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공부, 왜 하는데?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 khmzip@donga.com

    입력2006-03-14 1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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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 왜 하는데?

    공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이고, 진정한 공부란 어떤 것인지 일러주는 책들.

    온라인 서점에서 ‘공부’라는 단어로 검색을 했더니 1685개의 상품을 찾았다는 결과를 알려준다. ‘상위 1%로 가는 10분 공부법’ ‘공부 잘하고 싶으면 학원부터 그만둬라’ ‘우리아이 공부 잘하게 하는 논술 글쓰기 비법’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공부의 비결’ ‘공부가 즐거워지는 습관, 아침 독서 10분’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공부저력’ ‘공부 잘하고 싶으면 혼자서 공부해라’ ‘티치미 공부법’ ‘한국의 공부벌레들’ ‘공부 9단, 오기 10단’….

    꼭 10년 전 막노동꾼 출신 서울대 수석합격자로 유명세를 날린 장승수씨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낸 이래, ‘공부’는 출판가에서 놓칠 수 없는 키워드가 됐다. 출판사마다 공부법 전담팀이 생길 정도다.

    공부법(혹은 학습법) 관련 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원인은 지식 그 자체보다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사상을 집대성한 ‘탈무드’에서 자식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공부의 비결’이란 책을 쓴 세바스티안 라이트너 박사는 “공부는 수영이나 운전처럼 누구나 노력하면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능력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자동차 레이서가 코스를 아무리 빨리 주파한다 해도 운전을 할 줄 아는 보통사람이 며칠 연습하고 나서 똑같은 경주용차로 달렸을 때보다 기껏해야 두 배 빠르다는 것. 라이트너 박사에 따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10가지 언어를 배울 능력이 있으며 단지 학습방법과 동기가 문제다. 이제 희망이 보인다. 나름대로 정립된 학습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이미 1000종이 넘게 나와 있다!

    하지만 지금의 유행은 수상하다. 책을 펼치면 이렇게 해야 효과적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일장 연설을 하는데, “공부해서 뭐할 건데?” 하고 물으면 답이 안 나온다. 하긴, 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다. 정답은 한때 ‘서울대’였고 지금은 ‘하버드대’로 바뀌었다. 하버드대 간판을 달아야 인재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직업인생 준비부족’이라는 병

    마치 족집게 과외선생을 찾듯 공부 잘하는 비결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내 아이의 스무 살, 학교는 준비해 주지 않는다’(멜 레빈 지음, 도서출판 소소)를 권하고 싶다. 소아과 전문의로 학습·행동장애를 연구해온 저자는 스무 살에 접어든 ‘초보 어른’들 사이에서 ‘직업인생 준비부족이라는 전염병’을 발견했다.

    오늘날 정규교육이란 무엇인가. 1학년은 2학년 때 읽기를 배울 것에 대비해 철자법을 배우고, 2학년은 3학년 때 이야기책을 접할 수 있도록 유창하게 읽는 법을 배운다. 고등학생은 가능한 한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필요한 사전지식을 배운다. 끊임없이 다음 단계를 준비시킨다. 그래서 초·중·고등 학교는 정확히 말하면 ‘대학생활을 준비시켜 주는’ 곳이다. 그런데 왜 인생 준비 학교는 없을까.

    저자는 또 정규교육을 뷔페에 비유했다. 수학, 역사, 철학, 성교육, 컴퓨터 뭐든 배울 수 있는 곳. 수업이 끝나면 운동을 하고 악기 연주를 배우고 친구들과 인터넷 채팅, 휴대전화, TV, DVD 같은 간식거리까지 메뉴는 무제한이다. 그러니 10대 시절에는 선택의 고민이 없다.

    그러나 20대가 되면 한 가지 직업, 한 명의 배우자를 골라야 한다(한국에서는 20대 후반 혹은 30대가 돼야 비로소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선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모든 삶을 살 수 없다. 뷔페는 끝났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지금의 교육과 양육 방식이 현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로교육 전문기관인 와이즈멘토의 조진표 대표는 대한민국에 약 1만개의 직업이 있는데 부모나 아이들이 아는 직업은 5개를 넘지 못한다고 말한다. 부모나 아이가 바라는 직업은 각각 ‘의사·변호사·한의사·치과의사·교사’, ‘과학자·축구선수·의사·CEO·연예인’으로 한정돼 있다. 조 대표는 장래 목표야말로 아이들이 공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망각하고 오직 단기적인 성적 올리기에 급급한 교육환경을 비판했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을 서울대 치대에 보내는 게 목표라고 해서 제가 그랬죠. ‘서울대 치대 없어졌어요. 전문대학원으로 바뀌어서 학부에서는 신입생 안 뽑아요’라고.”

