 있던 전차부대를 투입해 ‘봇물을 터뜨려’ 버리는데, 이렇게 되면 전투는 90% 이상 이긴 것이 된다.

    아 주공의 공격을 받는 곳이 뚫릴 것 같으면, 적은 아 조공과 대치하고 있는 그들의 주력 일부를 빼내 위험한 곳으로 이동시키려 한다. 적이 이러한 기동을 감행해 구멍을 막아버리면 아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따라서 아 조공은 주공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돌격을 반복해 적 주력을 붙잡아놓아야 한다. 그 사이 초월공격에 성공한 주공이 적 지휘부가 있는(또는 있다가 도주한) 고지를 점령하고, 그 다음 전투를 유리하게 치를 수 있는 ‘차후(此後) 목표점’을 점령한다.

    이렇게 되면 아 조공과 대치하던 적 주력은 그들 지휘부와 통신이 두절돼 ‘목 잘린 닭’ 신세가 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군대에서 우왕좌왕 각생(各生)을 도모하는 무리가 되는 것. 이러한 잔병(殘兵)을 ‘유후병력’이라고 하는데, 유후병력은 아 조공과 주공이 합세해 소탕한다. 그러나 ‘2대1제’니 ‘돌격과 초월’이니 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전투는 살아 있는 ‘생물’인지라 2대1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법이 없다.

    ‘생물’인 전투는 때론 조공과 주공을 바꿔놓기도 한다. 기대했던 주공이 돌파를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거짓 돌격’을 맡은 조공이 전선을 뚫는 것이다. 예비부대가 없는 조공으로서는 초월공격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승리감은 초인(超人)을 만든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이지만, 조공 병사들은 승리감에 젖어 성난 파도처럼 밀고들어가 깃발을 꽂아버리는 것이다. 역사는 조공이 주공을 앞지른 사례를 종종 보여준다.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어둠이 깔린 숲 속에서 은밀하게 작전회의를 하는 훈련군 대대장 캠프.

    ‘전진(前進)’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육군 1사단은 ‘평양 입성 선봉부대’로 유명하다. 1사단은 미군 정예사단과 벌인 경쟁에서 기막힌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이 타이틀을 얻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서울을 탈환한 유엔군은 1950년 10월3일 0시부로 38선을 넘는 무제한 북진 작전을 승인했다. 이 작전을 위해 압록-두만강까지 진격할 주공과 조공을 선발했는데, 평안북도 끝까지 진격할 주공은 미 8군이, 함경북도 북단까지 밀고 갈 조공은 미 10군단이 맡았다.

    주공을 맡은 미 8군은 평양을 점령하고 북진할 주공으로 미 1군단을 정하고, 주공의 평양 점령을 돕기 위해 적을 엉뚱한 곳에 붙잡아놓을 조공 임무는 한국군 2군단에 맡겼다. 주공을 맡은 밀번 미 1군단장은 다시 평양 돌격을 담당할 주공으로 기동력이 좋은 미 1기병사단을, 목표점은 같지만 적을 붙잡아놓는 조공으로 미 24사단을, 예비부대로 영연방 27여단을, 그리고 잔병 소탕에나 참여하는 최후 예비부대로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한국군 1사단을 지명했다.

    그러자 백 준장이 “내 고향이 평양이라 평양 공격 루트는 내가 가장 잘 안다. 평양 공격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며 거칠게 항의해, 밀번 1군단장은 미 24사단과 한국군 1사단의 임무를 바꿔주었다. 유후병력 소탕전에나 참여해야 할 한국군 1사단이 일약 조공이 된 것. 밀번 1군단장은, 주공인 미 1기병사단은 ‘경의선’ 상에 있는 개성-사리원-황주를 거쳐 최단거리로 평양을 공격하고 한국군 1사단은 신계-수안을 거쳐 평양을 공략하도록 했다.

    이러한 재조정 때문에 미 1군단의 출동은 10군단보다 늦어졌다. 10월7일 주공인 미 1기병사단이 38선을 넘고, 조공인 한국군 1사단은 10월11일에야 38선 너머로 북진할 수 있었다. 백선엽 리더십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투에서 미 육군의 패튼 장군은 전차와 보병부대를 혼합해 돌진하는 전법으로 독일 지역을 가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미 1기병사단은 유명한 기동부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백 사단장은 공격 개시 전 밀번 1군단장을 졸라 미군 전차 10대(1개 전차중대)를 지원받았다. 그리고 한국군 보병과 미군 전차를 섞어 함께 돌격하는 ‘패튼 전법’을 구사해 재빠른 돌격에 나섰다. 나흘이나 늦게 출동했지만 한국군 1사단은 곧 미 1기병사단과 거의 비슷한 깊이에 전선을 만들었다.

    주공보다 빨랐던 조공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군 1사단 병사들이 흥분했다. 이들은 미 1기병사단보다 먼저 평양에 도달하자며 “전진, 전진!”을 외쳤고, 그 기운에 전염된 미 전차중대원들도 덩달아 “위 고우(We go), 위 고우!”를 외치면서 최선을 다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한국군 1사단이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 육군 최고의 기동부대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미 1기병사단도 진격 속도를 높였다.

    그로 인해 주공과 조공의 역할 구분이 모호해지고, 미 1군단 사령부는 어느 부대가 먼저 평양에 도착하는지를 판단하는 ‘심판관’ 처지가 되었다. 미 1군단 사령부는 정찰기를 띄워 양쪽의 진격 속도를 살피며 돌격을 독려했다. 피를 말리는 듯한 이 경쟁은 10월19일 한국군 1사단이 주공과 조공의 합류점인 대동교 앞 선교리에 40분 먼저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자 한국군 1사단에 배속된 미 전차부대원들은 기쁨에 들떠 ‘Welcome 1st Cav. Division - from 1st ROK Division Paik: 한국군 1사단장인 백선엽은 미 1기병사단의 도착을 환영한다’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미 1기병사단이 도착하자 종군 사진기자단이 이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셔터를 누름으로써, 보병으로 편제된 한국 사단이 미국의 최정예 기동사단을 이긴 확실한 증거가 만들어졌다. 이 사건으로 한국군 1사단은 ‘전진’이라는 별명과 ‘평양 입성 선봉부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렇듯 한국군 1사단이 평양에 먼저 도착한 것은 조공이 주공을 앞지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현실 전투에서 이러한 기적은 자주 발견되지 않는다.

    제1부 첫째 날 - 벼락이 떨어져도 전투는 한다

    이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고 3월28일 강원도 인제에 있는 육군 과학화훈련단(약칭 과훈단)을 찾아갔다. KCTC(Korea Combat Training Center)라고도 하는 이곳엔 매년 17~19개의 대대(훈련군)가 들어와 이곳의 전문대항군(대항군) 대대와 자유 공방전을 벌인다. 훈련군은 평소 자기 편제 부대에다 유사시 연대와 사단으로부터 지원받거나 배속 부대를 이끌고 들어온다.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내가 누구를 쐈고 누구 총에 맞았는지를 밝혀주는 개인기록카드.

    잠시 후 전원 안전하다는 표시가 나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붕대를 감은 병사가 “10분, 정말 더럽게 기네. 아직도 6분을 기다려야 하잖아” 하고 투덜거렸다. 이윽고 유닛에서 10분이 지났다는 신호가 나오자 병사는 “됐다 됐어”를 외치며 총을 들고 신나게 달려갔다.

    그때 그의 유닛이 또 울렸다. 유닛을 들여다본 병사는 절망적으로 “뭐야. 또 맞았네. 중상이래. 중상!”이라고 외쳤다. 후송될 길이 없는 곳에서 중상을 입으면 2시간 후 전사로 처리된다. 코미디 활극 같기도 했지만, 마지막 훈련군은 확실히 전투에 몰입해 있었다.

    감정이 격해지게 하는 것은 가장 쉽게 초인을 만드는 방법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집중이 되고 용기와 집착과 돌파력이 생긴다. 군대에 간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악으로, 깡으로!”이다. “악으로 깡으로!”는 감정을 일으켜 집중하라는 군대식 주문이다. 과거의 군대는 구타와 얼차려로 “악으로 깡으로”를 유도했다. 그러나 현대의 군대는 실전을 방불한 연습으로 이를 뽑아올려야 한다. 훈련은 경험이 아닌 과학으로 이뤄져야 한다.

    집중도가 높아진 만큼 병사들은 사격에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집중을 방해한 것은 다름 아닌 K-2 소총의 격발 불량이었다. 훈련군 병사들은 사격을 하다 말고 총알이 나가지 않는다며 탄창을 치거나 뽑아내 다시 실탄을 하나하나 점검하기도 했다. 다급한 상황에 벌어지는 격발 불량이 답답한지 몇몇 병사는 뽑아낸 탄창을 헬멧에 두드려보기도 했다.

