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창사 이래 최대 실적 올린 신헌철 SK(주) 사장

“‘메이저’들 신경 안 쓰는 곳에 인재 풀었더니 석유가 펑펑”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2006-03-13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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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현 회장의 ‘방목경영’이 유전개발 성공의 ‘싹’
    • 까탈스러운 사외이사들, 장기적으론 회사에 보약
    • 직원들과 1100리 뛰었더니 노사관계 저절로 풀렸다
    •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35년 직장 생활의 비결
    창사 이래 최대 실적 올린 신헌철 SK(주) 사장
    신헌철(申憲澈·62) SK(주) 사장에게 2005년은 ‘이보다 더 좋았던 때는 없다’고 할 만하다. 매출 22조원, 수출 100억달러. 이는 1962년 회사 창립 이래 최대 성과다. 일각에선 고(高)유가 덕분이라고 평가절하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기엔 놀랄 만한 실적이다. 남들이 ‘미쳤다고’ 비난하던 유전개발사업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고, 세계적 명품으로 손꼽히는 윤활유사업 부문에선 영업이익 1000억원을 돌파했다.

    22조원 매출 가운데 수출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것은 또 하나의 신기록이다. 중국을 비롯한 성장시장에서 수출 기반을 다진 덕분이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내수주로 취급받던 SK(주)가 수출주로 재평가받는 기틀을 마련했다. SK(주)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의 석유제품은 처음으로 주요 수출품목 5위에 올랐다.

    보석 캐고, 밭 일구고

    이런 실적을 두고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만약 신헌철 사장 대신 다른 경영자가 CEO를 맡았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사실 지난해 거둔 실적의 대부분은 SK(주)가 오랫동안 기반을 닦아놓은 것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 회사는 10인의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장이라고 해서 독단적으로 결정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에 앉더라도 그만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것 아닐까.

    일부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신 사장이 그만의 솜씨로 회사의 체력을 키워 실적으로 연결한 게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노사관계의 획기적 개선이다. 임금협상 시즌이면 늘 티격태격하던 SK(주) 노사는 그가 부임한 이후 싸우는 일이 없어졌다.



    안팎으로 반대가 심하던 인천정유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데서도 그의 활약이 돋보였다. 당장은 부실하지만 제대로 살려놓기만 하면 ‘보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그는 12개 경쟁업체를 따돌리고 인천정유를 인수했다.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서울 종로 본사 사옥을 신한은행에 팔았다. 회사의 한정된 자원을 몇 개의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다. 이를 통해 SK(주)는 정제능력 부문에서 아·태지역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밖에도 그는 미국 휴스턴에서 시추를 추진해 일본 투자자를 끌어모았고, 석유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카자흐스탄에 새로운 유전탐사팀을 발족시켰다.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들도 뛰어들기를 겁내는 석유탐사에 인재와 자금을 적극적으로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언젠가 대표 자리를 후배에게 넘겨주고 떠나겠지만, 그가 재임 시절 일궈놓은 기름진 ‘밭’ 덕분에 후임자는 더 많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2월9일 그를 만났을 때 “직원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사장 덕분에 하늘이 회사에 복(福)을 준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CEO가 되고 보니 답답하거나 불안한 게 많아요.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걱정거리가 많아져요. 제가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풀 뜯어먹도록 내버려두라’

    -SK(주)는 지난해 단지 고유가 덕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눈부신 실적을 올렸습니다.

    “22조원 매출의 49%, 즉 10조5000억원은 수출에서 달성했어요. 중국, 아프리카 같은 성장시장 개척에 노력한 결과죠. 23년 전에 시작한 자원개발이 최근 들어 알찬 열매를 맺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2000억원의 이익을 올렸으니까요. 하나 더 자랑한다면 SK(주)가 세계에 내놓을 만한 명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유베이스(YUBASE)’라고 부르는데 윤활유의 90%를 구성하는 주원료입니다. 세계시장의 64%를 차지하니 세계 1등 제품이고, 엑슨모빌과 BP 등 30여 개국 80개 회사에 수출하고 있어요. 이 제품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1000억원의 이익을 냈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해요. 우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1등 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10대 석유 메이저에 끼어야죠.”

    -현재 SK는 아·태지역에서 몇 위인가요.

