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뜨거운 감자, 外高

강력한 수요와 애매한 대처가 낳은, 이 똑똑한 사생아를 어찌할꼬!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7-07-06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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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3생 13.4% 특목고 진학 희망… 특목고생은 2.1%뿐
    • 대원외고 “대학들이 정부 내신강화 방안과 다른 길 가리라 확신”
    • 외고가 변질? 처음부터 성적우수자 뽑으라 한 건 교육당국!
    • A외고 1학년 97%, 첫 모의고사 외국어영역 1등급
    • 사라진 외국어 특기자전형 “외국어만 잘하고 다른 과목은 못 따라와서…”
    • 소년소녀가정 전형 있지만 합격자 全無
    • 외고 재학생 84.3% “친구 간 경쟁의식 강해”, 66.4% “수학 사교육 받아”
    뜨거운 감자, 外高

    지난해 대원외고 특별전형이 치러지던 날, 많은 학부모와 학원 관계자들로 학교가 북적였다.

    초중학생 학부모들은 자녀를 외국어고나 과학고에 보내기 위해 일찌감치 ‘특목고 전문’ 간판을 내건 학원에 등록시키고, 학교와 학원이 마련한 입시설명회 찾아다니느라 분주하다. 주위를 돌아보면 동네 학원 간판이며 학원 광고 전단지에 ‘특목고’ 문구가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주 공략대상이 고등학생과 재수생에서 초·중학생으로 전환된 학원가에서 ‘특목고’는 확실한 ‘세일즈 포인트’로 자리매김했다. 입시학원 관계자의 말이다.

    “학원에서 주최하는 각종 입시설명회의 가장 큰 목적은 학원 홍보죠. 얼마나 많은 학부모가 관심을 갖느냐가 관건인데, 사실 순수하게는 100명 동원하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특목고’를 제목에 넣으면 2000~3000명이 모여드니, 특목고를 내세우지 않을 수 있나요.”

    특목고(과학고, 외국어고) 전문 입시기관인 하늘교육 임성호 기획이사는 “5년 전부터 특목고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특히 최근 2~3년 새 특목고 졸업생의 대학진학 실적이 공개되면서 특목고 진학 희망자 규모가 에스컬레이터를 탔다”고 진단한다.

    특목고 진학 희망자 규모는 한국교육개발원의 ‘한국교육종단연구2005’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지금의 중학교 3학년이 중학교 1학년일 때 13.4%가 특목고 진학을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고등학생 중 특목고 학생의 비율이 2.1%에 불과한 것을 감안할 때, 특목고 입학을 위한 경쟁이 올해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고 인기 고공행진, 자사고는 하락



    6월2일 토요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입시설명회가 열리는 대원외고 1층 컨퍼런스룸은 학부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원외고는 홈페이지를 통해 입시설명회 일정을 미리 공고하고 참석 예약을 받았는데, 2주 전에 확인했을 때 이미 ‘예약 완료’ 상태였다. 자녀가 외고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부모들 사이에 대원외고가 단연 최고 인기라는 얘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예약하지 않고 가도 한두 사람 앉을 자리는 있을 거라는 ‘정보’를 입수해 무작정 찾아갔는데, 다행히 출입문 가까운 곳에 빈 자리가 보인다. 150명 남짓한 학부모의 연령대는 30대 중반에서 50대까지 폭이 넓어 보였다. 대체로 ‘엄마’들이 많으나 절대적 우세는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온 경우, ‘아빠’만 온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질문은 ‘아빠’들이 더 많이 했다.

    하늘교육이 지난해와 올해 전국 초·중학생 학부모 56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목고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특목고 중에서도 외고 선호도가 가장 높고, 외고 중에서도 대원외고를 첫손에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고 선호도는 전년 60.3%에서 66.7%로 높아졌다. 반면, 자립형사립고는 15.9%에서 10.3%로 감소했다. 과학고는 23.8%에서 23%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학교별로는 대원외고(34%)가 2006년에 이어 2년 연속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명덕외고(11.3%), 한국외대부속외고(11%), 대일외고(5.3) 순이었다.

    학부모들의 이 같은 선호도는 대체로 대학진학 실적에 비례한다. 서울시의회 이윤영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대원외고의 2007학년도 서울대, 연·고대 진학률이 전체 졸업생의 68.6%다. 서울시내 8개 과학고와 외고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 다음은 명덕외고(61.1%), 한영외고(58.8%), 서울과학고(50%), 한성과학고(43.6%), 대일외고(40.7%) 순으로 이어졌다.

