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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골프장 사업 시작한 뒤 한국 이름 석 자 당당히 씁니다”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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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이용객 수를 어떻게 끌어올렸습니까.

“골프장 잔디를 정비하고 길을 만드는 작업반 사무실에 방을 하나 만들어 그곳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골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잔디인데, 경비를 절감하면서 잔디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오너를 직접 대면하는 일도 드물 텐데, 아예 함께 생활하겠다고 짐 싸들고 들어왔으니 그린키퍼(잔디관리사)가 반겼을 리 없죠. 더군다나 제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못마땅해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자꾸 부딪치고, 술잔도 주고받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씩 거리감이 좁혀졌어요. 잔디 상태가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요. 처음엔 옥신각신했던 직원들이 모두 ‘심복’이 돼서 제가 지금까지 골프 사업을 키우는 데 밑거름이 되어줬습니다.”

-일본엔 골프장이 2000개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경기도 아직은 제대로 회복된 게 아니고요. 그런데 단지 잔디를 좋게 만들었다고 망해가던 골프장을 살려냈다니….

“시설 좋은 골프장을 그냥 놀릴 수 없어 토니원 골프장이 있는 홋카이도 유바리군 구리야마쇼 지역주민들에게 주중에 골프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주민들이 처음엔 ‘설마 공짜겠어?’ 하고 믿지 않았는데, 정말 공짜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하나 둘, 오랫동안 치지 않던 골프를 다시 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주말 유료 이용객 수도 늘어나고, 몇 개월 후엔 주민들이 먼저 (주중에) 공짜로 치기 미안하니까 멤버십(연회비를 내고, 이용 요금을 할인받는 제도)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껏 연 이용객 수 2만여 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싸다고 다 사는 건 아니죠”



단시간 내에 홋카이도에서 골프장 사업으로 명성을 높인 그는 도쿄 인근의 나수노조 골프장과 나고야 인근의 나가센도 골프장, 히요시 골프장을 추가로 매입했다. 그는 “싸다고 다 사는 게 아니라 기존 회원 수가 어느 정도 되고, 지역적으로 새로운 회원 유입 가능성이 커 노력하면 3년 안에 흑자로 전환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는 골프장만 매입한다”고 말했다.

일본 내 골프장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헐값’에 내놓은 골프장 매물이 수두룩하다지만, 골프장 6개를 소유하고,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라면 상당한 자본이 필요할 터.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골프장을 3개쯤 더 매입할 만한 재산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수십만평인데 땅값만 계산해도….

“요즘 일본 골프장이 아주 쌉니다. 18홀이면 보통 40만평은 되는데, 일본에서 처음 골프장을 만들었을 때는 한국 돈으로 600억원에서 1400억원쯤 들었죠. 지금은 그 10분의 1 정도면 삽니다. 은행에서 채권을 빨리 현금화하려 하기 때문에 아주 싼 값에 팔죠. 제가 파친코 업소를 6개 갖고 있었는데, 그것 하나 정리하면 골프장 하나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은 파친코 업소를 다 정리했죠. 일본에선 골프장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골프장을 살 때마다 부동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합니다.”

이호진 회장은 1949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5세 때 어머니, 누나와 함께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갔다. 이후 각종 유흥업과 부동산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본과 제주도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오사카에 이미 자리를 잡은 터라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내진 않았지만 그의 청년기는 누구보다 치열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혼자가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시고, 누나는 같은 밀항선을 탔던 청년과 결혼해 출가했거든요. 그때가 열아홉 살이에요. 일본을 떠나던 날 부두에서 아버지가 제손에 3000엔을 쥐어주시며 이러시더군요. ‘나는 열다섯 살에 혈혈단신 밀항했어도 일본에서 이만큼 자리잡았는데, 넌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으니 훨씬 낫지 않겠냐.’ 그날부터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유흥업으로 기반 마련

혼자 남겨진 그는 오사카에서 ‘밑바닥’ 일치고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할 만큼 온갖 일을 했다. 공사장 막노동, 고구마 장수, 술집 웨이터….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한 곳에 진득하니 붙어 있지 못하던 그는 스물한 살에 지금의 부인을 만나 일찌감치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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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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