    조 대표는 ‘한국의 공부벌레들’(한국경제신문) ‘현명한 부모는 아이의 10년 후를 설계한다’(예담프렌드) ‘만화로 보는 직업의 세계’(동아일보사) 등 3권의 책을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첫 책은 소위 우등생 벤치마킹하기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은 장래 직업교육과 관계된 내용이다. 조 대표는 ‘한국의 공부벌레들’이 한국 시장에 먹히는 제목이라서 잘 팔릴 거라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그 책은 몇 주 만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저자 강연회를 열면 빈 자리 없이 학부모들이 몰려들었다. 반대로 나머지 두 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더딘 편이다. 당장 명문대가 목표인 사람들에게 10년 후 자녀의 미래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기 때문일까.

    허탈한 요즘 공부 열풍

    한신대 신학과 김경재 교수는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한국일보)라는 제목의 글에 이렇게 썼다.

    ‘대학원을 마칠 무렵, 공부의 세계는 넓고 공부하는 방법도 연구대상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숲을 보지 못하고 한 그루 나무에만 집착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의 붓대롱으로 본 하늘이 ‘하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의 태도는 공부하는 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겸손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일정한 나의 견해를 지니면서도 독단적 편견에서 벗어나고,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이해하고, 상대적인 것을 통해서 절대적인 것을 말하고 체험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이 붓대롱으로 본 하늘이 다인 줄 알며 다음 세대에게도 그렇게 보라고 가르친다.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부모가, 미래를 살아가야 할 자식의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내 아이의 스무 살, 학교는 준비해 주지 않는다’의 저자 멜 레빈은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내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꼭 알아야 할 내용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고 했다. 철자가 얼마나 정확한지, 삼각함수 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지,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했다가 앵무새처럼 욀 수 있는지, 운동신경이 얼마나 뛰어난지 하는 따위들은 이름을 댈 수 있는 거의 모든 직업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

    대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자신의 업무수행을 스스로 모니터링하면서 정밀하게 조정하는 능력, 당당하게 의사소통하는 능력, 일을 계획하고 미리 예상해보는 능력 같은 것들은 초보 어른들로 하여금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러한 악순환을 끓을 수도 있는 중요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런 기술들을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작금의 공부 열풍이 허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의 디즈니랜드’

    올해 초 인하대 경제학부의 윤진호 교수가 ‘보스턴 일기’(한울)라는 흥미로운 책을 펴냈다. 2001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년간 미국 MIT에 교환교수로 가 있으면서 참석한 150여 회의 세미나, 강연, 토론회 등을 일기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저자가 MIT와 하버드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고색창연한 건물도, 저명한 교수진도, 막강한 연구비도 아니며 캠퍼스 곳곳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각종 강연회와 세미나였다고 한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하루에 서너 군데씩 참석해 토론과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기회가 무료다. 보스턴을 왜 ‘지식의 디즈니랜드’라고 부르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윤 교수는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이런 제안을 했다. 정부, 기업, 언론기관 등에서 미국으로 연수생을 보낼 때 대학 같은 곳에 등록할 필요도 없이 1년치 생활비만 주자. 유일한 요구 조건은 세미나든, 음악회든, 미술관이든 1년 동안 각종 행사에 100회 이상 참여하고 그 결과를 1회 행사마다 A4용지 1장씩 모두 100장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도록 하자. 100명씩 선발한다고 하면 연간 1만 장의 보고서가 쌓인다. 어마어마한 지식의 축적이며 이 과정에서 인적 교류라는 부수입까지 얻을 수 있다. 세미나에 참가하다 보면 자연히 각국의 관료, 기업인, 정치가, 노동운동가, 교수 등과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지식의 즐거움을 목표로 한 진정한 공부다. 과연 우리 정부와 기업, 대학과 국민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식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지식의 디즈니랜드’를 즐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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