    소위 명문대 진학률로만 보면 과학고가 외고에 뒤지지 않는데도 선호도가 낮은 것은 모집단위 때문이다. 전국 29개 외고가 총 1만여 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반면, 전국 20여 개 과학고의 모집인원은 1700여 명에 불과하다. 서울 소재 학교로만 비교하면, 외고는 6개 학교에서 2100명, 과학고는 2개 학교에서 280명을 뽑는다.

    외고는 10여 년 전만 해도 일부 상위권 중3 학생들이 한번쯤 도전해보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중위권 학생까지 특목고 진학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2007학년도 서울시내 6개 외고 특별전형 평균경쟁률이 8.38대 1이었다. 일반전형 평균경쟁률은 4.67대 1로 2006년의 4.43대 1, 2005년의 3.81대 1보다 높았다. 외고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나서 “내신성적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하에서는 동일계 이외의 분야로 지원하는 외고 학생이 불리한 위치에 있다”(2006년 6월21일 교육인적자원부 국정브리핑)고 엄포를 놓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아랑곳하지 않은 결과다.

    삼밭이냐 쑥밭이냐

    다시 대원외고 입시설명회장. 학교를 소개하는 10여 분 분량의 동영상이 꺼지자 진행을 맡은 교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학부모들은 수첩을 펼치고 펜을 들었다.

    “대학 들어가는 데 불리할까봐 대원외고 진학을 망설이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러면 먼저 특목고가 입시에 불리한지 살펴보지요.”

    대입에 있어서 특목고의 유·불리를 따져보는 것으로 본격적인 설명회가 시작됐다.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를 반영한 대목일 터.

    “불리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절대 불리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고, 예년에 비해 훨씬 불리하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부가 2008학년도 이후 대입 전형에선 내신이 강화될 거라고 했지만 이게 잘 시행이 안 됩니다.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데려가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해요. 우수한 학생을 뽑아놓으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니까요. 정부가 원하는 것과 대학의 바람이 분명 다르기 때문에 저희는 대학들이 정부의 (내신 강화)지침과 다른 길을 찾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대학들이 지금껏 그래왔거든요. 입학 전형에 다양한 트랙이 만들어진 게 그 방증이죠. 내신과 별로, 혹은 전혀 상관없는 트랙들이 만들어졌고, 그게 점점 확대되는 추세예요. 과거 몇십 명 규모였던 게 지금은 수백, 수천 명으로 늘어났어요. 2008학년도 입시안만 봐도 고려대가 정시인원의 50%를 수능만으로 선발하겠다고 했어요. 연세대도 마찬가지고요. 불리하지 않은 길이 많아지고, 넓어지고 있는 거죠.”

    진행자는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각 대학의 내신 실질반영률은 그리 높지 않고, 논술 구술 면접 적성검사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 서울대, 연·고대, 이화여대 등이 2008학년도 입시에서 예정하고 있는 ‘특기자 전형’이야말로 특목고생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쐐기를 박듯 “특목고 졸업생 절반 이상이 서울대와 연·고대에 진학한다”며 “대원외고는 2007학년도에 302명이 서울대와 연·고대에 진학하고, 70여 명이 미국 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학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부가 함께 온 경우 서로 마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주고받기도 했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말이 있습니다. 쑥을 삼밭에 심어놓으면 삼을 닮아 곧게 자란다는 말이지요. 고등학교 3년을 어떤 환경에서 보내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막말로 삼밭이냐 쑥밭이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죠.”

    “대학은 특목고를 원한다”

    ‘삼밭이냐 쑥밭이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이지만, 이날 대다수 학부모가 그 말에 마음을 빼앗긴 게 사실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주부 김희정(45)씨는 “내신이 불리해 망설였는데, 학생 절반 이상이 서울대, 연·고대에 진학하고, 해외 대학도 내다볼 수 있는 환경에서 공부시키는 게 낫겠다는 확신이 섰다. 일반고에서 내신 1, 2등급이어도 좋은 대학 가기 힘든 현실에 비하면 내신이 불리하더라도 우수한 학생들과 더불어 실력을 키우는 게 훨씬 많은 기회를 만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외고의 교육 여건이 내신 불이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고는 요즘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정부는 치열한 외고 입시 경쟁으로 인해 사교육이 과열되는 걸 막으려고 안절부절못하지만, 자녀를 외고에 보내려고 안간힘 쓰는 학부모들을 당할 재간이 없다. 대원외고 입시설명회장에서도 거론됐던, 대학의 특목고 편애가 기정사실화하면서 학부모들의 외고 고집은 결과적으로 대학입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 됐다.