    K-2 소총의 격발 불량은 대항군에서도 똑같이 발견됐다. 그러나 대응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대항군 병사들은 격발 불량을 다반사로 겪은 듯 가볍게 탄창을 치는 것 외에는 다른 동작을 하지 않았다. 탄창을 뽑아 총알을 다시 삽탄하는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않고도 이들은 문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훈련군보다 사격에 대한 집중도가 높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격발 불량은 탄피받이 때문에 생겨났다. 미군도 야지(野地) 훈련에서는 공포탄을 사용하지만 이때 발사한 공포탄의 탄피를 회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군은 탄약유출 사고를 막기 위해 사용한 탄피를 전량 회수한다. 야지를 달리면서 사격하는 병사에게 떨어진 탄피를 주우라고 할 수 없으므로 소총에 탄피받이를 달아주었다.

    ‘했다 치고’가 가져온 결과

    탄피받이는 작은 주머니다. 이 주머니 입구에 먼저 나온 탄피가 걸리면 다음 탄피가 K-2의 약실을 빠져나오지 못해 격발이 멈춰지는 것이었다. 탄피받이만 떼어내도 병사들의 사격 집중도는 현저히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과훈단측은 “탄피 회수라는 육군의 방침이 바뀌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방침 때문에 일부 병사들은 교전이 끝나거나 전사한 다음 지나온 곳을 더듬어가며 잃어버린 탄피를 찾았다.

    대항군 단도화기사격조를 놓친 훈련군 병사들은 1참호선이 보이는 산마루로 내려와 사격하기 시작했다. 한 병사는 K-2기관총을 걸어놓고 콩 볶는 듯한 연발사격을 퍼부었다. 그 총소리에 끌렸는지 이곳저곳에서 각생을 해오던 병사들이 몰려와 제법 큰 세를 만들었다. 그중에는 소대장도 있었으나, 각자의 소속이 다른 때문인지 소대장은 이들을 통솔하지 못했다. 훈련군은 통일된 지휘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건너편 산에서 쏘는 대항군의 사격솜씨는 대단했다. 구덩이에 들어가 사격하던 훈련군 병사들이 “어 내가 맞았네” 하며 사격을 중단했다. 이 마지막 훈련군은 대항군측이 포 사격을 가함으로써 결국 전멸하고 말았다. ○○사단 대대 주공은 1참호선에서 전멸하고 만 것이다.

    흥미로운 것이 훈련군 병사들 중에는 안경을 쓴 사람이 많지만 대항군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대항군은 화기중대 요원이 아니면 안경 쓴 사람은 뽑지 않는다고 했다. 밤새 1참호선 근처까지 달려온 훈련군의 안경은 뿌옇게 흐려 있었다. 그러나 긴박한 상황 탓으로 안경 닦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대항군이 한발 한발 조준사(照準射)를 한다면, 훈련군은 대략 방향만 맞추는 지향사(指向射)를 하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안경 쓴 젊은이가 많다는 점은 한국군이 풀어야 할 숙제일 수밖에 없다.

    메두사의 머리

    애초 ○○사단 대대장은 개활지 쪽으로 2개 중대를 밀어넣어 전선을 돌파하고 이어 예비부대로 갖고 있던 1개 중대를 투입하는 초월작전을 구사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주공이 산화하긴 했지만 훈련군은 아직 초월부대를 갖고 있다. 초월작전은 확실하게 전선을 넘는 것이라 적잖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은폐 엄폐할 곳이 적은 개활지를 통과하려면 뭔가 방어막이 있어야 한다. 초월부대는 언제 당도할 것인가.

    미국 NTC와 한국 KCTC

    미 11기갑기병연대 참조해 만든 대항군 11대대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KCTC로 불리는 육군 과학화훈련단(단장 이재완 준장·사진)은 NTC(National Training Center)란 이름을 가진 미 육군의 과학화훈련단을 모방해 만든 것이다. 미 육군은 1980년 10월16일 모자브 사막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포트어윈에서 NTC를 개장했다. 3750만평인 KCTC보다 10배 정도 넓은 1000평방마일(약 3억평) 규모의 NTC에서는 다양한 여단급 전투가 치러진다.

    요즘 미군은 이라크를 안정화하는 평정작전을 벌이고 있다. 평정작전은 테러진압 작전처럼 실질적인 전투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 용어로는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으로 불린다. NTC에서는 중무장 부대가 맞붙는 기갑전투에서부터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까지 다양한 전투를 연습한다.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에서 치르는 전투보다 NTC에서 치른 전투가 훨씬 더 힘들었다고 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이 반복된다.

    일반적으로 대대 이하의 부대는 고유 번호를 갖고 있지 않다. 연대급 이상 부대는 1연대(또는 1사단), 7연대(7사단), 26연대(26사단) 식으로 고유번호를 갖고 있지만, 대대 이하 부대는 1대대(또는 1중대, 1소대), 2대대, 3대대를 반복할 뿐 고유의 숫자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KCTC에 있는 대항군만은 ‘11대대’라는 고유 번호를 갖고 있다. 대항군 대대가 11이라는 고유 번호를 부여받은 것은 미국 NTC의 사례를 모방한 것이다.

    미국 NTC에서 대항군으로 활동하는 부대는 11기갑기병연대이므로 한국은 KCTC에서 대항군으로 활약할 대대를 11대대로 명명했다. 한국의 11대대는 KCTC를 위해 창설됐으나 NTC의 11기갑기병연대는 1901년 2월 흑마(黑馬)를 마크로 삼아 창설된 유서 깊은 부대다. 전쟁위험이 줄어들면 해체됐다가 전운이 감돌면 재편성되기를 반복해온 부대는 포트어윈에 NTC가 만들어지면서 대항군 임무를 맡게 됐다.

    KCTC를 만들기 전 많은 육군 관계자가 NTC를 견학했다. 그 때문에 한국군도 대항군을 만들면 11대대로 명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11대대원은 1군 예하 GOP 사단으로 배치될 장정을 훈련하는 102훈련소에서 신체검사 1등급을 받고 안경을 쓰지 않은 장정 가운데 지원자가 있을 경우 우선 선발한다. 11대대의 명성이 높아지자 요즘에는 이곳 배치를 지원하는 장정이 많아 심사를 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육군에는 보병 포병 공병 기갑 등 여러 병과가 있는데, 이러한 병과가 함께 참여해 치르는 전투를 ‘제병과 협동작전’이라고 한다. 제병과 협동작전을 치르는 최소 단위의 부대가 여단이다. 여단에는 보병연대와 기갑중대, 포병대대, 공병중대, 수색중대, 통신중대, 헌병소대 등 제병과 부대가 들어와 편제된다. 육군은 조만간 토지를 약간 더 수용해 KCTC를 여단급 훈련장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11시가 되자 개활지 쪽에서 흰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사단 대대장이 초월부대의 공격을 위해 연막탄을 투하한 것이다. 취재진은 초월공격을 보기 위해 재빨리 개활지로 내려왔다. 그런데 연막탄이 다 타 꺼질 때까지 예비부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투에는 성격이 다른 여러 부대와 수많은 인원이 참여하므로 이들의 움직임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그러나 훈련군의 움직임은 이가 들어맞지 않는 듯했다.

    과훈단 관계자들은 한국군의 오랜 병폐 가운데 하나로 ‘했다 치고’를 꼽는다. 하지 않은 것인데 한 것으로 치고 다음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했다 치고’는 너무 뻔하거나, 귀찮은 일, 과거부터의 오랜 관행에 자주 적용돼왔다.

    주둔지에서는 완전군장을 하고 시속 4㎞로 산악을 통과하던 부대도, 지도를 보며 가야 하는 낯선 곳에서는 날씨마저 나쁘다면 훨씬 속도가 느려진다. 날씨 나쁜 낯선 곳에서 독도법으로 길찾기를 해봐야 그러한 상황에서의 산악 돌파 속도를 추정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과거 경험을 토대로 적당히 추산해 작전계획을 짠다면 그 계획은 현실과 유리될 수밖에 없다. 전투는 과학이다. 훈련본부 관계자들은 훈련군 지휘관에게 “했다 치고를 배제하고 실제로 해본 결과만 작전계획에 반영하라”는 첫 번째 충고를 전하고 싶어했다.

    ‘과학화’라는 단어가 앞에 붙은 만큼 이 훈련장은 과학화된 자료를 적잖이 생산하고 있었다. 6·25전쟁 당시 우리 군에서는 소대장이 하도 많이 희생돼 ‘소모 소위’란 말이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전에서도 반복되고 있을까. 과훈단은 그 정확한 대답을 들려준다. 자유 공방전에서 훈련군 분대장의 86%, 소대장의 44%, 중대장의 76%가 희생된다는 통계를 내놓은 것. 훈련군 병사의 평균 손실률은 52%이므로, 분대장과 중대장은 병사보다 더 많이 희생되고 소대장은 상대적으로 덜 희생되는 것으로 나왔다.

