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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노예시대

정보의 노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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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리포터가 지나가는 여중생에게 하루에 문자메시지를 몇 통 주고받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자못 당당했다. “600번 이상 찍어요.” 적게 잡아 60번이라고 해도 그 중독 상태는 심각한 것이다. 어떤 젊은이는 잠자리에 들 때도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몇 년 전 독일을 여행하면서 그곳 대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전혀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부모가 봉이 아닌 그네들이라 휴대전화를 쓸 만큼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학 구내에 공중전화 시설도 변변찮고 휴대전화까지 없으니 얼마나 불편하냐는 질문에 대한 독일 대학생의 대답에 뼈가 있었다.

“할 얘기가 있으면 편지를 쓰면 됩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만 하면 됐지 전화할 일이 뭐 있느냔 그런 얘기다. 학교에 와서도 집의 개가 밥을 잘 먹었는지, 어제 술자리에서 헤어질 때 네 기분이 안 좋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그게 알고 싶다, 기차가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됐는데 지금 어디쯤 가고 있냐 등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 얻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우리네 젊은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네들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터넷 천국에서 우리네 젊은이들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정보로 무장하고 있는 사이 휴대전화도 안 가지고 사는 유럽의 그네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을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우리가 너무 서둘러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 대학생들 중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 확인해봤다. 수강생 50명 중 단 한 명의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나는 그 학생을 강단 앞으로 나오게 해 휴대전화를 아직 갖지 않은 사연을 말하도록 했다.

우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꼭 있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네는 요즘 유행에 너무 민감한 젊은이들의 행태를 조목조목 예로 들어 비판까지 했다.

나는 학생들 앞에서 그 여학생을 “이 시대에 내가 존경하는 젊은이”라고 말했다. 물거품 같은 시대의 유행을 거슬러 강심 깊이 자기의 중심을 세운 젊은이의 그 의연함에 감동한 것이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자신이 휴대전화를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라는 사실을 모른 채 희희낙락하고 있다. 자신의 정신세계가 휴대전화보다 작은 방 속에 갇혀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휴대전화는 사람과 사람, 나와 세상을 잇는 정보화 시대의 필수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또한 휴대전화 사용이 생활 편리성의 몇 배나 되는 정신적 폐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가다 보면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판단할 겨를이 없는 법이다. 있는 사실만 가지고도 넘쳐나는데 깊은 곳에 감추어진 사색의 항아리가 보일 리 없는 것이다.

공부하다가 필요하면 편지를 쓰는 젊은이와 달리 하루 내내 휴대전화의 노예가 되어 사는 젊은이에게 뭔가 깊이 생각하며 살 겨를이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거품 정보로 가득한 머리에는 꼭 필요한 정보가 들어갈 방이 없다. 무게 있는 정보를 소화하고 저장할 능력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정보의 시대, 필요한 정보를 챙기는 일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는 장치 마련이 더 시급하다.

정보의 그릇을 무한히 늘려 거기 담긴 정보의 늪에 빠져 허덕이기보다 쓸데없는 정보의 그릇을 과감히 깨버리는 일로 자기 정체성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정체성 찾기에 장애가 되는 정보를 차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감성의 발휘, 창조 에너지가 불꽃처럼 살아오를 것이다.

이 시대 휴대전화가 아닌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신동아 200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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