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입력2006-03-06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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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기 없는 범죄가 있을까? 있다. 단지 자신을 노려봤다는 이유로 승객이 가득 찬 열차에서 칼을 꺼내 들고, 환청에 시달리다가 연고도 없는 여성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른다. 갖가지 범죄자를 상대한 베테랑 수사관조차 이들의 범행수법이나 동기를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른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을 해치는 신종 범죄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무(無)동기 범죄.’ 경찰 수사관들은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이런 혐의를 붙인다. 나도 수많은 범죄자를 만나봤지만 이해할 수 없는 동기로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인 이를 만날 때면 난감하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해보면 이상한 점이 거의 없다. 범죄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가난, 저학력, 저지능, 결손가정 같은 원인이 없다. 아마 피해자는 이들의 이웃이었을 것이고,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어떤 불길한 징후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 경기도 의정부에서 한 아주머니가 살해됐다. 40대 중반의 범인은 아주머니가 살던 집 1층에 살던 세입자였다. 범인은 그전까지 어떤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내였다. 체포 당시엔 무직이었지만 직장생활도 해봤다. 다만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여러 곳을 전전했다는 점은 눈에 띄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성격임은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것이 윗집에 살던 여자를 무참하게 살해할 이유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범행 후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핏자국만 따라가도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형사들이 아랫집으로 들어가자 그가 있었다. 현장에서 그를 체포한 형사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식이 없었다는 얘기다.

    형사들에게 전후 상황을 듣고 난 뒤 그를 만나 살인한 까닭을 물었다. 그는 “아줌마가 나를 노려보고 공격하려고 해서 내가 먼저 죽였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아주머니가 그를 노려볼 이유도, 공격할 이유도 없었다. 사내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고 시달리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늘 자신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한다고 ‘믿는’ 피해망상증 환자였다.

    지난해 서울에서 지하철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 50대 남자도 피해망상증 환자였다. 그를 괴롭히는 ‘상상 속의 인물’은 국가정보원 직원.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집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가면 국정원 직원들이 자기를 미행한다고 믿었고, 집에는 온갖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어 자기가 하는 말이 모조리 녹음된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국정원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그는 도청과 감시의 공포에 시달렸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국정원이 나를 도청한다’

    시너와 라이터, 기름통을 들고 지하철 방화를 시도하던 날도 환영과 환청에 끔찍할 만큼 시달렸다고 한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어 직장도 못 나가고 가족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한 그는 그날 죽기로 결심했다. 가족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시체도 찾을 수 없도록 죽을 방법을 찾다 불을 지르기로 했다. 그러고는 지하철을 타고 사람이 많이 타지 않은 칸으로 가서 주위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러나 막상 불이 붙자 두려워졌고, 전동차 문이 열리는 틈을 타 도주하다가 지하철역 CCTV에 얼굴이 찍혀 붙잡혔다.

    내가 알기로 국정원의 도청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국정원의 도청과 감시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여러 개 있다. 올라 있는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국정원 직원이 어떤 음파로 자신을 괴롭힌다, 자꾸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국정원 직원이 어디선가 자신에게 속삭인다, 자신의 뇌에 이상한 칩을 심어놓아 머리가 아프다….

    이들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에게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 이상한 징후를 눈치챈, 혹은 이들의 기이한 행동에 시달리는 가족들조차 이들을 정신병원에 수용하기를 주저한다. 한국에서 정신병원에 가는 것은 인생의 끝이나 다름없다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치료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도 없다. 환자도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고, 이를 요구하는 가족에게 반발한다. 결국 이들은 ‘시한폭탄’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정신질환자.

    2004년 경기도에서 발생한 가스폭발사고는 이들을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범인은 30대 남자. 그는 사건 발생 전, 가족과 주위사람에게 자신의 몸에 예수가 들어왔다고 떠들어댔다. 그후 그는 알 수 없는 환청에 자주 시달렸다. 누군가 자신의 귀에 대고 “죽여라, 죽여라” 하고 속삭인다는 것이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가스통을 가져다놓고 집에 불을 질렀다.