    초전에 지휘관이 희생된 부대는 지휘할 사람이 없어 임무 수행에 중대한 지장을 받게 된다. 이 경우 다음 선임자가 지휘권을 행사해 임무를 수행해야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다. 이 문제에서도 훈련군과 대항군은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항군은 경험이 많은 탓인지 지휘관이 희생돼도 메두사처럼 다음 머리가 나타나 부대를 지휘하지만, 훈련군에서는 이것이 여의치 않았다. 훈련군도 형식상으로는 다음 지휘자를 선정해놓았으나 실전에서는 거의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지휘관이 희생된 훈련군에서 병사들은 대개 각생을 도모하거나 단독작전을 했다.

    훈련군 병사의 손실률이 52%인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과훈단 훈련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훈련군은 주간방어 작전을 할 때 가장 손실률이 높고(64%), 이어 주간공격(56%), 야간공격(46%), 야간방어(42%) 순으로 손실률이 낮다. 주간작전에 희생자가 많다면 지휘관은 야간작전에 무게를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투는 실전이므로 ‘어쩔 수 없는’ 오인사격 등으로 우군이 우군에게 피해를 보는 사고가 일어난다. 훈련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우군에 의한 피해는 2005년 25%였으나 2006년에는 15%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라크전에 투입된 미군이 우군에 의해 피해를 보는 비율이 17%라고 하니 한국군도 그와 비슷한 비율을 보이는 것이다. 아군끼리의 오인사를 줄이려면 그 비율부터 알아야 하는데, 과훈단의 자료는 그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훈련이 끝나면 과훈단은 각 병사에게 언제 누구를 사살했고, 자신은 언제 누가 쏜 총이나 아포에 의해 전사했으며, 자신을 쏜 우군은 누구였고 자신이 쏜 우군은 누구였는지가 적힌 ‘개인전투기록카드’를 전달한다. 확실한 성적표가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야 발전할 수 있다. 한마디로 과훈단은 부대별 개인별로 ‘네 자신을 알라’를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다.

    “약이 올라 참을 수가 없네요”

    그 사이 연막탄이 꺼지면서 다시 고요가 찾아들었다. 그러자 헬멧을 벗은 훈련군 병사들이 도로로 내려와 정렬했다. 밤새 진흙탕을 뒹굴었기 때문인지 흙투성이가 많았다. 그새 더위가 느껴질 정도로 온도가 많이 올라갔으므로 전투복을 벗고 개울로 내려가 씻는 병사도 있었다.

    그러나 병사 가운데 한 명이 대항군 쪽을 가리키며 “통제관님, 개울 건너가서 저놈들 좀 패주고 오면 안 되겠습니까. 약이 올라서 참을 수가 없네요”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지막 단계에서 전사한 것이 못내 억울한 모양이었다. 전투 집중도가 올라가지 않으면 이런 말은 나올 수 없다. 다음 전투훈련 때 이 병사는 훨씬 더 영악해져 있을 것이다.

    이들이 ‘죽음의 의례’를 치르기 위해 빠져나간 직후, 저 멀리 한 사람씩 절개면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개활지로 내닫는 병사들이 보였다. 뒤늦게 도착한 초월부대인 것 같아 그쪽으로 달려갔다. 취재진이 달려가면 대항군의 시선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취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초월부대원들은 산에서 내려와 개울가에 은신했다.

    그곳은 격류에 떠내려온 고사목이 엉켜 있어 건너편 산에 포진한 대항군이 보기도 쏘기도 힘든 곳이었다. 강력한 방어선을 뚫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우회 침투다. 초월부대는 그것을 실현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앞에 펼쳐진 넓은 자갈밭을 가리키며 “한 사람씩 지그재그로 뛰어가라. 나머지는 엄호를 하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이들은 한 사람씩 30여m는 됨직한 자갈밭과 개울을 건너 그쪽 개울가에 엎드려 사격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건너온 훈련군은 대략 20명에 이를 것 같았다.

    개울을 건너온 이들을 대항군은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대항군의 작전을 살펴보기 위해 대항군 뒤로 옮겨갔다. 그런데 이쪽에 있는 대항군은 1개 분대도 되지 않을 듯했다. 개활지는 넓은 데다 훈련군 병사들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갈대가 무성해 1개 분대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훈련군은 마지막 공격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듯했다. 이때 눈길을 끈 것이 대항군 분대장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고도로 집중한 듯 벌겋게 얼굴이 달아 있었다. 그는 훈련군을 향해 낱발 사격을 하면서 틈틈이 무전기로 포 사격을 유도했다. 그는 그곳 지리를 꿰뚫고 있는 듯 “○○지점 북서쪽 50m” “△△지점 서쪽 30m”식으로 포탄을 떨어뜨려야 할 위치를 정확히 불러줬다. 이것이 위력을 발휘했다. 훈련군의 개울 도하가 중단된 것이다.

    지상전은 보병이 목표점을 장악해야 끝난다. 보병은 마지막 깃발을 꽂는 부대이기에 가장 중요한 병과로 여겨지지만, 포병 없는 보병은 사상누각이다. 사단이 작전을 할 때 유류와 탄약을 더한 사단 전체 물동량에서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포병의 물동량이다. 사용하는 탄약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러한 통계가 나오는 것이다. 연대장 이상의 고급 지휘관은 포병부대를 이용해 전투를 치른다. 연대나 사단, 군단 포병이 어떤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보병대대의 승부가 결정된다. 칭기즈칸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꼽히는 나폴레옹이 바로 포병 활용의 달인이었다.

    포병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전방에 나가 있는 보병부대에서 정확한 포 사격을 유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항군 분대장은 침착하게 정확한 포 사격을 유도했다. 1인2역을 하는 그의 움직임이 하도 기민해서 기자와 훈련을 참관하러 온 ○○사단 소속 장교는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불청객에게 신경이 쓰일 텐데, 그는 단 한번도 외부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사격을 하느라 떨어뜨리고 간 무전기를 주워줘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불운을 이긴다

    잠시 후 일부 훈련군 병사가 대항군이 있는 산 위로 올라가 뒤에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분대장은 상병에게 무전기를 건네주며 “내가 저놈을 잡으러 갈 테니 여기를 맡아라” 하고 하고 단신으로 산으로 뛰어올라갔다. 적진이 아닌 자기 진영에서 단도화기사격조 임무를 수행하려고 달려간 것. 그런데 업무인계를 받은 상병도 기막힌 솜씨를 발휘했다. 포 사격을 유도하는 틈틈이 ‘서서 쏴’를 하던 그는 “맞았는데 왜 헬멧 안 벗어. 야 이상하네”를 연발하더니 기어코 개울을 건너오려는 훈련군을 전멸시켰다.

    개활지를 크게 우회한 초월부대의 일부가 개울을 건너 대항군이 있는 산 위로 넘어간 것은 본부에서도 화제가 됐다. 훈련이 끝난 후 과훈단장인 이재완 준장(육사 33기)은 “대항군은 훈련군의 주공 방향을 완전히 잘못 예상했다. 초전에 전사했다가 살아나긴 했지만 훈련군 대대장은 머리싸움에서 대항군 대대장을 눌렀다”며 이렇게 말했다.

    “훈련군에서는 모두 10명이 1참호선을 돌파했다. 수색소대조 5명과 초월부대원 5명이 그들이다. 수색소대조는 상당히 깊이 침투했으나 이들이 들어간 곳에는 대항군 주요시설이 없었다. 5명의 초월부대원들은 단일 지휘체제로 묶이지 못했다. 초월부대의 공격이 시작될 무렵 살아있던 초월부대원들이 후방을 공격하고 돌파에 성공해 지휘체제를 만들어 공격했다면, ○○사단 대대는 사상 최초로 2참호선을 돌파해 대항군 목표점을 공략하는 부대가 됐을 것이다. 상대의 전술을 헛짚었다는 점에서 대항군은 불운했지만 실력으로 불운을 극복했다.”

    과훈단 관계자들은 명예심이 강한 부대일수록 전투 집중도가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벌인 전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병대 1사단 대대와 벌인 훈련이었다고 한다. 전원 자원자로 구성된 해병대 1사단 대대는 패하긴 했지만 끝까지 포복하고 끝까지 달려가는 등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역시 해병대”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올여름에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해병대 2사단(청룡부대)의 대대가 들어오는데, 과훈단 관계자들은 이 부대와 치를 전투를 올해 최고의 ‘빅 매치’로 꼽고 있었다.

    KTCT가 한국군을 구한다

    “실력으로 불운을 극복한다”는 말은 훈련본부에서는 화두처럼 떠도는 경구였다. 훈련본부 관계자들은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과훈단 훈련의 목표”라는 말을 자주했다. 이순신은 26번 싸워 26번을 이겼다. 이러한 전승은 세계 해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순신을 덕장으로 묘사한다. 수많은 모함을 받아 두 번이나 백의종군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왜군에게 잃은 그를 복장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덕장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난중일기’에서 드러나는 이순신은 덕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는 소집명령을 어긴 부하를 가차없이 베어내는 처형을 28번 반복했다.

