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정보의 노예시대

  • 입력2003-08-26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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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의 노예시대
    지난 밤 잠들기 전 알아본 오늘의 날씨를 아침에 다시 확인한다. 오늘 가야 할 곳의 교통 사정이나 만날 사람들을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려보는 일도 잊지 않는다.

    식탁에 앉으면서 신문의 주식 정보부터 훑는다. 아내가 밥상을 보면서 내놓는 건강 장수식품 얘기도 들어줘야 한다. 지난 밤 놓친 TV 연속극 내용도 듣는다.

    이승엽이 또 홈런을 쳤는지, 대통령이 이번에는 언론에 어떤 말꼬리를 잡혔는지, 후세인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스코틀랜드 네스호에 나타난다는 괴물은 정말 실재하는 것인지도 오늘의 화제 거리로 챙겨둔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렇게 정보 챙기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비단 오늘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발전해왔다. 살기 위해서, 남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했다.

    정보를 제대로 못 챙겨 소외되고 불이익이 발생하는 스트레스야말로 현대인들이 앓는 가장 심각한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의 정보마인드 더듬이는 갈수록 길어지면서 불안하게 떨고 있는 것이다. 국경이 없는 인터넷 시대, 세계가 좁아진 이 시대에 정보는 살아남기 위한 보호막이고 강자가 되기 위한 무기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정보매체가 전화일 것이다. 통신기구의 발달이야말로 정보화 시대의 수요와 공급의 관계를 실감케 한다. 1970년대만 해도 유선전화는 마을의 이장 집에나 겨우 한 대 설치돼 있었는데 이제는 노점을 벌인 할머니까지 휴대전화를 쓰고 있을 정도로 무선통신의 천국이 되었다.

    얼마 전 달리는 기차에서 휴대전화로 30분 이상 통화하는 여인네를 보았다. 호주에 유학간 열네 살 딸한테 거는 전화라고 했다.

    어제는 뭐 먹었느냐, 친구 아무개하고는 절대 만나지 말아라, 변기에 화장지를 너무 많이 넣으면 안 된다, 언니가 밤마다 몰래 전화하는 남자 친구가 누군지 알아놔라, 엄마가 갈 때 무엇무엇을 사 가겠다며 물건 품목까지 일일이 열거했다.

    내가 일을 보고 있는 춘천의 김유정문학촌에 중학생들이 단체로 왔다. 내 얘기를 듣는 중에도 계속 휴대전화를 통해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의도 줄 겸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다. 두어 명이 손을 들었다. 그 중 한 학생은 자기 휴대전화가 집에 있는데 잊고 그냥 왔다고 했다.

    어린 자녀들에게 휴대전화를 사주는 부모들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남들이 다 사주니까, 하나 있는 자식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 소재 파악이나 안전을 위해서 등 갖가지 구실이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자신들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는 걸 그네들은 모른다.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자식 교육을 휴대전화 하나 사주는 일로, 인터넷 게임 중독을 방치하는 일로 얼버무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부모의 역할 포기라고 할 수 있다. 좀 심하게 말해 휴대전화를 어린 자식한테 사주는 일은 자신들이 떳떳한 곳에 있지 못하는 그 시간에 대한 알리바이 만들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TV에서 리포터가 지나가는 여중생에게 하루에 문자메시지를 몇 통 주고받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자못 당당했다. “600번 이상 찍어요.” 적게 잡아 60번이라고 해도 그 중독 상태는 심각한 것이다. 어떤 젊은이는 잠자리에 들 때도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몇 년 전 독일을 여행하면서 그곳 대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전혀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부모가 봉이 아닌 그네들이라 휴대전화를 쓸 만큼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학 구내에 공중전화 시설도 변변찮고 휴대전화까지 없으니 얼마나 불편하냐는 질문에 대한 독일 대학생의 대답에 뼈가 있었다.

    “할 얘기가 있으면 편지를 쓰면 됩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만 하면 됐지 전화할 일이 뭐 있느냔 그런 얘기다. 학교에 와서도 집의 개가 밥을 잘 먹었는지, 어제 술자리에서 헤어질 때 네 기분이 안 좋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그게 알고 싶다, 기차가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됐는데 지금 어디쯤 가고 있냐 등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 얻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우리네 젊은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네들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터넷 천국에서 우리네 젊은이들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정보로 무장하고 있는 사이 휴대전화도 안 가지고 사는 유럽의 그네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을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우리가 너무 서둘러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 대학생들 중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 확인해봤다. 수강생 50명 중 단 한 명의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나는 그 학생을 강단 앞으로 나오게 해 휴대전화를 아직 갖지 않은 사연을 말하도록 했다.

    우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꼭 있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네는 요즘 유행에 너무 민감한 젊은이들의 행태를 조목조목 예로 들어 비판까지 했다.

    나는 학생들 앞에서 그 여학생을 “이 시대에 내가 존경하는 젊은이”라고 말했다. 물거품 같은 시대의 유행을 거슬러 강심 깊이 자기의 중심을 세운 젊은이의 그 의연함에 감동한 것이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자신이 휴대전화를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라는 사실을 모른 채 희희낙락하고 있다. 자신의 정신세계가 휴대전화보다 작은 방 속에 갇혀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휴대전화는 사람과 사람, 나와 세상을 잇는 정보화 시대의 필수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또한 휴대전화 사용이 생활 편리성의 몇 배나 되는 정신적 폐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가다 보면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판단할 겨를이 없는 법이다. 있는 사실만 가지고도 넘쳐나는데 깊은 곳에 감추어진 사색의 항아리가 보일 리 없는 것이다.

    공부하다가 필요하면 편지를 쓰는 젊은이와 달리 하루 내내 휴대전화의 노예가 되어 사는 젊은이에게 뭔가 깊이 생각하며 살 겨를이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거품 정보로 가득한 머리에는 꼭 필요한 정보가 들어갈 방이 없다. 무게 있는 정보를 소화하고 저장할 능력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정보의 시대, 필요한 정보를 챙기는 일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는 장치 마련이 더 시급하다.

    정보의 그릇을 무한히 늘려 거기 담긴 정보의 늪에 빠져 허덕이기보다 쓸데없는 정보의 그릇을 과감히 깨버리는 일로 자기 정체성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정체성 찾기에 장애가 되는 정보를 차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감성의 발휘, 창조 에너지가 불꽃처럼 살아오를 것이다.

    이 시대 휴대전화가 아닌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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