    “인천정유를 인수해서 4위가 됐어요. 일본 업체가 3위인데, 거의 차이가 없어요. 인천정유 정상화가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이를 통해 아·태지역 1위로 올라서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해외 석유개발사업에서도 처음으로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는데요. 비결이 있다면.

    “그런 얘기하면 참 신이 나요(그의 눈빛이 번쩍했다). 이게 바로 블루오션이고 차별화 전략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유전사업을 벌인 곳이 1983년 인도네시아예요. 결과는 실패였죠. 쏟아부은 돈만 그때 돈으로 300만달러가 넘는데 기름 한 방울 안 나왔어요. 그러면 그만뒀어야죠. 그런데 선대 회장인 최종현 회장이 계속 밀어붙였어요. 그걸 나중에 우리가 ‘방목(放牧)경영’이라고 불렀는데, 소가 풀을 뜯어먹도록 내버려두는 거죠. 실패해도 또 한다는 겁니다.

    손놓고 있어도 18억달러 들어와

    당시 김항덕 사장에게 유전개발을 맡겼는데, 1984년 예멘의 마리브 유전이 터진 거예요. 굉장했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버마 유전에 6000만달러를 넣었다가 한푼도 못 건졌어요. 그렇게 실패와 성공이 거듭됐죠. 성공하면 번 돈으로 또 투자했고요. 하지만 무턱대고 투자하지는 않았어요. 세계 석유 메이저들, 엑슨모빌이나 쉘 같은 회사가 가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뒤졌습니다. 페루와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 아프리카, 베트남 중심의 동남아, 카스피해 지역…. 부자(석유 메이저 업체)들은 끼리끼리 몰려다니지 우리처럼 조그만 회사는 안 끼어줘요.”

    -석유업계만큼 폐쇄적인 이너서클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메이저가 개발하다가 포기한 유전을 우리가 재발견해서 수익을 올린다는 사실이에요. 페루 유전이 그랬어요. 쉘이 개발하다가 재미를 못 볼 것 같으니까 철수했어요. 거기에 우리가 들어가서 성공한거죠.”

    -페루 56광구나 브라질 8광구 같은 곳은 SK(주)가 지분 투자를 해서 성공했죠?

    “지역에서 경쟁력을 가진 회사와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 사업인데, 리스크(위험)를 분산하고 시너지 효과를 얻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광구를 확보해 투자자를 모으기도 합니다. 미국 휴스턴에선 우리가 직접 시추했고, 그 가능성에 군침을 흘린 일본 업체가 투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세계적인 석유업체가 되려면 이런 실적을 쌓아야 해요.”

    -SK(주)가 확보한 유전개발사업을 정리해주시죠.

    “12개국에 19개 광구를 갖고 있는데, 그중 7개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있어요. 나머지 12개 중에서 기름이 있다고 확인된 곳은 페루 56광구와 브라질 8광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할 때 수행해 접촉했던 광구는 본계약 체결을 위해 논의 중이에요. 브라질 30광구, 32광구 그리고 러시아 서캄차카 광구는 시추 준비 중이에요. 페루를 중심으로 남미, 카스피 해 주변, 아프리카의 수단과 리비아에서도 준비하고 있어요. 베트남 15-1광구는 기대가 커요. 최근 백사자 구조에 추가로 3억배럴이 묻혀 있다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대단하죠. 가스도 3조~4조 입방피트가 있다고 하는데 좀더 봐야 해요.”

    -보유한 유전의 실제 가치는 얼마나 됩니까.

    “당장 유전개발사업을 중단해도 앞으로 20년 동안 들어올 돈의 가치가 18억달러는 됩니다. 지금까지 15억달러 투자하고 지난해까지 16억6000만달러를 벌었으니 본전은 회수한 셈이죠. 이제 시작이에요. 번 돈은 다시 투자해야 합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700억원 늘린 3400억원을 석유개발 하는 데 쓸 겁니다.”

    -지난해 쿠웨이트 원유를 들여와 국내에 저장하는 시설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쿠웨이트는 아시아에 더 많은 기름을 팔고 싶어합니다.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SK(주)가 그 연결 고리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그래서 한국석유공사의 비축시설에 쿠웨이트 원유를 저장하도록 중계했어요. 쿠웨이트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계약이 성사된다면 우선 1000만배럴, 그러니까 5억달러어치의 기름이 한국에 저장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에너지를 확보해서 좋고, 석유공사는 비축요금을 받아 좋고, 쿠웨이트는 안정적인 가격으로 동북아 3개국에 기름을 공급해서 좋은 거죠.”