    과훈단의 대항군도 27번 싸우면서 여러 차례 불운을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승을 기록한 것은 그들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실력으로 불운을 극복한다’는 명제를 수립하기 위해 대항군은 명예심을 활용하고 있었다. 절대로 훈련군에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집중력을 일으키고, 집중력이 그들을 초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명예를 지키겠다는 자기관리를 하면서 그들은 ‘전투 프로’가 됐다. 지리를 잘 알고 체력이 우수하다는 장점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과학을 배제하고 경험만으로 펼치는 전투는 패배를 가져온다. ‘전투는 과학’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한국은 이를 배제한 국방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군 병력은 117만인데 우리는 2020년까지 68만인 병력을 50만으로 줄이겠다고 한 것이다. 감군은 병력을 줄이더라도 국가 안보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될 때 하는 것이다.

    전사가(戰史家)들에 따르면 380여 개에 이르는 세계 주요 전쟁 가운데 적은 병력을 가진 군대가 많은 병력을 가진 군대를 이긴 것은 1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워게임으로 분석해보면 적은 병력을 가진 군대가 많은 병력을 가진 군대를 이길 비율은 4%대로 떨어진다고 한다. 소군(小軍)이 대군(大軍)을 이긴 사례가 경험상으로는 15%이고 과학적으로는 4%에 불과하다면, 주한미군의 감축이 확정된 상태에서 펼치는 한국군 감군 문제는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감군이 확정된 지금 전력증강을 도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모든 부대를 대항군처럼 만드는 것이다. 미 육군도 그들의 과학화훈련장에서 부대 수준을 높이는 훈련을 거듭하며 감군을 진행해왔다. 지금 한국 과훈단은 대대급 보병 전투만 치를 수 있다. 따라서 기동전을 비롯한 다양한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빠른 시간 내에 과훈단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육군은 과훈단을 여단급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확충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 없이 감군만 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훗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기동전을 치를 수 있는 규모로 과훈단을 확대한 다음에는 대항군을 주한미 2사단 대대와 붙여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항군이 미 2사단 대대를 꺾는다면 과훈단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고, 한국은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감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전략가는 “과훈단이 한국의 미래 안보를 책임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훈련군과 대항군의 통신내용과 기동상황을 보고 있는 훈련통제본부.

    무기는 이 부대가 사용해오던 것에 마일즈(MILES·Multiple Integrated Laser Engagement System·다중통합레이저 교전체계)’ 장비를 부착해 사용한다. 훈련에 들어간 병사들은 공포탄을 제공받는다. 따라서 소총 방아쇠를 당기면 요란한 폭음과 함께 공포탄이 터지고, 동시에 소총에 부착한 마일즈 유닛(unit)에서 레이저가 발사된다. 이 레이저를 맞은 상대는 그의 몸에 부착된 마일즈 유닛이 “삐삐~” 하고 울리며 유닛에 ‘전사’ ‘중상’ ‘경상’ 가운데 어느 하나가 표시된다.

    중상이나 전사로 표시된 병사의 총은 더 이상 격발되지 않는다. 이러한 병사는 헬멧을 벗고 도로로 나와야 한다. 중상자는 2시간 이내에 후송되지 못하면 전사자로 처리되는데, 전사한 병사들은 훈련장을 빠져나와 ‘죽음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 전사자의 유해는 화장해 현충원에 모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단급 이상 부대에는 이러한 장례를 전문으로 하는 ‘영현(英顯)중대’가 있다. 전장에 나온 영현중대 요원들은 전사자의 유해를 영현 백에 담아간다.

    헬멧을 벗은 채 훈련장을 이탈한 전사자들은 영현중대 요원들이 펼쳐놓은 영현 백 안에 스스로 들어가 누워야 한다. 낯선 영현 백 안으로 몸을 넣을 때까지는 어색한 기분만 든다고 한다. 그런데 백의 지퍼가 올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비로소 병사들은 ‘내가 죽으면 이렇게 처리되는구나’ 하며 생사(生死)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과훈단에서는 주간 공격과 주간 방어, 야간 공격과 야간 방어 네 번의 전투를 치른다. 한 차례의 전투가 끝나고 새 전투가 준비되면 전사자들은 부활한다. 이때 죽음의 의식을 치러본 병사들은 확실히 생존의지와 전투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훈련군 대대와 싸워주는 대항군 대대는 여간 강력하지 않다. 이 부대는 2005년 이 훈련을 시작한 이래 27번을 싸워 27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주야간 공방전이라는 네 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는 기록을 27번이나 반복해온 것이다. 지난해에는 ‘전투 프로’인 육군 특전사 가운데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3특전여단 예하 대대와 대한민국 유일의 ‘상륙군’ 부대인 해병대 1사단 예하 대대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군복 색깔이 다른 부대의 배합전

    대항군은 군복 색깔이 약간 다를 뿐 한국군과 똑같은 장비와 무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차이는 있다. 북한군은 AK(아카보) 소총을 쓰고 한국군은 M-16을 개량한 K-2 소총을 사용한다. 대항군 병사들은 K-2 소총을 사용하나, 이들이 쏜 총알(레이저)을 맞은 훈련군 병사의 마일즈 유닛에는 ‘AK’가 뜬다. 반면 훈련군이 쏜 총알을 맞으면 ‘K-2’가 나타난다.

    대항군은 정보사령부가 북한군 귀순자들을 통해 입수한 북한군 전술을 활용해 전투한다. 북한군 전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피아(彼我)가 맞붙은 전선에서 크게 싸우는 ‘대규모 전투’와 적 후방으로 은밀하게 집어넣은 침투부대로 하여금 상대 후방을 교란하며 싸우는 ‘소규모 전투’를 함께 치르는 ‘배합전(配合戰)’이다. 6·25전쟁 초기 북한군은 이 전술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한국군 1사단에 평양 점령 기회를 넘겨주었던 미 육군 24사단은 6·25전쟁에 가장 먼저 참여한 미군 사단으로 유명하다. 1950년 7월13일쯤 이 부대는 대전 방어에 나섰다가 사단장인 딘 소장이 인민군 6사단에 생포되는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다. 미 24사단을 공격한 것은 인민군 3사단과 4사단이었다. 이들은 피난민 속에 집어넣은 침투조로 24사단 후방을 교란하며 동시에 정면으로 미 24사단을 밀어붙이는 배합전을 구사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미 24사단 병사들은 적과 맞붙은 정면은 물론이고 후방에서도 총소리가 들려오자 ‘인민군이 24사단 방어선을 돌파한 것’으로 착각하고 각생을 도모해 모든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사단장인 딘 소장도 후퇴했다. 그런데 한반도 지리에 어두운 운전병이 부산 쪽으로 지프를 몬다는 것이 호남 쪽으로 몰아버렸다. 그 바람에 딘 소장은 한 달간 호남지역에 숨어 있다가 그 지역을 장악한 인민군 6사단에 붙잡혀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포로로 있었다.

    이러한 전술을 구사하는 대항군이 24전승을 기록하자 일각에서는 ‘북한군 전술이 한국군보다 더 좋아서 그런 결과를 낳은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다수의 군 관계자는 “북한군 전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항군이 워낙 잘하기 때문이다. 전술에는 우열이 없다. 차이는 전술을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에 있다”고 반론을 펼친다.

    과훈단에 입소하는 훈련군은 GOP 경계나 해안경계를 하던 상비사단들이다. 팔팔한 병사들로 구성된 정예부대들인데 왜 이들은 대항군에 나가떨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는 것이 과훈단 취재에 나선 목적이었다.

    3분의 1 전력으로 방어 나선 대항군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철조망을 치는 대항군 병사들.

    과훈단의 중추는 EXCON(Exercise Control Center)으로 불리는 ‘훈련통제본부’다. 대항군과 훈련군은 그들끼리만 통하는 주파수로 무전을 주고받지만, 본부는 양쪽 무선을 다 듣는다. 대항군과 훈련군 부대원이 팔뚝과 헬멧에 붙이고 있는 마일즈 유닛은 30초마다 제 위치를 보고하므로, 본부는 병사 개개인의 동선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본부는 훈련군과 대항군 부대에 ‘관찰통제관’을 내보낸다. 이들은 본부의 연락을 받기에 양쪽 작전이 무엇이고 어디로 이동해 어디쯤에서 교전하게 될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고 부대의 움직임만 지켜보는데, 일부는 비디오카메라로 그 부대의 움직임을 촬영한다. 훈련이 끝나면 관찰통제관이 작성한 관찰보고서와 본부에서 생산된 자료가 종합 분석돼 대항군과 훈련군에 전달되어, 각자의 과오를 깨닫게 해준다.

