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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에세이

당연히 잊혀졌어야 하는 사람인데…

김국태(소설가)

  • 글: 김국태

당연히 잊혀졌어야 하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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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잊혀졌어야 하는 사람인데…
에세이와 미셀러니의 개념 구분은 라틴어 문자 사용 문화권에서도 명쾌하지 못한 듯하다. 얼마나 논리적이냐는 것이 기준인 듯할 뿐이어서, 우리 안목으로 보는 수필과 논설, 독후감까지를 두루 포함하여 에세이라 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시대 사람 성현이 지은 ‘용제총화’를 읽노라면 서양식 장르 개념으로 콩트와 단편소설, 그리고 논설과 세시풍속을 빈정거린 잡문을 총괄하여 싣고서 아무개 ‘문집’이라 하는 식이다. 경직된 서양식 장르 개념을 슬쩍 넘어선 듯하여 썩 넉넉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미셀러니는 딱이(요즘 젊은 편집자는 충직한 국어사전 노예로 전락한 나머지 ‘딱하다’의 부사형 ‘딱히’로 꼬박꼬박 고치는 어리석음을 연출하며 그에 전염된 듯 방송 진행자 이상벽씨도 어쩌자고 ‘딱히’라 연발하는데 그야말로 두루 딱하기 그지없는 바이고, 내 상식으로는 ‘딱이’란 부사 ‘딱’을 얼굴바꿈한 꼴이라 굳게 믿는 터다) 무엇일까.

미셀러니란 신변잡기라고 나는 규정하는 바이고, 오늘날 우리네 수필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에 속한다고 선언함에 서슴이 없겠다. 그러니까 우리 수필가는 대체로 신변잡기나 쓰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학 때 교육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영미소설이 좋아 김용환 정병조 장왕록 선생님들 강좌를 수강했는데 부전공 학점을 채우느라 영미수필 강독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 과목 담당 이종수 선생님은 경험론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의 ‘수상록’에서 발췌한 작품을 강의 텍스트로 했단 말인가.

수강 준비를 하느라 도서관에서 옥스퍼드나 웹스터 대영사전을 뒤적여 16·17세기 영어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내 몰골이 지금도 딱하게 다가든다. 어떤 수준의 학점을 받았는지는 기억에 없고, 별반 감동을 받지 못했던 기억은 분명하다.

‘現代文學’ 편집실에서 20년 가까이 일할 때, 주간 조연현 선생님이 어느날 수필을 시 소설 희곡 평론처럼 신인 추천 부문으로 넣자고 했을 때 나는 단연 반대했다. 아마도 수필이라는 개념에 대한 내 경직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사가 두 번, 세 번 말씀하는 데야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오늘날 수필가 숫자를 늘리는 데 한 보탬하고 만 셈이 되었다.

조연현 주간의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한 반동에서였을까. 나는 황순원 선생님을 흉내내어 잡문을 쓰지 않고자 했고 수많은 수필 청탁을 거절하며 지내왔다.

마흔 살쯤은 되어야 인생을 조금 알 만하리라는 것이 수필 안 쓰는 내 행태를 합리화하는 논거였는데 황선생님은 1980년대에 와서 평생 대학노트에 꼼꼼히 적어놓았던 잡문을 뭉뚱그려 이른바 문집을 냈고 내게까지 한 권을 부치셨다. 나는 처절한 배신을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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