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선정씨, 정희자 회장, 김선용씨, 김선협 사장
5년6개월 동안 해외에서 체류하다 지난해 6월 귀국한 김우중(金宇中·71) 전 대우 회장의 병실이다. 병실 창문 밖으로 그가 50년 전에 다니던 연세대학교 상과대학 건물이 보일 것이다. 캠퍼스가 좁다고 답답해했던 그는 졸업 후 세계를 누볐다. 그러나 돌고 돌아 다시 캠퍼스 안에 있다. 병실 문도 걸어 잠그고 침잠해 있다.
‘남편 김우중’ ‘아버지 김우중’이 이렇듯 스스로를 유배시키고 있는 때, 가족은 각자 흩어져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가장 활발하게 뛰는 사람은 부인 정희자(鄭禧子·66) 필코리아리미티드(이하 필코리아) 회장이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정 회장의 이력은 필코리아의 이력을 좇아가면 훤히 드러난다. 필코리아(자본금 859억원)는 관광호텔업 및 부동산 임대업체로 1976년 대우그룹 계열사인 대우개발로 출발했다. 이 회사는 서울 힐튼호텔, 경주 힐튼호텔, 서울 아트선재센터, 경주 선재미술관을 소유했으나, 1999년 대우그룹이 몰락하면서 서울 힐튼호텔을 매각했다.
1999년까지 이 회사의 대주주는 지분 61.7%를 소유한 (주)대우와 정 회장을 포함한 김우중 회장 일가였다. 그러나 1년 뒤 대주주는 조세회피지역으로 알려진 케이만군도의 페이퍼컴퍼니 ‘퍼시픽인터내셔널’로 바뀐다. 지난해 검찰 수사 결과 이 회사의 대주주는 김 전 회장과 친분이 있는 태국인으로 밝혀졌다. 장부상으로만 보자면 정 회장 등의 가족 지분 61.7%가 고스란히 태국인 소유(필코리아 지분 90.4% 소유)로 넘어간 셈이다. 검찰은 이 회사의 소유주가 사실상 김 전 회장 일가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검찰도 퍼시픽인터내셔널의 소유주가 누군지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지만, 이 회사가 소유한 필코리아의 또 다른 대주주는 드러나 있다. 9.6%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정 회장이다. 필코리아는 사실상 정 회장이 구축한 종합레저그룹의 지주회사 노릇을 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의 아도니스 골프장, 경남 양산의 에이원 컨트리클럽, 부동산 개발회사 로이젠, 여행사 월드투어가 계열사다.
필코리아는 1999년 100억원을 투자해 아도니스 골프장 지분 18.6%를 매입한 뒤, 2003년 에이원 컨트리클럽 지분 49%를 77억2000만원에 사들였다. 2004년에는 골프장 개발업체 로이젠의 지분 25%(5억원)를 확보했다. 그해에 8억8000만원을 투자, 여행사 월드투어의 지분 50%도 매입했다. 또한 아도니스는 2002년부터 총 66억7000만원을 투자해 에이원 컨트리클럽 지분 49%를 사들였고, 에이원 컨트리클럽은 로이젠 지분 75%를 매입했다. 복잡해 보이지만, 필코리아를 정점으로 각 계열사끼리 서로 출자하면서 새 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경영권을 강화한 것이다.
선협씨의 적극 행보
이들이 투자한 회사의 자산은 만만치 않은 규모다. 일례로 로이젠은 경남 거제시 송진포 일대에 21만평에 달하는 골프장 예정 부지를 갖고 있다. 청정해역으로 알려진 거제 앞바다를 끼고 있어 골프장으로 개발되기만 하면 1천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자산으로 평가될 전망이다. 실제로 2004년 대우건설이 이곳 골프장을 포함한 100만평을 ‘장목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며 경남도청과 거제시에 제출한 계획서엔 골프장의 평당 보상가가 30만원으로 기재돼 있다. 이대로만 계산해도 로이젠이 확보한 땅 21만평은 630억원에 달한다.
자본금 20억원의 조그만 회사가 거대한 골프장 부지를 확보하자 지역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청정지역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산림은 물론 바다까지 오염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통영환경운동연합 김일환 사무국장은 “이런 문제를 제기하자 로이젠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며 “총 28만평의 골프장 부지 중 21만평은 로이젠이, 국공유지를 뺀 4만3000평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의 전·현직 직원들이 매입했다”고 말했다. 예전 대우그룹 멤버들이 정 회장의 사업을 돕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