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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⑫

꼿꼿한 수탉, 김매는 오리, 무심한 염소에게 크게 배우다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꼿꼿한 수탉, 김매는 오리, 무심한 염소에게 크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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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은 반대했다. “어떻게 고양이가 잡은 꿩을 뺏을 수 있어요?” 아내도 내가 너무하지 않냐고 했다. 식구들 반대를 무릅쓰고 꿩 다리를 살그머니 당기니 고양이 ‘둥이’가 안 빼앗기려고 입으로 당긴다. “둥이야, 아저씨가 너한테 먹이 주잖아? 나도 꿩맛 좀 보자.” 고양이에게 사정을 했다. 그러자 둥이는 꿩을 놓아줬다. 기분이 묘하다. 고양이한테 얻어먹다니….
꼿꼿한 수탉, 김매는 오리, 무심한 염소에게 크게 배우다
마당에서 일을 하는데 “꼬∼옥!”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집 뒤 산밭에서 나는 수탉 소리다. 옆집 진돗개가 왔나 생각했는데 곧이어 “케엑!” 하며 숨이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아차, 이거 심상치 않구나.

“이놈!”

급한 마음에 우선 소리부터 지르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매가 암탉을 덮치고 있다. 내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나를 본 매는 닭을 두고 잣나무숲으로 사라졌다. 아이가 두 팔을 벌린 것마냥 무지무지 큰 매다. 날개를 활짝 펼친 매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암탉을 보니 목에 피가 흥건하다. 닭 깃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암탉은 비실비실 간신히 몸을 가눈다. 수탉은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이 사태에 얼이 빠진 모양이다. 다른 암탉들은 밭 둘레 검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다. 수탉이 소리 내어 울지 않았으면 암탉을 고스란히 매한테 바칠 뻔했다. 수탉이 못내 미덥다.

닭에게 배우는 수컷 본성



우리 식구는 닭을 큰 규모로 키우지 않는다. 달걀이나 닭고기를 가끔 먹으려고 몇 마리 키운다. 그렇게 키운 닭들이 해마다 병아리를 까, 대를 이어오고 있다.

닭을 키우면서 느끼고 배우는 바가 많다. 내가 남성이어서 그런지 나는 수탉에게 흥미를 느낀다. 수탉은 우선 보기에도 아름답다. 꾸미지 않은 상태에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 부럽다. 붉은 볏, 주홍색과 검은색이 골고루 어울리는 깃털. 덩치도 커서 무리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수탉은 곧잘 날개를 한껏 펼쳐 자신이 크다는 걸 과장한다.

수탉은 목소리도 우렁차고 아름답다. 꼬끼오! 새벽부터 간간이 외치는 소리. 닭이 우는 소리는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고자 하는 외침이다. 그러니 이웃집 수탉도 질세라 더 목청을 돋운다.

수탉의 가장 두드러진 임무는 무리를 보호하는 일이다. 마당에 닭을 풀어놓으면 수탉은 수시로 둘레를 살핀다. 개나 고양이는 물론 하늘을 나는 새도 살핀다. 사람도 적당히 경계한다. 경계할 때 수탉의 눈빛은 날카롭다.

수탉은 먹이도 잘 찾는다. 모이를 던져주면 암탉보다 수탉이 먼저 안다. 그러고는 암탉한테 먹으라고 신호를 보낸다. 수탉은 암탉이 웬만큼 먹고 나서야 먹는다. 설사 곁에서 같이 먹더라도 둘레를 살피며 먹는다. 수탉에게선 나에게 부족한 어떤 품위가 느껴진다. 나는 밥상에 앉으면 식구 가운데 가장 ‘전투적’이다. 식사 준비가 좀 덜 되어도 먹기 시작한다. 아내 표현을 빌리면 불도저가 지나가는 듯하단다. 수탉은 암탉에 견주어 많이도 안 먹는다. 암탉은 알을 낳아서인지 잘도 먹는다.

닭은 흙을 잘 헤집는다. 흙 속에 있는 작은 벌레나 풀씨들을 먹는다. 소화가 잘 되게 모래도 먹지만 암탉이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렁이다. 마당이나 텃밭을 발로 뒤적이면 지렁이가 곧잘 나온다. 수탉은 힘이 좋아서인지 지렁이도 잘 찾아낸다. 수탉은 이 지렁이를 안 먹고 바로 암탉에게 준다.

달걀 껍데기도 그렇다. 닭장 안에 껍데기를 던져주면 암탉들은 서로 먹으려고 경쟁이 치열하다. 다시 알을 낳기 위해 껍데기 성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먼저 껍데기를 문 놈이 혼자 먹으려고 구석진 곳으로 달린다. 그러면, 다른 암탉은 한사코 빼앗으려고 달려든다. 수탉은 달걀 껍데기가 아무리 많아도 안 먹는다. 수탉은 껍데기가 자신에게 필요한 건지 아닌지를 몸으로 아나 보다. 우리 사람에게도 여성에게는 필요한 음식이지만 남성에겐 불필요한 게 있지 싶다.

수평아리가 자라 ‘청년’이 될 무렵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소리가 잘 안 나와 듣기에도 안쓰럽다. 그래도 날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친다. 수평아리가 제대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우두머리 수탉이 달라진다. 청년 수평아리를 쪼아 몰아내려고 한다. 새로운 청년 수탉은 아직 목소리도 시원찮고 몸집도 작으니 눈치껏 피하면서 행동한다. 그러나 부지런히 잘 먹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수탉끼리의 신경전을 보면서 사람들의 권력투쟁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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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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