    그 즈음 한 지방에서 발생한 존속살인사건 또한 비슷한 병을 앓는 사람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자신을 기독교 신자라고 소개한 그는 부모를 살해하기 전, “네 부모를 죽여라, 그래야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했다. 그는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만 늘어놓았다. 내가 만나본 존속 살인범 대부분은 이처럼 환청을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원한을 사지도 않았고, 시비에 휘말리지도 않았지만 졸지에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만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환자 자신도 언제 살인을 저지를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평소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면 범죄를 저지른다. 특히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일수록 피해망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그러던 어느 날 칼이나 쇠몽둥이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만난 범죄자도 그랬다. 집에 혼자 누워 있던 그는 사건 당일 “죽여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쇠파이프를 숨겨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방향도 확인하지 않은 채 지하철을 탔고, 어딘지도 모른 채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신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던 중 담이 낮은 집이 눈에 띄었다. 담을 넘고 거실로 들어가자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한 마리 야수로 돌변했다. 여자에게 수도 없이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여자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내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

    경북 김천에서 서울행 열차를 타고 올라오다 살인을 저지른 A씨도 마찬가지다. 2003년에 벌어진 사건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열차 안에서 한 여자가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칼을 휘둘렀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그를 만난 이후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길거리에서 이상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누가 희생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살인자는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살의(殺意)를 품기 때문에 애초에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밖에 예방 방법이 없다.

    이들의 외형상 특징을 보면 우선 눈의 초점이 풀려 있다. 또 대개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길을 가다가도 멈칫 서서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한다. 침을 계속 뱉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멀쩡할 때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주위에선 변화를 눈치채기 힘들다. 따라서 경계하지 않는다. 그저 약간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최근 들어 이런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정신과 의사가 아니어서 왜 정신분열증 환자가 늘어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일부는 선천적으로,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고, 또 일부는 뇌에 기능적인 장애가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인 것 같다. 정신분열증은 선진국병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경제 발전과 관련해 생기는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가족에게 치료를 맡기기엔 진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시설도 부족하다. 정부가 개인 정신병원을 지원해 저렴한 가격으로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도 정신병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완치할 수 있는 평범한 병으로 봐야 한다. 정신병은 수치스러운 것도, 불치의 병도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야 한다.

    이유 없는 범죄는 비단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대학생, 결혼을 앞둔 직장인, 특수부대 출신의 복학생, 남과 싸움 한 번 한 적 없는 10대 청소년 등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들이 속속 범죄자 대열로 들어서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청년들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무기를 소지하고 은행을 털다가 붙잡힌 고교 동창생들.

    최근 경기도에서 벌어진 형제 어린이 납치사건을 보자. 경찰관의 아이를 납치한 것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탄 사건이다. 대학생과 고교생 형제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납치했다.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대학 못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세상도 아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한번 범죄자가 되면 긴 인생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 따져보지도 않았을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 탓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인 논리가 사회의 규범이나 규칙에 위반된다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들에겐 그런 당위론이 통하지 않는다.

    이 청년들은 대학에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범죄를 저지렀다. 모순이다. 배우고 싶은 열망이 한참 비뚤어졌다. 돈이 없으면 휴학을 하고 일을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는 게 상식이다. 범죄를 모의하는 수준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실제 범죄를 저지르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병증(病症)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예사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다.

    2002년 서울에서 벌어진 은행강도사건. 범인 넷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모 지방 고등학교 동창생 사이였다. 대부분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컸다. 제대 후 복학할 날을 기다리던 이들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생각만큼 돈이 벌리지 않자 범죄를 모의했다. 수법은 참으로 대담했다.

    이들은 군 복무 경험을 살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보초를 서던 군인들을 제압, 총기를 탈취했다. 그 다음엔 차량을 훔쳤고, 그 길로 모 부대의 탄약창고를 습격했다. 총과 탄약을 손에 쥔 이들은 은행을 급습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손발이 착착 맞았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영화처럼 호락호락한가. 넷은 훔친 돈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체포됐다.

    직접 만나보니 만약 두 명이었다면 범죄 모의단계에서 그만뒀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네 명인 것이 문제였다. 말하자면 죄가 4분의 1로 분산된 탓에 주저하지 않고 범행을 결행한 것이다.

    이들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무용담을 털어놓는 듯했다. 교육 수준은 높았지만 제대로 된 윤리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수단의 정당성은 고려대상이 못 되는 듯했다. 쉽게 생각하고, 쉽게 행동했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범죄의 매력, ‘리셋’의 편리함

    2003년 강도살인 혐의로 붙잡힌 직장인 C씨에게서도 이런 면모가 엿보였다. 그는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빈집을 털기로 작정했다. 월급이 적어 저축을 많이 하지 못한 그는 결혼자금을 가장 빠르고 쉽게 확보하는 방법이 강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빈집으로 알고 들어간 곳에 사람이 있었고, 피해자가 완강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그만 칼을 휘두르고 말았다. 신혼의 단꿈은 한순간에 깨졌다.

