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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 기업인, 이경복 수맥돌침대 사장

“전자파, 수맥파 다 잡았으니 단잠 주무세요”

  • 이임광 자유기고가 LLKHKB@yahoo.co.kr

4전5기 기업인, 이경복 수맥돌침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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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천이 달리니 뭔가 독특한 마케팅 전략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고객 명부’다. 문구점을 한 번이라도 찾은 손님은 초등학교 1학년짜리라도 일일이 이름을 물어 기록해뒀다. 얼굴도 익혀놓았다가 다음에 또 오면 반갑게 이름을 불러줬다. 누가 어떤 학용품을 선호하는지까지 적어 손님이 그 물건을 찾기 전에 먼저 보여줬다.

‘코 묻은 돈’ 1억원

또 지금으로 치면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 물건을 많이 구입한 학생에게는 그에 비례하는 사은품을 주기도 했다. 변두리 동네 문구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 있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코 묻은 돈을 벌려면 코흘리개들에게 잘 보여야 했죠.”

성과는 있었다. 그의 세심한 서비스에 ‘동심(童心)’이 움직였고, 주변에서 경쟁하던 문구점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코 묻은 돈’은 쌓이고 쌓여 2년 반 만에 1억원 넘게 불어났다.



“그땐 정말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그 동네 가면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요.”

그 돈으로 방배역 네거리에 해물탕집을 낸 것이 그의 세 번째 사업이다. 60평 남짓한 식당은 목도 좋았지만 문구점에서 성공한 고객관리 기법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단골손님을 급속도로 늘려갈 수 있었다. 주 메뉴인 해물탕은 기본이고, 반찬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2000원짜리 매운탕 한 그릇을 주문한 손님에게도 무슨 반찬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매일같이 직접 장을 봐와서는 다음날 맞춤으로 상을 차렸다. 점심 때 줄 서는 손님이 생길 즈음인 개점 1년 만에 하루 매출이 200만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물탕집 단골손님이던 가죽장갑 재단사의 추천으로 네 번째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 재단사를 공장장으로 앉히고 스포츠용 가죽장갑 공장을 운영한 것이다. 장안평에 마련한 공장에 재봉틀 30대를 놓고 스키 장갑과 야구 배팅 장갑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80% 이상을 미국, 캐나다 등지로 수출해 월 매출 10억원대의 사업체로 키웠다.

그러나 채 1년도 안 지난 1987년, 오일쇼크 여파로 수출에 타격을 받고 고전하다 끝내 부도를 내고 말았다. 급기야 임가공 도급업체들에 내줄 돈이 없어 지방으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됐다.

“채권자들을 피해 가족과 떨어져 친구 집으로, 산속으로 숨어 다니던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남의 돈을 떼어먹었다는 사실이 정말 참기 힘들었어요.”

그렇게 1년을 방랑하던 그는 낭떠러지에서 다섯 번째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돌침대다. 1989년 어느 날 청계산에 올랐다가 암자에서 속옷 바람으로 얇은 돌 위에 앉아 있는 스님을 보게 된다. 자세히 보니 돌 위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스님에게 “왜 돌 위에 앉아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3년 전 치질이 생겼는데 이렇게 하고 있으면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참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상품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며칠 후 우연히 신문을 읽다가 ‘유럽에서도 온돌방 인기’라는 칼럼을 보고 암자에서 본 ‘돌방석’을 떠올렸다. 온돌 같은 ‘돌침대’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무렵 수중에 남은 도피자금은 350만원 정도. 그는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는 각오로 청계천을 다 뒤져 자재를 구해온 다음 돌침대 제작에 착수했다. 아내와 둘이서 한 달을 끙끙댄 끝에 돌침대 시제품 네 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은 볼품없었지만 그래도 저의 첫 번째 발명품이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이제 파는 것이 문제였다. 우선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을 찾아가 “돌침대를 만들었는데 하나 들여놓으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사업에 실패하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딱딱한 돌 위에서 어떻게 잠을 자느냐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천주교에서 발행하는 한 신문에 광고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세례명 바오로)인 그로서는 그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간곡하게 부탁해 조그만 광고가 무료로 실리게 됐다. 며칠 후 광고를 본 한 신부로부터 주문이 들어왔다. 350만원에 첫 판매를 하고 그 돈을 생산에 재투자했다. 이번엔 시제품보다 훨씬 정교한 돌침대를 세 개 더 만들었다. 그렇게 한 대를 팔아 세 대를 만드는 식으로 생산량을 늘려갔다. 그에 맞춰 입소문이 나더니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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