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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정받은 버마 민주화운동가 8인의 꿈

“한국의 민주화 역사는 버마 국민의 희망입니다”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난민’ 인정받은 버마 민주화운동가 8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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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시작은 유치했지만 끝은 그렇지 않았다. 상대는 고위 정치인의 아들이었다. 출동한 경찰들은 다짜고짜 그를 구타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 부당한 현실을 자신의 손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첫 계기였다. 곧이어 1988년 전국적으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함께 ‘자유’를 이야기하던 대학생 선배들을 따라 대열에 동참했다.

“뭐, 한마디로 선배들을 잘못 만난 거죠(웃음). 우리 반에서 시위에 나선 학생은 6명뿐이었거든요. 불만 많던 아이들이 뭘 모르고 따라나선 겁니다.”

그러나 시위참가 경력은 그후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숨죽이고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버마에는 한국의 국가보안법보다 훨씬 강력한 군법이 있어요. 다섯 명 이상이 모이면 감시 대상이 되고, 밤늦게 다른 곳으로 갈 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버틸 수가 없었어요.”

다른 이들의 사연도 마웅저씨의 경우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마웅 예 윈 라씨는 고등학생 때 정부의 교과서 개정방침에 반발해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졸업을 앞둔 무렵에 갑자기 모든 교과서를 영어로 씌어진 교재로 바꾼다는 발표가 나왔다. 학생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내려진 결정이었다.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생각했어요. 대학 입학시험이 코앞이었으니 얼마나 분했겠어요. 그런 분한 마음에 펜을 들어 편지를 돌리기 시작했죠.”

교과서 개정 방침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 익명으로 친구들과 다른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편지는 학교 당국에 압수됐고 교사들은 편지의 ‘원작자’를 추적했다. 모범생이던 그는 한순간에 ‘요주의 인물’이 됐다.

겁이 난 그는 남은 학기를 죽은 듯 지내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1988년 민주화운동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학생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며 시위의 선봉에 섰던 그는 다시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희망의 근거’

“버마에서 군부의 위세는 엄청납니다. 자주 가던 거리에 군부대 사무실이 있었어요. 밤이면 아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들이 종종 찾아와요. 군인들이 밤늦게 돌아다니는 청소년을 감금해 군복을 입혀 부려먹곤 하니까요. 부대 앞에서 밤새 우는 아주머니, 값나가는 물건을 싸들고 와서 통사정하는 이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집밖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째네요. 고향에서 양곤으로, 국경 난민촌으로, 그리고 한국까지.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어질 줄 몰랐어요.”

그의 쌍꺼풀 진 큰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요즘 건강이 좋지 않다. 신장질환이 있어 일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치료를 받는다. 생활비와 활동비를 마련하려 해오던 공장 일도 잠시 쉬고 있다.

이들이 애초부터 고국을 떠나 유랑생활을 작정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는 실종이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많은 운동가가 망명을 택했다. 부모가 빚을 내 입국브로커 비용을 마련해준 사람도 있었고, 숨어서 운동을 계속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가족에게 등 떠밀린 이도 있었다.

가혹한 현실에 처한 그들의 눈에 한국의 민주화 역사는 ‘희망의 근거’로 비쳤다. 한국에만 가면 나래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시아 국가들 간의 인권유대도 기대했다. 그들이 한국을 망명지로 택한 이유다.

“한국과 버마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일본식 군대교육을 받은 독재자, 반정부 지도자들의 피살, 5·18 항쟁과 ‘8888항쟁(1988년 8월8일 버마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 등 유사한 역사적 사건도 많지요. 한국 국민이 자유를 거머쥔 과정은 우리에게 감동 자체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곧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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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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