    이런 사람들은 고생하지 않고 빠른 시간에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한다. 투자든 투기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주저한다. 그들에게 범죄는 단기간에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범죄를 일종의 아르바이트쯤으로 간주한다. 한 번 하고 손 털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들키지만 않으면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실수하면 ‘리셋’ 버튼을 누르듯 범죄를 저지른 뒤 마음을 고쳐 바로잡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2000년 서울에서 일어난 또 다른 납치사건. 30대 초반의 대졸 직장인 Q씨는 노름에 빠져 있었다. 월급으로는 노름빚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유괴를 생각해냈다. 유괴범을 만나보면 대부분 학력이 높고 멀쩡한 사람들이다. Q씨도 행여 의심을 살까봐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범행대상을 찾아나섰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만났고, 자신을 아이의 친척이라고 소개했다. “부모님이 잠시 해외로 나가시게 됐으니 내가 널 돌봐야 된다”고 둘러대자 아이는 의심없이 그를 따랐다.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현대인을 괴롭히는 피해망상증.

    그는 아이의 부모에게 편지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끊임없이 돈을 요구했다. 장소를 옮겨가며 끈질기게 가족을 협박했으나 경찰의 추적 끝에 결국 붙잡혔다. 아이는 무사히 부모 품으로 돌아갔다.

    어떤 생명도 그냥 죽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에 쫓기면 쫓길수록 살려는 의지는 더 강해진다. 하지만 Q씨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으면서도 다른 방법은 모색하지 않았다. 회사를 나와 퇴직금으로 빚을 갚을 수도 있었으나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만 찾았다.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도 손해 보지 않고 국면을 타개할 길을 찾았던 것이다.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이런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여자친구의 빚을 갚아주려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기억난다. 별 문제 없이 직장에 잘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거녀가 빚에 시달리자 함께 괴로워했다. 빚 액수가 커서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자 친구를 끌어들여 범죄를 계획했다.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여성을 대상으로 금품을 빼앗기로 했으나 피해 여성이 완강하게 저항하자 흥분해서 살인까지 저질렀다.

    이들은 모두 성인이지만 생각은 어린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이는 원하는 것을 요구할 줄만 안다. 이들 또한 자신의 목표만 생각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전인교육이 미흡한 탓이다. 남과 어울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질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일진대, 온통 경쟁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렇듯 기이한 인간군(群)을 만들어냈다.

    경쟁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1등도 있고, 꼴찌도 있다. 그러나 예전엔 지금처럼 1등을 하기 위해 ‘올인’하는 사회는 아니었다. 요즘엔 경쟁에 진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커다란 스트레스다. 부모는 아이에게 남보다 낫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윽박지른다. 아이는 나이를 먹어가도 인격체로 성장하지 못한다. 이들에겐 목표 달성의 의지만 있지 타인과의 관계는 없다.

    W. 아직 앳된 티가 나는 19세 청년이었다. 부모와 형이 있는 집안의 평범한 막내였다. 어느 날 그는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로 갔고, 먼저 와서 전화하던 여성이 통화를 끝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통화가 이어지자 그는 여자에게 통화를 끝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여자는 귀찮다는 듯 대꾸하지 않았다. 순간 W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여자가 수화기를 놓자마자 그는 여자의 머리채를 나꿔채고는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끌고가 돌로 머리를 찍어 살해했다.

    야생마와 시한폭탄

    그를 만나러 교도소에 갔다. 평소처럼 어린 시절 얘기부터 들었다. 특기할 점은 가출이 잦았다는 것. 이를 통해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간섭하면 참지를 못했다. 마치 야생마 같았다. 학교교육도, 가정교육도 그를 길들이지 못했다. 인격을 갖춘 인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데 모두 실패했다. 왜 여자를 죽였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비난하는 여자의 태도를 참을 수 없었다. 분노가 솟구쳤다.”

    사건을 과장하거나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다. 절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범죄자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나로선 난감하다.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고, 피의자가 피해자가 되는 세상이다.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알 수 없다. 요즘 어느 어른이 젊은이에게 함부로 말을 걸 수 있겠는가. 잘못된 행동을 봐도 모른 척한다. 그래서 서로 무관심하다. 무관심은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고 의사소통이 돼야 하는데 우린 애써 그것을 피하고 있다.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신종 범죄자는 양산된다. 이들은 혼자 있을 때 더욱 과격해지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마저 낭떠러지로 떨어뜨린다. 우리 사회도 어느 영화에 나오는 음울한 도시처럼 빌딩숲에 불이 꺼지면 범죄자가 하나둘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곳이 될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새로운 범죄는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속에서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폭발음과 함께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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