    -인천정유 인수 과정에서 안팎으로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인천정유는 아까운 회사였어요. 원유정제 찌꺼기를 고급 유류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고도화 설비가 없어요. 그래서 돈을 못 벌었고, 경쟁에서 도태돼 부실화했어요. 지난해 8월 법원에서 경매로 나왔을 때 SK(주)는 1조6000억원을 투자하고, 또 1조6000억원을 연리 6%로 빌려주겠다고 제안했어요. 판사가 확실한 회생 방안이라고 생각해서 승인한 겁니다. 우리는 45년 동안 석유공장을 운영한 노하우가 있어요. 이를 인천정유에 활용하고 고도화 설비를 들여놓으면 우량한 회사가 될 겁니다. 또 구매력이 생기니까 싼 값에 원유를 들여올 수도 있죠. 이래저래 유익합니다.”

    -인천정유를 대북 에너지사업의 거점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으로 압니다.

    “그건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언젠가는 북한이 열리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북한에 공급하는 원유를 정제할 공장이 필요하죠. 정유공장 하나 지으려면 25억∼30억달러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돈이 있어도 환경 문제 때문에 짓지 못한다는 거죠. 일본도 못 지어요. 이런 점에서 인천정유 인수는 의미가 있죠. 국내 시설이 부족해 중국 공장에서 정제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최근 SK(주)가 900만주(50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전체 주식의 6%나 되는 물량인데요. 통상 다른 대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2∼3%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용인가요?

    “SK(주)는 2000년 이후 자사주 매입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주주경영 차원에서 하는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중질유 분해시설 투자, 자사주 매입, 유전개발 등 돈 들어갈 곳이 많습니다. 시장에선 SK가 어떻게 자금을 마련하고, 갚을 계획인지 궁금해합니다.

    “무(無)수익 혹은 저(低)수익을 내는 것으로 평가받는 자산을 매각해야죠. 기존 사업을 잘 해서 현금 창출 능력을 키워야 하고, 설비금융을 조달하는 방법도 모색할 겁니다.”

    -석유회사의 CEO를 만난 이상, 고유가의 원인에 대해 견해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향후 유가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유가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결정되는데, 원유의 수급과 석유제품의 수급 두 가지를 같이 봐야 합니다. 최근 원유 가격이 오른 이유는 경제호황을 누린 중국과 미국에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앞으로 우려되는 것은 이란 핵 사태입니다.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유가가 폭등할 수 있어요. 이런 이유로 지난해 골드만삭스는 배럴당 10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반면 석유제품 가격이 오른 것은 지난해 미국을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이죠. 정유공장이 수개월 동안 가동되지 않아 석유제품 가격이 올라갔어요.

    올해 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55달러 전후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이란 사태 영향으로 지난 1월엔 평균 60.1달러를 기록했어요. 그러다가 최근 59달러대로 내려왔죠. 내가 예측한 것보다 높지만, 다시 55달러 전후로 내려올 것 같아요. 가격이 급등하면 수요가 줄잖아요. OPEC(석유수출국기구) 임시 의장은 평균 45달러로 예상합니다. 그러나 그 이하로는 안 내려갈 것 같아요.”

    사외이사 편든 최태원 회장

    -SK(주)의 강점 중 하나로 투명한 이사회 경영이 꼽힙니다.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다른 기업과 차별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10명의 이사 중 7명이 사외이사예요. 민간기업 중 최고 수준입니다. 이사회 산하에 6개 위원회 위원장이 모두 사외이사죠. 사외이사의 이의 제기로 이사회 안건이 조건부로 승인되거나 수정된 사례도 여러 번 있어요. 예를 들면 지난 번 회의 안건이 비업무용 자산을 팔자는 것이었어요. 사외이사 5명은 반대했고, 회사 이사 2명을 포함한 4명의 이사는 찬성으로 의견을 모았죠. 그럼 나머지 한 명의 이사, 최태원 회장이 어느 의견에 표를 던지느냐에 논의를 다시 해야 할지 아니면 안건이 부결될지가 달려 있었죠.

    우린 최 회장이 회사 임원이니까 당연히 찬성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 회장이 반대표를 던진 겁니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다시 논의하기엔 시간이 아깝다’는 겁니다. 이런 걸 밖에선 몰라요. 때론 이런 점 때문에 이사회가 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효율적이에요. 우선 회사의 여러 이해관계자가 지지하는 의견을 택하니까 회사의 결정에 신뢰가 생깁니다.”