    마침 취재진은 훈련군의 주간(晝間) 공격 하루 전날 과훈단에 도착했다. 대항군과 맞붙을 훈련군은 서울 서쪽을 방어하는 ○○사단이었다. 기자는 전승을 기록하는 대항군을 꺾기 위해 ○○사단이 최정예 병사를 뽑아 입소시켰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으나, 확인 결과 그렇지는 않았다. 상비사단은 대개 2개 연대를 경계에 투입하고 1개 연대는 빼내 정비와 훈련을 반복하는 체제로 운영한다.

    ○○사단 역시 이런 체제로 운영하므로 임무지를 빠져나온 연대 가운데 한 개 대대를 과훈단에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항군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므로 입소하기 전 이 대대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했다고 한다.

    양쪽이 전투 준비에 들어간 훈련장은 해발 800~1000m의 산들이 늘어선 가로 16㎞, 세로 14㎞, 총면적 3570만평의 산악지역이다. 그곳의 공기는 훈련통제본부가 있는 곳보다 확실히 서늘했다. 훈련군은 이 훈련장의 동쪽에 포진해 있다가 기동을 시작해 대항군이 방어선을 설정해놓은 곳을 돌파해 목표점인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그런데 이 훈련은 사단 또는 군단이 총 지휘하는 작전의 일부인 것으로 가정해 펼치기 때문에, 훈련군 대대에 배당된 돌파 지역 너비는 약 2.5㎞였다. 2.5㎞ 좌우엔 다른 대대가 전선 돌파를 시도하는 것으로 가정돼 있으므로, 훈련군은 자기가 담당하는 2.5㎞만 뚫어야 한다. 2.5㎞ 바깥을 돌아 대항군 진지를 돌파한다면 이는 명령을 어기고 평양으로 들어온 7사단처럼 ‘명령 불복종’을 한 것이 된다. 자칫하면 아군끼리 교전하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공격군은 자기를 노출하는 기동을 하면서 싸워야 하지만, 방어군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몸을 숨긴 채 싸운다. 따라서 공자(攻者)는 방자(防者)보다 세 배 이상의 전력을 가져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과훈장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사단 대대는 대대 전 병력은 물론이고 연대와 사단에서 배속받은 병력까지 모두 투입하지만, 대항군은 3분의 1인 250여 명만 방어전에 투입하는 것이다.

    250명으로 2.5㎞를 지키려면 10m마다 한 명씩 세워놓아야 한다. 좌우로 10m 떨어진 곳에 동료가 있다면 방어선에 투입된 병사는 안정감을 갖기 힘들다. 동료의 ‘보는 눈’이 없으면 병사는 두려운 마음에 각생을 위해 도주할 수가 있다. 취재진은 대항군 대대가 어떻게 방어선을 구축하는지부터 살펴보았다.

    대항군 대대가 방어선을 치고 있는 곳을 찾아나선 것은 오후 3시30분쯤. 그러잖아도 꾸물거리던 하늘이 누렇게 어두워지더니 뭔가를 퍼붓기 시작했다. 타고 온 지프 천막 지붕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난다.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보니 쌀알만한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산지 이곳저곳에서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광풍(狂風)이 일어나 지프 안으로 밀려왔다. 스산하고 불안정한 느낌…,.

    10여 분 후 우박은 사라지고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이윽고 찬비가 쏟아졌다. 번개도 쳤다. 적란운이 낮은 곳에 있는지 금방 천둥소리가 뒤따라왔다. 높은 산 어디에선가 벼락이 떨어졌는지 “빠지직” 소리도 들려왔다. 이런 날 무선 통신을 하다보면 통신 안테나에 번개가 떨어져 인명사고가 날 수 있다. 아니나다를까. 훈련통제본부는 대항군과 훈련군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낙뢰 경보가 내려졌다. 대항군과 훈련군을 포함한 모든 관계자는 무전기를 꺼라”는 지시를 보내왔다.

    어수선한 분위기. 기자는 “취재 날짜를 잘못 잡았네. 훈련을 못하겠군…”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동행한 관찰통제관이 “무슨 말씀입니까. 날씨 때문에 훈련을 연기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게 무슨 야구 시합도 아니고 날씨가 나빠졌다고 전쟁을 중단할 수는 없지요”라고 말했다.

    인터뷰 피한 대항군 대대장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살포지뢰를 설치한 후 철사를 연결하는 대항군. 실전에서는 살포지뢰에서 자동으로 실이 뻗어 나온다.

    그의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대항군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본부로부터 연락을 받는 관찰통제관도 대략적인 방어선 설치지역만 알 뿐 정확한 지점을 알지 못했다. 그는 대항군이 주고받은 통신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여기쯤 방어선을 구축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2.4㎞ 작전구역의 최북단에 해당하는 구석진 도로에서 군복색이 다른 병사들(대항군)을 만났다. 양쪽으로 산이 있는 가운데 U자 형태로 잘록하게 들어간 곳에 도로와 작은 개울이 흐르는 지형이었다.

    ○○사단 병사들이 산을 타고 온다면 순식간에 도로와 개울을 건너 반대편 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목 지점’이었다. 대항군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긴 쇠막대를 들고 나와 도로에 박고, 그 쇠막대 사이로 철조망을 설치했다. 입고 간 사복 위에 과훈단에서 빌린 야전상의와 우의를 걸치고 지프에서 나와보니, 금세 손가락이 곱아들고 발끝이 시려온다. 병사들이 입은 우의 위로는 얇은 얼음발이 얽히기 시작했다.

    첫눈에는 철조망 방어선이 매우 엉성해 보였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보통 방어선이 아니었다. 사람은 절대 이 철조망을 넘어갈 수 없다. 철조망을 절단해 한쪽으로 밀쳐놓거나 철조망 위에 판자나 두꺼운 천을 깐 다음에야 이 방어망을 통과할 수 있다. 대항군 병사들은 익숙한 솜씨로 철조망을 설치했는데, 공수가 바뀌면 그때는 훈련군이 철조망을 깔아야 한다.

    수백m 길이로 설치한 철조망 방어선에서 ○○사단 대대가 절단하거나 판자를 올려놓을 수 있는 지점은 한두 군데에 불과할 것이다. 반대편 산에 포진한 대항군은 그곳만 집중 공격할 것이니 철조망을 개척하더라도 ○○사단 대대원들이 반대편 산으로 뛰어오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관찰통제관은 “훈련이 끝나면 이 철조망을 걷어버리고 다음 훈련 때 새로 설치한다”고 말했다.

    그때 대항군 대대장이 나타났다. 대항군 대대장은 북한군 군관처럼 거친 인상일 것으로 상상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안경을 쓴 똘망똘망한 인상의 사내였다. 대기업에 근무한다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엘리트풍 장교였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꿰고 있는 듯 쉬지 않고 지시를 내리며 기자를 맞았다.

    그는 “지금은 우리가 일을 해야 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말로 가볍게 인터뷰를 피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매끄러운 사람. 그는 오늘밤부터 시작되는 전투를 의식하고 있었다. 전승을 기록해온 부대의 책임자로서는 이번 전투도 이겨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카메라의 방수능력을 자신할 수 없어 지프를 타고 대항군이 다음 방어선을 치는 곳으로 이동했다.

    과훈단 훈련장을 만들기 전 분교(分校)와 마을이 있던 공지로 내려왔다. 공지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도로에는 또 다른 대항군 세력이 나와 대인지뢰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땅에 묻는 게 아니라 땅 위에 꽂기만 했다. 훈련이기 때문에 꽂는 것일까?

    예전의 대인지뢰는 밟아야만 터지기 때문에 땅에 묻었다. 지뢰 매설 작업은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전투는 분초를 다툰다. 따라서 포탄이 떨어지는 위험한 땅에서 한가롭게 지뢰를 매설할 여유가 없다. 매설하다 실수하면 오히려 아군이 희생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요즘에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지뢰를 설치한다. 야포나 지뢰투척기로 발사해 살포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살포지뢰다.

    매설지뢰가 하늘로 던져졌다면 땅에 떨어지는 순간 폭발한다. 그러나 살포지뢰는 터지지 않는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 이 지뢰에서는 가느다란 실이 나와 산지사방으로 뻗어가는데, 살포지뢰는 이 실을 건드려야 폭발한다. 대인용 살포지뢰의 실을 건드리면 인근에 있던 사람의 발목 정도가 날아간다(발목 지뢰). 대전차 지뢰라면 30t이 넘는 전차도 뒤집을 수 있다.

    살포지뢰는 수류탄보다 크므로 도로나 운동장에 떨어져 있으면 바로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지뢰에서 나온 실은 가늘기 때문에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지뢰가 풀섶이나 밭에 떨어진다면 실은 더더욱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뢰가 보이면 진격하던 부대는 급제동을 건다. 멈춰 선 적을 향해 아군은 그 뒤와 좌우로도 또 한 번 살포지뢰를 발사해 포위해버린다.

