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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월스트리트 평정한‘얼음미녀’ 이정숙

“즐겁게 해주는데 안 넘어오는 고객 있나요?”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맨손으로 월스트리트 평정한‘얼음미녀’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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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기 쓰기로 인간 내면 파악 비법 터득
  • 월街에서 배운 지혜, ‘동기가 순수해야 돈을 번다’
  • 애널리스트와 다르게 생각하라
  • 한국 증시, 지금이 매수 타이밍
  • 증권주, 수출주도주, 내수주에 주목할 만
맨손으로 월스트리트 평정한‘얼음미녀’ 이정숙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업무 시간, 비열하고 이기적인 동료들…. 월스트리트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모아놓은 곳이었어요.”

KDI 정책대학원의 경영커뮤니케이션 과목을 수강하던 학생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흘러넘치는 돈과 이를 소유하려는 인간의 탐욕, 그리고 치열한 경쟁이 숨막힐 듯 전개되는 곳 아닌가. 미국 일류대학을 나온 주류 백인 남자들도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그곳에서 13년 동안 연간 수백만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업계를 호령한 한 여성의 열강에 학생들은 넋을 잃은 듯했다.

이정숙(李靜淑·46) KDI 정책대학원 교수. 1987년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월가(街)에 진출해 2000년까지 베어링증권 부사장, 크레디리요네증권 이사를 역임했다. 그가 활약하던 시기, 한국 유수의 증권사에서 그를 영입하려고 혈안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럽, 북미, 아시아를 종횡무진하며 승승장구한 그에겐 성에 차지 않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킬러’

입소문으로만 떠돌던 그의 월가 ‘참전기’가 최근 ‘지혜로운 킬러’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 표지에선 ‘도망가지 마라!’ ‘쓸데없이 공격하지 마라!’ ‘소리 없이 승리하라!’ 등 마치 손자병법을 연상케 하는 전투적 표현들이 눈에 띈다. 자전적 내용과 함께 소수 인종의 연약한 여성이 월가의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비결과 전략이 담겨 있다.



이제는 현장에서 은퇴했지만, 그는 지금도 세계적인 펀드매니저와 헤지펀드 운영자, 애널리스트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세계 금융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한국 증권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국 펀드 매니저들에게 ‘뜰 종목’을 찾아주기도 한다. 신흥시장을 찾아 헤매는 헤지펀드 운영자들에게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해주거나 펀드 생존의 방향을 제시하는 조언자 노릇도 하고 있다.

일에 미쳐 독신으로 살고, 정상에 올라선 뒤엔 훌훌 털고 ‘산’을 내려온 이 교수의 지난날이 궁금했다. 요동치는 한국 증시의 전망, 외국 펀드매니저에게 추천하는 종목 등도 물어보기로 했다.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인상, 여성 보디빌더 대회 출전을 결심할 만큼 잘 관리한 몸매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2시간 남짓 나눈 즐겁고 유쾌한 대화로 어느 결에 사라졌다. 그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카리스마’”라고 했다.

-책을 보니 그간 만난 사람마다 별명을 붙여놓았더군요.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안목이 번뜩였습니다. 이런 능력 덕분에 증권사 세일즈맨으로 엄청난 실적을 올렸을 텐데, 인간의 내면을 파악하기 위한 비법 같은 게 있습니까.

“인간은 원래 남의 얘기를 듣는 것보다 자기 얘기 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대인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돼야 하죠.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듣다 보면 이들의 관심거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상대방도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본색을 드러내죠. 이런 식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거죠. 별명 붙이는 거요? 사람을 보면 특징이 눈에 띄어요. 제가 어릴 때 화가가 되고 싶어 그림공부를 했습니다.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특징을 잘 잡아서 그려야 했어요. 어려서부터 일기를 쓴 것도 사람의 특징을 잡아내는 일종의 훈련이었던 것 같아요. 외환은행에서 근무하신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그때마다 제 관점에서 사람들을 분석하곤 했어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를 따라 유럽과 미국에서 공부했다. 벨기에 브뤼셀의 인터내셔널 스쿨을 졸업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웰레슬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상원의원이 나온 명문대학이다. 경영학으로 유명한 밥슨 칼리지에선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영어는 물론 불어에도 능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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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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