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찍는 일’에서 ‘돈 버는 일’로
17년간 돌 침대를 만들어온 이 사장은 수맥탐사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현재 한국수맥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수맥을 차단하고 신경통, 근육통 치료효과가 있는 원적외선을 발생하는 돌침대를 개발해 연 3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가 됐다. 그가 만든 돌침대는 ‘장영실 과학문화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미국, 독일, 스위스,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린 발명품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휩쓸었다. 2003년 돌침대로는 국내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의학적 효능을 인정받았다. 수맥 차단 돌침대, 흙침대, 옥침대, 은나노 무전자파 수맥 차단 돌침대 등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모두 56건의 특허를 받았다.
이 사장이 돌침대 사업으로 성공하기까지는 남모르는 좌절의 고통과 재기의 노력이 있었다.
이경복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 출신.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75년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한다. 조폐공사 연구소에서 화폐의 내구성을 높이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화학처리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화폐를 검사하는 것이 주업무였다.
당시 조폐공사 직원의 봉급은 어지간한 공무원보다 서너 배는 많았다고 한다. 은행원보다 더 많은 돈을 다루는 만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수를 파격적으로 높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연구소가 있던 대전 시내 술집에선 조폐공사에 다닌다고 하면 두말없이 외상술을 줬을 정도죠.”
그런데 그는 전혀 다른 유혹에 빠져 입사 8년째인 1982년 사표를 던진다. ‘남의 돈 만드는 일’보다 ‘내 돈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내가 만든 돈이 창고 가득 쌓이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찼던 것 같아요. 영어로 ‘메이크 머니(make money)’가 ‘돈 번다’는 뜻 아닙니까.”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그가 시작한 사업은 건강보조식품을 수입해 파는 것이었다. 당시 ‘알로에’ ‘클로렐라’ 같은 제품이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리에 그간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을 덜컥 다 털어넣은 뒤 서울로 올라와 사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돈 버는 일이 돈 찍는 일처럼 쉽지는 않았다. 경험이 부족한 탓도 컸지만, 제품을 가져간 소상인들이 대금도 안 주고 종적을 감추는 통에 손실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2년을 아슬아슬하게 끌고 가다 결국 밑천이 바닥나고 빚까지 잔뜩 짊어진 채 사업을 접고 만다.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팔아 빚잔치를 하고 나니 손에 쥔 돈은 고작 450만원. 급한 대로 식솔을 데리고 서울 면목동에 있는 일곱 평짜리 사글셋집에 짐을 풀었다.
“다시 조폐공사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습니다. 사규상 3년 안에는 복직이 가능했으니 눈 딱 감고 가려면 갈 수도 있었죠. 그런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한번만 더 해보자’고요. 쥐뿔도 없으면서 말이죠.”
다리 쭉 펴고 잠들기에도 비좁은 사글셋집을 개조해 조그만 문구점을 냈다. 주위에 학교가 여러 곳 있어 입에 풀칠은 하겠다 싶었다. 두 번째 사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