    매설지뢰는 30~40년간 작동되므로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아군도 이곳을 뚫고 나갈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살포지뢰는 살포 직전에 입력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작동불능 상태가 된다. 일정시간이란 살포지뢰로 적을 포위해놓은 아군이 적을 공격해 들어갈 때까지를 뜻한다. 적은 살포지뢰가 무력해지는 시기를 몰라 꼼짝못하고 있겠지만, 살포지뢰 무능화 시간을 아는 아군은 그때를 택해 공격에 들어가 적군을 궤멸시키는 것이다.

    영악한 살포지뢰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야음을 틈타 계곡으로 침투하는 훈련군 수색소대.

    훈련에서는 살포지뢰를 실제로 살포할 수 없으므로 대항군은 박아넣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이 지뢰에서부터 사방으로 가느다란 철사를 설치했다. 이 철사를 건드리면 꽂아둔 지뢰에서는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화약이 터진다. 인근에 있는 병사의 마일즈 유닛에는 ‘중상을 입었다’는 표시가 뜬다.

    이렇게 얄미운 ‘지능형 지뢰’ 지대를 뚫으려면 훈련군은 ‘미클릭(MICLIC)’이라는 지뢰지대 개척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미클릭은 화약을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결한 긴 줄을 발사하는 장비다. 발사된 이 줄이 지뢰지대에 떨어지면 훈련군은 줄에 달려 있는 화약을 일제히 터뜨리는데, 이때 그 주변에 있던 살포지뢰가 함께 터짐으로써 통로가 열린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개척한 통로도 철조망을 절단한 것처럼 특정부분만 연 것일 뿐이다. 대항군은 이곳을 향해 화력을 퍼부을 것이 분명하므로, 훈련군은 통로가 개척돼도 섣불리 병력을 투입할 수가 없다. 철조망과 살포지뢰는 의외로 강력한 방어망이다.

    대인지뢰 살포지역을 지나 더 남쪽으로 내려오자 소수의 대항군 병사가 도로에 대화구(大火口)를 만들고 있었다. 대화구는 상대 전차의 진격을 막기 위해 도로를 움푹 파놓은 구덩이다. 대항군과 훈련군은 각각 사단으로부터 1개의 전차소대(4대)를 배속받았다. 따라서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훈련군은 전차를 앞세워 전선 돌파를 시도할 수가 있으므로, 이 전차 공격을 막기 위해 대화구 설치라는 방어술을 펼치는 것이다.

    전차를 앞세운 돌파가 드문 것은 양쪽 보병부대가 갖고 다니는 ‘로우(LAW·Light Anti-tank Weapon)’와 90㎜ 무반동총 같은 대(對)전차화기의 위력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 화기는 수 만원짜리 탄약을 발사해 50억원이 넘는 전차를 무력화할 수 있다. 따라서 보병과 전차가 동시에 돌진하는 ‘보전협진(步戰協進)’은 적이 제대로 된 방어망을 구축하지 못한 곳에서 펼쳐야 효과가 크다.

    대항군은 훈련군이 보전협진 전술을 구사할 것에 대비해 대화구를 만들었지만, 그러나 멀쩡한 도로에 진짜로 대화구를 만들 수는 없어서 대화구를 만들었다는 표시만 해놓았다. 대항군은 반격을 위해서인지 간격을 두고 철조망과 대인지뢰 대화구를 설치했다. 훈련군으로서는 빈틈을 찾아내지 못하면 쉽게 방어망을 돌파하지 못할 것이다.

    그 남쪽으로 내려오자 북쪽에서 내려온 개울이 반대편 계곡에서 나온 개울과 만나 자갈밭 여울을 만든 드넓은 개활지가 있었다. 그동안 내린 비로 개울물은 제법 불어나 있었다. 개활지 옆에는 역시 도로가 나 있는데, 이 도로는 온통 흙으로 된 꽤 가파른 절개면을 통해 산과 이어져 있었다. 산을 타고 온 훈련군은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절개면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 개울가로 뛰어와야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개울에서는 갈대나 바위에 의존해 몸을 숨기고 전진한다. 그리고 ‘1참호선’이라고 하는 대항군의 주 방어선을 돌파해 목표점으로 돌진해야 한다. 대항군은 전방에 철조망 등 방어시설을 설치하고 그 후방에 1참호선이라고 하는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개활지에서는 대항군을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항군이 사용할 수 있는 방어장비의 수량에는 제한이 있다. 북쪽에 방어장비를 깔았다면 남쪽에는 깔 수 없다. 이러한 제한은 훈련군이 방어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방어장비를 깔지 못한 곳에서는 병력만으로 방어해야 한다. 대항군 대대장은 개활지 쪽을 방어망을 설치하지 않고 1참호선 병력만으로 지키는 곳으로 설정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항군 대대장은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한 곳에는 적은 병력을 배치하고, 개활지 뒤의 제1참호선에 많은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 상식이다.

    전투와 경기가 다른 것은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없다는 점이다. 전투는 내일 시작해도 정찰은 오늘 시작할 수 있다. 훈련군 대대장은 정찰조를 보내 대항군이 방어선을 구축하는 정보를 획득했을 것이다. 정찰조가 정확한 정보를 물어왔다면 그는 철조망-지뢰 지대에는 대항군이 적고, 개활지 쪽에 많이 배치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철조망-지뢰 지역에 주공을 투입하고 개활지 쪽으로 조공을 넣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대항군 대대장도 똑같이 할 수 있다. 대항군 대대장은 역으로 철조망-지뢰 지대에 주력부대를 배치하고 개활지에 소수 병력을 배치하는 꾀를 쓸 수도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뭐야 뭐!” 총알을 맞으면 팔뚝에 찬 마일즈 유닛이 울린다.

    복불복(福不福), 승부는 전술이 아니라 지휘관의 운(運)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그래서 평범한 지휘관보다는 용장(勇將)이, 용장보다는 지장(智將)이, 지장보다는 덕장(德將)이, 덕장보다는 복장(福將)이 더 낫다고 하는 것인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 좋은 사람을 당할 재간이 없다. 오늘밤에는 누가 대운을 잡는 복장이 될 것인가.

    다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육군이 전군에서 가장 운이 좋은 중령을 뽑아 대항군 대대장에 임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항군은 연전연승을 해왔을까. 해답을 찾아야 할 문제는 많았다.

    들뜬 분위기의 훈련군

    대항군의 움직임을 지켜본 취재진은 지프를 타고 몇 개 산등성이 뒤쪽에 있는 훈련군 캠프를 찾아갔다. 그곳도 부산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분위기가 약간 달랐다. 대항군은 여러 차례 같은 훈련을 반복했기 때문인지 일사불란하다는 느낌을 주는 데 비해, 훈련군 캠프는 다소 들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주둔지를 떠나 낯선 곳에 왔다는 사실, 오늘 밤 진짜 훈련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에 병사들은 긴장해 있는 것 같았다.

    공격부대는 적 정찰조의 침투를 막기 위해 경계병만 세울 뿐 대항군처럼 방어망을 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도로로부터 적절히 시선을 가려주는 계곡에 모여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을 찾아가보니 대대장이 있는 본부라고 했다.

    ○○사단 대대는 밥과 국을 따로 지을 수 있는 트럭을 갖고 있었다. 현명한 적이라면 상대의 조리용 트럭을 반드시 파괴할 것이다. 이 트럭이 파괴되면 ○○사단 대대는 대형 버너에 큰 솥을 올려놓고 ‘국밥’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제공한다. 이 버너도 파괴되면 병사들은 각자 지참해간 전투식량을 뜯어 먹는다. 전투식량은 ‘햇반’과 비슷해서 데우기만 하면 훌륭한 야전식사가 된다. 그것마저 떨어지면 마지막 전투식량인 건빵이 있다.

    대대장 캠프는 숲 속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의 캠프로 올라가는 길은 내리는 비로 진창이 돼 있었다. 길 좌우엔 연대에서 지원해준 4.2인치 박격포를 실은 K-531 전투차가 늘어서 있고, 병사들은 진창에 빠져가며 탄약을 옮기고 있었다.

    대대장 캠프로 올라가는 길에 눈길을 끈 것은 전화선이었다. 군에서는 무선전화를 사용하지만 전화기에서부터 안테나까지는 유선을 놓는다. 야음을 틈타 잠입해온 적 침투조는 전화선에 주목할 것이다. 전화선이 있는 곳에는 대개 지휘관이 있으므로, 이들은 지체하지 않고 포 사격을 유도한다. 따라서 전화선을 설치할 때는 흙속에 파묻어야 한다. ○○사단 대대도 애초에는 전화선을 묻은 것 같았다. 그러나 추적추적 내린 비로 길이 진창이 되면서 전화선이 밖으로 드러나버렸다.

