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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강덕지 과장의 범죄심리학 노트②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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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라! 죽여라!”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정신질환자.

2004년 경기도에서 발생한 가스폭발사고는 이들을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범인은 30대 남자. 그는 사건 발생 전, 가족과 주위사람에게 자신의 몸에 예수가 들어왔다고 떠들어댔다. 그후 그는 알 수 없는 환청에 자주 시달렸다. 누군가 자신의 귀에 대고 “죽여라, 죽여라” 하고 속삭인다는 것이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가스통을 가져다놓고 집에 불을 질렀다.

그 즈음 한 지방에서 발생한 존속살인사건 또한 비슷한 병을 앓는 사람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자신을 기독교 신자라고 소개한 그는 부모를 살해하기 전, “네 부모를 죽여라, 그래야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했다. 그는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만 늘어놓았다. 내가 만나본 존속 살인범 대부분은 이처럼 환청을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원한을 사지도 않았고, 시비에 휘말리지도 않았지만 졸지에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만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환자 자신도 언제 살인을 저지를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평소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면 범죄를 저지른다. 특히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일수록 피해망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그러던 어느 날 칼이나 쇠몽둥이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만난 범죄자도 그랬다. 집에 혼자 누워 있던 그는 사건 당일 “죽여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쇠파이프를 숨겨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방향도 확인하지 않은 채 지하철을 탔고, 어딘지도 모른 채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신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던 중 담이 낮은 집이 눈에 띄었다. 담을 넘고 거실로 들어가자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한 마리 야수로 돌변했다. 여자에게 수도 없이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여자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내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

경북 김천에서 서울행 열차를 타고 올라오다 살인을 저지른 A씨도 마찬가지다. 2003년에 벌어진 사건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열차 안에서 한 여자가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칼을 휘둘렀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그를 만난 이후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길거리에서 이상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누가 희생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살인자는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살의(殺意)를 품기 때문에 애초에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밖에 예방 방법이 없다.

이들의 외형상 특징을 보면 우선 눈의 초점이 풀려 있다. 또 대개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길을 가다가도 멈칫 서서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한다. 침을 계속 뱉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멀쩡할 때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주위에선 변화를 눈치채기 힘들다. 따라서 경계하지 않는다. 그저 약간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최근 들어 이런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정신과 의사가 아니어서 왜 정신분열증 환자가 늘어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일부는 선천적으로,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고, 또 일부는 뇌에 기능적인 장애가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인 것 같다. 정신분열증은 선진국병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경제 발전과 관련해 생기는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가족에게 치료를 맡기기엔 진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시설도 부족하다. 정부가 개인 정신병원을 지원해 저렴한 가격으로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도 정신병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완치할 수 있는 평범한 병으로 봐야 한다. 정신병은 수치스러운 것도, 불치의 병도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야 한다.

이유 없는 범죄는 비단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대학생, 결혼을 앞둔 직장인, 특수부대 출신의 복학생, 남과 싸움 한 번 한 적 없는 10대 청소년 등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들이 속속 범죄자 대열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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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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