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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IMF 사태’ 10년

‘성장동력 상실 10년’의 회고

‘위기 주범’ 관료에 칼자루 맡긴 것이 패착

  •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jkj@kankyung.com

‘성장동력 상실 10년’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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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사건만 해도 그렇다. 한쪽에서는 투기자본을 공격하고 다른 쪽에서는 반(反)외자 정서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 나라에는 앞잡이와 멍청이, 둘만 남아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보니 한미FTA 협상은 이미 협상도 아니어서 반미구호가 넘치고 과격 데모대가 거리를 휩쓰는 그런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온당한 논쟁은 설자리가 없다. 소위 시장경제를 주창하는 사람은 그 반대편을 모르고, 그 반대편은 시장경제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증권시장도 마찬가지다. 투기자본의 앞잡이들과 반시장경제의 수구세력이 양 극단에서 논의를 장악하고 있다. 극우와 극좌가 동거한다. 노무현 정부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월가의 앞잡이들을 활용한다. 그것은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가면놀이와 비슷하다.

김대중 정부는 위기수습 과정에서 시중은행을 대부분 외국자본에 매각했다. 정부가 지분을 가진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시중은행의 절대지분은 이미 외국인이 갖고 있다. 내국 상업은행 지분의 대부분을 외국인이 보유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외국인의 은행지배력은 10%를 좀체 넘어서지 못한다.

금융산업 통제 무력화

주요 은행의 장들은 거의 모조리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로 채워졌다. 성분으로 따지자면 이들은 김대중 정부는 물론 노무현 정부에도 적대세력에 가깝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386이 감방 갈 때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고액 연봉 받으며 국제금융자본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들어 이들과 더욱 확실한 동맹이 구축됐다.



이렇게 극단적인 좌우 동거가 외환위기 이후의 단면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불거진 사건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건이다. 실체적 진실보다 네 편, 내 편으로만 여론이 갈리고 있다. 소위 시장경제론자는 론스타에 대한 수사 자체에 거부 반응을 보이고, 반대편은 ‘투기자본 척결’ 식의 논리를 편다. 주가 조작과 규정위반, 정부의 월권적 유권해석 등은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는다. 모두가 정황과 상황 논리로만 문제를 인식하고 만다.

재미있는 것은 반시장 세력이 오히려 더욱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반시장주의자들은 강력한 반기업 세력이기도 했기에 한국의 재벌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다는 식이었다. 반시장주의자들이 한국의 대기업을 꽁꽁 묶어놓으면서 소위 신자유주의적(이 말이 한국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도 불분명하지만) 프로세스가 진행됐다. 금융산업에 대한 통제는 그렇게 무력화됐다. 이것이 외환위기 10년의 제1 국면이다.

금융개방이 모든 죄악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러나 과잉처방이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은행은 알고 보면 ‘면허 장사’다. 한국은행에서 곧바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기관은 은행밖에 없다. 정부가 내준 면허장을 들고 좌판을 운영하면서 이자를 따먹는 사업이 은행업이다.

은행의 노하우는 오직 하나, 돈을 떼이지 않는 것이다. 좋은 말로 리스크 관리가 은행 경영 노하우의 요체다. 남의 돈으로 거의 무한한 신용을 창출하는 것이 은행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은행에 대해서는 복잡하고도 엄격한 면허기준을 만들어놓는다. 골드만삭스니 JP모건이니 하는 국제 투자은행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굳이 노하우를 따지자면 조달 금리를 낮추는 능력이 그 다음이다. 이것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조달 금리는 축적의 문제이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은행들이 죄다 노출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돈을 가장 잘 버는 사업은 은행업이다. 정부의 신용을 밑천으로 장사하는 업종은 은행이 유일하다. 그 때문에 금융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고 최후에 개방 절차를 밟는 것이지만 한국은 거꾸로 갔다. 양극화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누적된 결과이다.

대통령 포위한 관념론자들

관료들이 정신을 못 차린 것이 다음 국면이다. 김영삼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외환위기를 당한 가장 큰 잘못은 물론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진행 경과를 오판한 관료들이 결코 면책될 수 없다. 관료들의 오만함과 시장에 대한 무지, 시장을(가격을, 환율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얽히면서 걷잡을 수 없는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국가경제를 설계하겠다’는 관념론자들이 대통령을 포위하고 가격과 맞서려다 당한 것이 외환위기다. 당시 경제팀은 환율을 1달러당 900원대에 묶어놓으려다 외환 보유고를 탕진했다. 관료들이 국가의 미래 청사진 따위를 들고 다니면서 유세하던 때가 10년 전이다. 관료들은 지금 ‘비전 2030’ 같은 청사진을 또 꺼내들고 있다. 골수에 든 깊은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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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jkj@k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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