    대대장은 한창 작전회의를 하고 있어 역시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그래서 더욱 어두운 숲 속의 텐트에서 작전회의를 하는 그의 모습을 담으려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취재 욕심에 플래시를 떠뜨렸지만, 이 불빛을 대항군 정찰조가 봤다면 그는 지체하지 않고 포 사격을 유도할 것이라는 걱정도 들었다.

    ○○사단 대대도 야음을 이용해 대항군 지역에 정찰조를 투입한다. 이 임무는 연대에서 배속해준 수색소대가 맡는다. 이들은 대대 캠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아주 컴컴한 개울가에 은신해 있었다. 관찰통제관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찾아 계곡으로 내려갔다. 밤안개가 피어오르는 어둠 속에 위장약을 칠한 젊은이들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즉각 “우리는 적과 싸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적과의 조우를 최대한 회피하며 침투하는 것이 목표다. 침투한 다음에는 적의 전략시설이나 거점을 발견해 아군의 포 사격을 유도한다. 적과 싸울 필요가 없으니 헬멧을 쓰고 갈 이유가 없다. 헬멧을 쓰고 가면 덜컹거리는 소리 때문에 오히려 발각될 가능성만 높아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사단 대대를 돌아보고 나니 어느덧 오후 8시가 넘었다. 저녁을 먹지 못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올라왔다. 동행한 관찰통제관에게 “이왕이면 군대 식량을 축내기로 하자”고 제의하자, 그는 그래도 낯익은 사람이 많은 대항군 부대 쪽으로 지프를 몰았다. 대항군에 보급품을 제공하는 후방보급소를 찾아간 것인데, 그곳에서 만난 노 부사관은 “식사가 끝나 밥이 없다”며 햇반 형태의 전투식량을 내주었다. 기자는 순수 백반을, 사진기자는 볶음밥을 집었다.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관찰통제관이 ○○사단 대대의 공격은 내일 오전 8시에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양측은 어둠이 내리면서부터 바로 작전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오전 8시 공격이란 ‘오전 8시에 대항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라는 것’이므로, 훈련군은 그 전에 부대 기동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부대 기동에 앞서 양쪽은 타격 목표물을 확인하기 위해 침투조를 투입한다.

    침투조는 포 사격 유도가 주임무이므로 침투조가 투입된 시각부터 양쪽은 포 사격에 들어간다. 공격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상대의 방어력을 약화하기 위해 ‘공격준비 사격’을 하고, 방어를 하는 쪽은 상대의 공격력을 약화하는 ‘공격준비파괴사격’을 한다. ○○사단 대대는 이러한 사격을 뚫고 내일 오전 8시 대항군 제1참호선을 돌파해야 한다.

    전투는 밤에 시작된다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경상으로 분류돼 가슴에 붕대를 감는 훈련군 병사. 경상자는 응급조치를 하면 10분 후 전투를 재개할 수 있다.

    식사를 마칠 때쯤 비가 그칠 조짐을 보였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하늘. 그래서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는 이곳에 1000명에 이르는 젊은이가 양쪽으로 갈려 모여 있다. 이들은 대대장이 어떤 전술을 구사하는가에 따라,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주의 깊고 끈질기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그리고 그의 운에 따라 전사할 수도 있고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양쪽은 이미 침투조를 투입했을 것이므로 좀 지나면 양측의 포 사격이 시작될 것이다. 포 사격은 양쪽 대대 뒤에 연대와 사단에서 나온 포병부대가 해주는 것으로 가정한다. 포 사격은 무성(無聲)으로 이뤄진다. 즉 침투조가 타격 지점을 불러주면 잠시 후 그곳으로 포탄이 떨어지는 것으로 가정하는데, 이때 포탄 낙하 예상지점 60m 반경에 있는 병사들의 마일즈 유닛에는 일제히 포탄 낙하를 알리는 신호가 울린다.

    병사들은 숨을 공간을 찾는데, 이때 은폐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전사나 중상을 입은 것으로 처리돼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다. 작렬하는 폭음이 아니라 팔뚝에 찬 마일즈 유닛의 가는 소리에 병사들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침투하는 정찰조와 포탄을 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면 플래시를 터뜨려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훈련이 엉망이 되고 만다.

    취재진은 취재를 접기로 했다. 쌀쌀한 날씨 탓에 오늘 밤 병사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병사들에게는 상대뿐만 아니라 날씨를 포함한 자연조건도 거대한 적이 된다. 그 거대한 적은 오늘 밤 양쪽의 대대장 가운데 한 사람을 운 좋은 지휘관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제2부 둘째 날 - 초월공격 개시, 병사는 없고 연막만 피어올랐다

    다음날 오전 7시쯤 취재진은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날씨는 개어 있었지만 온도는 여전히 낮았다. 궁금한 게 많았다. ○○사단 대대는 어디로 주공과 조공을 보냈을까. 양쪽 침투조는 밤새 어디까지 접근했을까.

    훈련장으로 달려가는 지프에서 본부와 교신한 정훈장교는 “훈련군 대대장이 한 중대본부를 방문했을 때 대항군 침투조가 포 사격을 유도하는 바람에 대대장을 비롯한 다수가 전사했다. 훈련군 대대장이 너무 일찍 전사하는 바람에 다시 그를 살려줘 공격을 개시하게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역시 훈련군은 대항군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가. 과훈단에서 훈련군 대대장 전사는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초전에 전사한 훈련군 대대장

    지프가 달리는 도로 좌우 풀밭은 밤새 내린 눈이 살짝 얼었고 그 위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대항군을 상대하는 ○○사단이 저런 처지일까. 정훈장교는 “임무 수행을 재개한 ○○사단 대대장은 두 개의 개울이 만나 넓은 개활지가 펼쳐진 곳으로 주공을 투입했다. 그런데 대항군은 철조망을 쳐놓은 곳으로 훈련군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그 쪽에 많은 병력을 포진해놓았다. 개활지 쪽에는 1개 소대 정도뿐이라는데 잘 하면 훈련군이 대항군의 1참호선을 뚫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단 대대장은 철조망이 쳐진 곳으로 2개 소대의 조공만 보내고 나머지 3개 중대 병력의 주공은 개활지 방향으로 투입했다. 3대 1, 4대 1의 비율로 증강한 주공을 적은 숫자의 적이 지키는 곳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취재진은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질 개활지 부근으로 지프를 몰았다. 오전 7시30분쯤이었다.

    공기는 날카로울 만큼 상쾌했다. 청명한 햇살이 대항군이 있는 산쪽을 비추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산 아래 숲 속에서 ‘어정거리는’ 대항군 병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반대로 훈련군이 넘어오기로 한 쪽은 완전히 응달이어서 대항군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훈련군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8시가 넘어도 ○○사단 병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무료했다. 이따금 멀리 떨어진 산 위에서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연막이 치솟았다. 포탄이 떨어진 것을 가정하기 위해 관찰통제관이 권총으로 연막탄을 쏜 것이다. 그 소리마저 없다면 전쟁터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가벼운 폭음이 들리기에 돌아보니, 사진기자가 껄껄 웃으면서 “대인지뢰 실을 건드렸어. 진짜로 대인지뢰에서 ‘펑’하고 폭음이 나네”라고 말했다. 사진기자가 ○○사단 병사 대신 대인지뢰를 건드려 전사했다, 칠칠찮게시리.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연막탄이 터졌는데도 초월부대가 나타나지 않은 도로를 관찰통제관이 걷고 있다.

    심심해진 취재진은 개울을 건너 대항군을 찾아갔다. 대항군 병사들은 A텐트를 쳐놓은 곳에서 한가로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일전을 앞둔 긴박감을 느낄 수 없었다. 한 병사를 붙잡고 “왜 ○○사단은 진격해오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 밤 우리 편 단도화기사격조에 걸려 그들 대부분이 궤멸됐습니다. 저들은 절대로 우리 선을 돌파하지 못합니다. 저들의 선두는 30분 정도 지나야 겨우 도착할 겁니다”라며 여유를 부렸다.

    북한군은 습격조와 단도화기사격조 두 개의 침투조를 사용한다. 습격조는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적정(敵情)을 살피고 공격준비사격을 유도한다. ○○사단 대대장이 초전에 전사한 것은 대항군 습격조의 활약 때문이다. 습격조는 포 사격 유도가 주임무인지라 적과의 교전은 최대한 피한다.

    대항군이 설치한 1참호선을 휴전선에 비유해 설명하면 GOP 경계부대들이 늘어서 있는 남방한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남방한계선 앞에 비무장지대가 있는데 그곳에는 수색중대가 포진한 GP가 있다. 이곳 훈련장에서 GP 부대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이 단도화기사격조다. 이들은 제1참호선 600~800m 앞에서 적군을 기다린다. 이들은 적이 나타나면 바로 교전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통과시킨 다음 뒤에서 공격한다. 이러한 기습이 시작되면 상대 병사들은 방향을 바꿔 응전하느라 공격대형이 와해된다.