    -사외이사들이 기대 이상으로 일을 하는군요.

    “깜짝 놀랄 정도로 열심히 합니다. 회사 경영을 이해하려고 전문분야 설명회에 참가하고, 현장도 방문하고, CEO와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도 내놓고 있어요. 우리도 이사회 안건은 회의 5일 전, 사외이사에게 보냅니다. 그분들이 충분히 검토해서 의견을 내놓아야 이사회 회의할 때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합니다.”

    -그런 이사회를 운영하다가 뜻밖에 얻은 소득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는 연말이면 사내 10대 뉴스를 선정해요. 전 직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조사인데, 2004년 10대 뉴스 1위로-저도 예상치 못했는데-이사회 중심 경영이 꼽혔어요. 예전에도 이사회라는 게 있었지만 모든 안건이 만장일치로 결정돼 신뢰가 없었대요. 그런데 지금은 격론이 벌어지고, 사장의 의견이 부결되고 하는 광경을 보니까 믿음이 가고, 자부심이 생기더랍니다. 이런 점은 정말 뜻밖의 소득이죠. 외부의 평가도 좋습니다.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S&P와 무디스가 우리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반영해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고, 증권사 메릴린치는 우리 이사회의 영향력과 독립성이 국내 최고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는 SK를 지난해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했고요.”

    “이 악물고 뛰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 올린 신헌철 SK(주) 사장

    신헌철 사장이 지난해 수출·자원개발·윤활유 사업부문에서 신기록을 수립한 비결을 말하고 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SK(주)의 중국 사업에 대해 썩 좋은 평가를 내리지는 않더군요. 기대하는 것만큼 활발한 투자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SK는 1991년 국내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개설한 회사입니다. 2000년엔 SK차이나를 설립해 시장조사와 중국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했어요. 2001년엔 중국 진출 유망 13개 프로젝트를 도출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2004년 ‘SK 중국 지주회사’를 설립했죠. 중국 투자가 활발하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SK의 주력인 석유사업은 기간산업이라 중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규제하고 있어요. 그러나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조금씩 시장을 열고 있습니다. 2004년엔 소매시장을 열었고, 2006년엔 도매시장을 개방할 겁니다. 이에 따라 우리와 보완적인 기술을 갖고 있거나 시장을 확보한 업체와 파트너십을 구축할 겁니다. 중국이 아직 정치나 경제, 사회적으로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어서 여러 방면을 고려한 신중한 투자가 이뤄져야겠지요. SK는 현재 중국 내 11개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고, 중국 수출은 3조원 정도 됩니다. 전체 수출액의 28%를 차지하죠. 2010년엔 중국에서 5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하겠습니다. 신 사장께서는 한양대 최고위엔터테인먼트 과정을 공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오락을 공부한 셈인데, 무슨 목적에서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감성경영’이라는 말은 많이 하는데,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한양대 과정은 그것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쉽게 말하면 남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배웠다고 할까요.”

    -거기서 배운 것을 경영에 응용한 사례가 있습니까.

    “2004년 3월 사장으로 취임해 처음으로 임금협상 테이블에 앉았는데, 분위기가 살벌해요. 이런 분위기로는 일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노조위원장에게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뛰자’고 했어요. 제가 마라톤을 좋아하니까 서울 본사에서 울산공장까지 함께 뛰어보자고 제안한 거죠. 그랬더니 ‘발목이 아파서 못 뛴다’고 고개를 젓더군요. 그래서 내가 ‘한 사람이 다 뛰는 게 아니다. 뛰고 싶은 직원들을 모아 10km씩만 뛰자. 못 뛰는 사람은 5km도 좋다. 그런데 주중에는 일해야 하니까 주말에만 뛰자. 그래서 창립기념일 최종 주자가 들어오는 것으로 하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좋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계획을 세웠어요. 서울과 울산이 1100리(440km) 길인데 어느 길로 뛸 것인지, 뛰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어디서 잘 것인지, 길목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 주자는 창립기념식이 열리는 곳에 횃불을 들고 들어오자고 했어요. 우리가 정유공장 직원 아닙니까. 그러니까 불은 우리의 상징이죠. 일에 대한 열정, 동료에 대한 열정을 불로 태워보자는 의미도 있었죠. 저도 22km를 뛰었습니다. 박사학위 받은 연구원도 뛰었고, 여직원도 뛰었습니다. 다리가 아파도 이를 악물고 뛰었어요. 마지막 날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직원도 있었지요.”

