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외국어 표기방식, 문제 있다!

‘일본경제신문’을 왜 ‘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 합니까?

  • 김수훈 재미교포

    입력2006-03-14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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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 편집실로 몇 장의 편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 김수훈씨. 1930년 지금의 중국 하얼빈 ‘러시아인 거리’에서 태어난 김씨는 영어, 일어, 러시아어에 능해 군 통역병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매일같이 접하는 일본과 중국의 인명 및 지명 표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문적 근거가 뒷받침된 것은 아니지만 함께 생각해볼 만한 내용도 있어 게재한다.
    외국어 표기방식, 문제 있다!
    광복 6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청산하지 못한 것이 일본의 인명과 지명 발음이다. 우리는 원래 한자권 국가의 경우에는 한자를 우리말로 발음하고, 비한자권 국가의 경우엔 원음 아니면 유사한 발음이나 그 뜻을 따서 가령 ‘Berlin’을 ‘伯林(백림)’, ‘Pearl Harbor’를 ‘眞珠灣(진주만)’ 등으로 표기했다.

    비단 지명뿐만 아니다. 단체 명에 대해서도 그 뜻을 따서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를 ‘南加州大學(남가주대학)’이라 하고, ‘Northwest Airline’을 ‘西北航空社(서북항공사)’라 불렀다.

    그런데 오직 일본에 대해서만 ‘東京(동경)’을 ‘도쿄’로, ‘北海道(북해도)’를 ‘홋카이도’라고 부른다. 단체 명도 ‘日本大學(일본대학)’이 ‘닛폰대학’이어야 하고, ‘明治生命(명치생명)’은 ‘메이지세이메이’라고 불러야 한다.

    요새 방송에서 자주 듣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왜 ‘日本經濟新聞(일본경제신문)’이라 부르지 않나.

    최근에는 사극에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도대체 400년 전 우리 조상 중 누가 ‘加藤淸正(가등청정)’을 ‘가토’라고 했으며, 100년 전 누가 ‘伊藤博文(이등박문)’을 ‘이토’라고 불렀겠는가. 이것은 고증(考證)에 충실해야 할 사극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런 관행은 일제 강점기도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 가령 1930년대 중반에 발행된 민족지를 보면 ‘大阪’이라 쓰고, 그 옆에 ‘오사카’가 아니라 ‘대판’이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長谷川’이라고 쓴 옆에는 ‘하세가와’가 아닌 ‘장곡천’이라는 우리말 토가 달려 있다.

    일본식 교육 받은 지식인의 편의

    그렇다면 일본 인명과 지명을 원음대로 발음해야 한다는 원칙이 언제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이런 괴상한 논리는 국수주의가 창궐하던 1930년대 일본에서 생겨났다. 그것도 다른 나라 것은 무방하고 오직 일본 것만 그렇게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1934년 일본 정부는 각국에 “일본의 국호는 ‘Japan’이 아니고 ‘Nippon’이니 앞으로는 그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거기에 응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국호뿐 아니라 천황도 ‘Emperor’가 아닌 ‘Tenno’, 천황의 생일 천장절(天長節)은 ‘Tenchosetsu’ 등 일본에 관한 모든 것은 다 일본 발음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관영 영자지를 보면 이것이 과연 영문인지 일본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1937년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 각 기관에 같은 룰을 적용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문화가 상당부문 침투해 있는 상황이라 별 혼란이 없었다. 문제는 광복 후에 생겼다. 일본 발음대로 표기하던 것을 ‘중승’이니 ‘폐원’이니 하니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중승’은 ‘오키나와(中繩)’, ‘폐원’은 ‘히데하라(幣原)’ 전 일본 수상을 가리킨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어느새 다시 일본 발음대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일본식 발음대로 표기하는 건, 당시 일본식 교육을 받은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편의에 의해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선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호금도’라 부른다. 그러면서 일본 수상은 ‘고이즈미’라고 부른다. 기회 있을 때마다 ‘민족’을 내세우고 ‘주체’를 외치면서도 몸에 밴 식민지 근성의 잔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그후 우리 정부의 한자(漢字) 폐지정책과 더불어 어느덧 일본식 발음대로 표기하는 관행이 일반화됐다.

    그러다 일본어에만 특별한 관행을 적용하는 것에 모순을 느끼고, 중국어에 대해서도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현지 조선족들조차 ‘흑룡강’이라고 부르는 강을 왜 갑자기 ‘헤이룽장’이라고 해야 하나. 이것을 알아들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베트남엔 ‘나트랑’이 없다

    이른바 ‘원어음 준수’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보여주는 예를 하나만 들겠다. 베트남에 ‘Nhatrang’이라는 도시가 있다. 베트남전 당시 우리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우리는 영어 표기법을 따라 ‘나트랑’이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이곳을 ‘낫짱’이라고 부른다. 만약 우리나라 관계자들이 원음원칙에 충실하다면 우리나라와 전혀 무관한 곳도 아닌 그 도시를 왜 그 나라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남의 나라 발음으로 표기하는가.

    결국 이 ‘원어음 원칙’이란 구세대에 깊이 박힌 일제 식민지 의식을 감추기 위한 구실이며, 여기에 중국 등 그밖의 나랏말은 들러리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것이 국치(國恥)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관행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일제 식민지였다는 오점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살아가는 꼴이 될 것이다.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중국어 원음 표기를 당장 개선해야 한다. 일본어 표기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만큼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그러나 조속히 개선해 나가야 한다.

    필자는 일제 강점기에 교육받은 구세대라 순수 한글보다는 한자가 섞인 일본식 표기가 읽기에 훨씬 수월하다. 그런 까닭에 개인적으로는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 편리하다.

    그러나 그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마오쩌둥’이니 ‘덩샤오핑’이니 ‘후진타오’니 하고 불러본들 중국인들이 결코 우리 대통령을 ‘노무현’이라고 불러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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