    단도화기사격조는 게릴라처럼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고 저격수처럼 정확한 사격을 하기 때문에, 공격준비 사격으로 타격을 입은 상대는 다시 적잖은 병사를 잃게 된다. 경험 많은 대항군 병사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대항군은 제1참호선에서 훈련군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침투조를 투입해 공격을 방불케 하는 방어전, 종심(縱深) 깊은 방어전을 펼친다. 그러니 제1참호선은 주전투선이 될 수 없다. 취재진은 이것을 몰랐기에 제1참호선 앞에서 전투를 기다린 것이다.

    단도화기사격조의 위력

    지프를 몰고 훈련군이 넘어오고 있는 산 쪽으로 난 도로로 들어가보니 교전 과정에서 전사해 헬멧을 벗은 대항군과 훈련군 병사들이 터덜터덜 걸어 나오고 있었다. 2005년 28사단 GP에서 총격사고가 일어나 많은 병사가 희생됐을 때, 적잖은 정치가가 비무장지대 안의 GP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GP는 웬만한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만든 철옹성이다. 유사시 북한군은 포격을 퍼붓고 보병을 진격시키지만 GP를 점령하기 어렵다.

    북한군 선두가 GOP선에 이를 때쯤 GO에 있던 수색중대원들이 나와 그 후방을 공격하고, 포 사격을 유도해 북한군 공격대형을 무너뜨린다. 놀랍게도 GP는 대항군의 단도화기사격조처럼 종심 깊은 방어전을 펼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GP 부대 덕분에 안전하게 살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사고가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부대의 철수를 요구했다.

    한국군도 침투조를 운영한다. 군사령부 차원에서는 특전사, 군단에서는 특공연대, 사단에서는 수색대대, 연대에서는 수색중대가 그들이다. 대대 전투에서는 연대 수색중대 소속의 수색소대가 대대에 배속돼 침투조 임무를 맡는다. 대항군과 훈련군은 침투조 대결도 벌인다. ○○사단 대대도 배속받은 한 개 수색소대를 소대장조와 부소대장조로 나눠 야음을 틈타 사전에 침투시켰다.

    이때 ○○사단 대대장은 멋진 기만전술을 구사했다.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한 쪽에 17명으로 구성된 부소대장조를 침투시킨 것. 그러나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지뢰가 터져 전사하는 등 16명이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교전으로 전사했다. 부소대장조는 소대장조보다 인원이 훨씬 많았다. 이들 부대가 밤새 격렬한 교전을 벌였고, 이 교전으로 대항군은 애초 예상한 대로 훈련군이 이곳으로 주공을 투입할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던 것 같았다.

    12명으로 편성된 소대장조는 장애물이 없는 개활지로 접근했으므로 7명이 전사한 상태에서 대항군이 설정한 1참호선을 통과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이 침투한 곳엔 대항군이 적어, 이들은 습격조처럼 유효한 포 사격을 유도하지 못했다. 적과 조우해 교전하는 것을 최대한 회피하는 것이 특징이므로, 이 부대는 대항군 단도화기사격조처럼 상대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휘젓기’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항군 습격조의 포사격 유도와 단도화기사격조의 종심방어작전으로 인해 공격을 개시한 훈련군 보병 전력의 절반 정도가 1참호선에 도달하기 전에 궤멸해 있었다. 1참호선에 있는 대항군 병사는 이러한 훈련상황을 반복했기에 햇볕을 즐기며 “저들은 절대 여기를 못 넘어간다”고 여유를 부린 것이다. 취재 불능을 이유로 취재를 포기한 밤 사이에 승부는 사실상 결정돼 있었다.

    “여기가 어디쯤입니까”

    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끊임없이 포 사격을 유도하며 정확한 사격을 가하는 대항군 분대장. 대항군은 지휘권 이양이 매우 원활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천시(天時)와 지리(地理)를 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대전에서 천시란 그 전쟁을 지지하는 국민의 의지이고, 지리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대항군과 훈련군 침투조의 결과 차이에 대해 본부측 관계자는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분석했다.

    “대항군 병사들은 훈련장에서 살다시피 하므로 이곳 지리를 훤하게 알고 있다. 서울의 북한산 국립공원이 매우 넓지만 1년쯤 주말등산을 하다보면 속속들이 알게 되지 않으냐. 대항군 병사들은 그 이상으로 이곳 지리를 꿰뚫고 있다. 깜깜한 밤에도 산짐승처럼 산을 넘을 수 있고, 상대가 어디에 본부를 설치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훈련군은 지도를 보고 지리정보를 얻어야 하므로 대항군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침투할 수 없다. 지리를 알고 전투하는 것은 대단히 유리한 장점인데, 이 점에서 훈련군은 대항군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

    시곗바늘은 오전 8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도로 쪽으로 나온 취재진은 1참호선 근처까지 온 훈련군을 찾기 위해 훈련군 주력이 넘어오기로 한 산쪽으로 올라가보았다. 가파른 절개면을 타고 30여m를 올라가 숲 속으로 진입하자 얼굴에 위장약을 칠한 일단의 훈련군 병사들이 앉아서 전투식량을 먹고 있었다. “왜 싸우지 않고 밥을 먹느냐”고 묻자 그들은 “어제 저녁부터 밤새 아무것도 못 먹고 여기까지 기어왔는데 그만 포 사격을 받아 전사했습니다. 허무하네요. 죽었으니 이제 밥 좀 먹어도 되겠죠?” 하며 웃었다.

    1참호선 바로 앞에서는 상당한 포격이 있었지만 취재진은 마일즈 유닛이 없어 사태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병사들은 산 아래로 내려올 수 없으므로, 관찰통제관의 도움을 받아 다른 훈련군이 접근해오는 쪽으로 찾아가보기로 했다. 관찰통제관은 아마 그들이 대형을 유지해 접근해오는 마지막 훈련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쉽게 발견됐다. 10여 명이 넘는 생존부대였는데, 밤새 시달린 탓인지 도로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 듯 지휘자로 보이는 한 병사가 지도를 내밀며 “여기가 어디쯤입니까”라고 물어왔으나,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지휘자는 산을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우회하기 시작했다. 계곡을 내려가 옆 산으로 꽤 오래 이동한 것인데 이들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옆 산으로 이동한 이들은 다시 산등성이를 타고 아래로 향했다. 이때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악! 아군 총에 맞았다”

    훈련장에서는 거의 매주 훈련이 반복되므로 병사들이 자주 다닌 곳에는 자연스럽게 길이 나 있었다. 마지막 훈련군은 이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었다. 대항군은 이곳 지리를 잘 알 터이니 길가에 매복할 수가 있다. 침투할 때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지쳤기 때문인지 훈련군은 길을 따라 이동한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렇게 10여 분을 가자 “따당~” 하는 소리가 울리고 훈련군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엎드렸다. 취재진도 덩달아 포복을 했다. 길목을 지키고 있던 단도화기사격조가 이들을 보고 총을 쏜 듯했다. 훈련군 병사들은 소리를 질러가며 총소리가 난 곳을 알렸다. 그리고 갑자기 세 명이 일어나 산등성이 쪽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취재진도 뒤따라 뛰어올라갔다.

    3명은 유리한 위치를 찾아 제각기 낙엽더미에 몸을 던지고 바로 사격에 들어갔다. 그때 한 병사가 “어! 뭐야. 또 총알이 안 나가네. 어! 내가 맞았네. 이게 뭐야? K-2잖아. 3312. 우리 편이 쐈구만. 야! 네가 3312번이지”라고 소리쳤다. 지명을 받은 병사는 고개를 돌려 “아닙니다. 4235입니다”라고 대꾸했다.

    아군 총에 맞은 병사는 약이 오른 듯 “금방 대항군을 봤는데, 잡을 수 있었는데, 미치겠네, 미치겠어” 하며 탄식했다. 그리고 다시 유닛을 들여다보더니 “아니, 경상이다 경상! 경상이면 응급조치를 하면 10분 후 다시 사격할 수 있잖아. 야, 의무낭 가져와” 하고 소리를 쳤다. 그의 유닛에는 좌측흉부 경상이라고 찍혀 있었던 모양이다.

    의무낭에서 붕대를 꺼낸 동료병사가 사진기자에게 “그런데 좌측흉부가 어디에요?”라고 물었다. 사진기자가 왼쪽 가슴이라고 답해주자 그는 선배의 왼쪽 가슴에 붕대를 감았다. 이를 본 사진기자가 “거기는 오른쪽이야”라고 소리치자 둘은 붕대를 고쳐 감았다. 그때 병사들이 차고 있던 유닛이 일제히 울렸다. 유닛을 들여다본 병사들은 “60m 떨어진 곳에 포탄이 떨어진다”를 외치며 일제히 구덩이로 몸을 날렸다. 왼쪽 가슴에 붕대를 감은 병사도 바닥에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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