    ‘거대한 흐름 속 조각배 하나’

    -그 뒤로 노사관계가 매끄러워졌습니까.

    “그럼요. 올해도 별 문제 없이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해는 창립기념식을 울산공장에서 했는데, 직원 가족까지 모두 참석해 5000명도 넘었을 겁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저는 또 다른 상상을 했어요. 통일을 기원하면서 SK 직원들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이어달리기를 하면 어떨까 하고요. 지난해 북한 용천 폭발사고 때 SK가 아스팔트 1000t을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원한 아스팔트 위에서 SK 직원이 뛰는 날이 온다면 그 또한 감동적일 것 같아요.”

    -이력을 보니 올해로 직장생활 35년째로 접어듭니다. 고비도 많았을 텐데요. 어떻게 극복했는지 비결이 있다면.

    “살다 보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대한 흐름을 만납니다. 그럴 때 나를 조그만 조각배로 여기고 흐름에 순응하면서 살았어요. 후배들에게도 흐름을 만날 때 그게 나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따지지 말고 몸을 맡기라고 얘기합니다. 입사한 지 2년이 지났을 때였는데,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어요. 비포장도로에서 차와 함께 굴렀죠. 죽는 줄 알았어요. 제 동기 중 하나가 비슷한 곳에서 차가 굴러 죽었거든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때 저를 이끌어준 선배 한 분이 그냥 참고 지내라고 했어요.

    두 번째로 회사를 떠날 일이 있었는데, 사원 시절에 에쓰오일로 스카우트될 뻔 했어요. 그때 SK에서 옮긴 분이 지금 김선동 에쓰오일 회장이에요. 과장으로 오라는데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일하고 싶었던 판매기획팀 과장이니 더 좋았어요. 그래서 선배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또 가지 말라고 했어요. ‘3∼4년 일찍 과장 다는 게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도 너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으니 몸을 움직이지 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선배의 조언을 믿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비료 나눠주다 巨富된 농부

    부장 발령을 받을 때였는데, 가고 싶은 부서로 못 가고 신설 부서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또 사표를 쓰고 싶더라고요. 지금으로 말하면 경영기법 개발부 같은 곳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제 인생에 드문 기회였습니다. 당시 최종현 회장님을 자주 만났거든요. 거기서 SK 전직원이 합의한 우리만의 경영철학이자 경영기법인 SKMS를 만들게 됐습니다.”

    -때론 인생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인생의 영역을 확장하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뜻이군요.

    “좀 다른 의미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있었던 얘기를 하나 할게요. 논과 밭에 비료를 뿌리다가 남으면 옆집 논밭에 뿌려주던 사람이 있었어요. 보통은 남은 비료를 집으로 가져갑니다. 내 밭에 더 뿌려봤자 종자가 상하기만 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은 달랐어요. 이웃도 고마워했어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옆집 주인이 논밭을 팔고 이사하게 됐어요. 그 주인은 비료를 나눠준 이웃이 고마워 자신이 갖고 있던 돌산 하나를 헐값에 그에게 팔았죠. 사지 않겠다는 그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거저 주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포항제철이 그 부지에 공장을 짓게 됐고 포철이 엄청난 가격에 그 돌산을 매입했습니다. 이웃에 나눠주면 빙 돌아서 결국 자기에게 혜택이 돌아와요.”

    SK는 실제 이웃에 거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정유공장이 있는 울산에 1000억원을 투자해 110만평 규모의 환경체험공원을 만든다. 오는 4월 준공 예정인데, 울산시에 무상 기부할 계획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

    “남극 탐험가 섀클턴이 쓴 ‘사우스(South)’를 읽어보세요. 637일 동안 남극에서 조난당했지만, 27명 대원을 모두 살려낸 리더십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헌철 사장은 부산상고를 나와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대한석유공사(SK 전신)에 입사해 1995년 SK텔레콤 수도권 마케팅 본부장, SK텔링크 대표이사, 2002년 SK가스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YMCA 연맹 이사, 전경련 자원대책위원회 위원장,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문위원, 국가에너지자문위원회 위원 등의 사외직함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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