    연세대를 비롯한 서울 소재 대학교 상당수가 2008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전형에서 내신 4등급까지 만점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한 데 이어 고려대도 입시설명회에서 학부모들에게 “내신 실질반영비율이 높지 않을 것이므로 수능과 논술에 치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세대와 고려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이미 정시의 50%를 수능 성적만으로 선발한다고 발표한 터라 나머지 50%에 한해서만 내신성적을 반영하는데, 이마저 실질반영률이 낮거나 ‘4등급까지 만점’을 적용하면 대입에서 내신성적은 변별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할 게 당연하다.

    뜨거운 감자, 外高

    지난 4월, 연세대에서 열린 ‘특목고 입시설명회’에 초·중학생 학부모 3000여 명이 참석했다.

    목동의 한 특목고 입시학원 관계자는 “서울대가 2008학년도 입시에서 내신 1등급과 2등급에게 똑같이 만점을 주기로 결정한 것에서부터 특목고생 유치에 대한 대학의 고민이 묻어났다”며 “내신 1등급에게만 만점을 주면 수능 성적이 좋은 특목고생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내신 만점 범위를 넓혀 특목고생의 내신 불리를 완화하려는 게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서울의 한 일반사립고 교사는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를 특목고에 안 보내면 마치 이류 인생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대학이 나서서 특목고에 특혜를 주려고 하니 결국 고교등급제가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평준화제도와 영재교육

    그러나 “성적이 월등히 우수한 아이들끼리 모여 있는 학교와 일반학교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순 없지 않으냐”고 말하는 일반고 교사도 있다. 이 교사는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려고 하는 건 탓할 수 없다”며 “문제는 특목고가 ‘특수목적’이 아닌 일반고와 같은 목적으로 운영되면서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는 특혜를 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사의 지적처럼 특목고는 ‘지적 수월성을 신장시키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한다’고 인정받으면서도 본래의 설립취지를 저버리고 세칭 ‘입시 명문고’ 기능에 충실하다고 비난받아왔다. 이러한 비난은 특히 외고에 집중되는데,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과학고 졸업생은 대부분 이공계로 진학하는 데 반해 외고 졸업생은 극히 일부만이 어문계열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일부 외고의 경우 줄업생이 어문계열보다 이공계로 진학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외고가 ‘어학영재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에 반한 채 대입준비기관으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는 비난이 일었다. 과학고는 모두 공립인 데 반해 외고는 사립 비율이 높다는 것도 외고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외고가 특목고로 지정된 1990년대 초·중반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10년 넘도록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결국 외고 열풍이 평준화 제도의 근간을 위협한다고 우려하는 지경에 이른 건 왜일까.

    ‘8학군 병’에 대한 응급 처방

    진단이 명확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가능한 법. 사단법인 한국교육연구소 이종태 소장이 최근 펴낸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중장기 운영 방향 및 발전방안 연구’는 특목고 제도 도입 당시 설정한 정책 목표와 수단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특목고의 현황과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이 보고서는 서두에서 “특수목적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정확한 의미나 정책적 의도를 어디에서도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밝히고 있다. 정확한 의미 규정이나 정책적 의도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만들어졌으니 제대로 관리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 보고서는 차선책으로 특목고가 걸어온 길을 추적하면서 특목고의 의미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추정하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다. 1974년 시행된 고교 평준화제도는 당시 중학생 과외 열풍, 고입 재수생 누적이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선지원 후시험의 고교입학제도를 연합고사 후 추첨을 통한 배정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평준화제도 시행으로 명문고 중심의 학연·학벌주의가 크게 완화됐지만, 학교선택권 제한과 소위 영재들이 학교교육에서 소외된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80년 ‘7·30 교육개혁’을 계기로 과학과 어학 분야 영재를 기르기 위한 특목고 설립이 계획된다. 그리고 1983년 경기과학고가 탄생했다. 이듬해 대원, 대일 같은 몇몇 외국어학교도 개교했지만 특목고가 아닌, 학력이 인정되는 ‘각종학교’ 지위에 머물렀다.

    외국어학교가 정규 외국어고로 전환된 것은 1992년. 이 보고서는 “일명 ‘8학군 병’을 완화하기 위한 처방이었다”고 분석한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 강남 학교들이 강북의 학교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이자 강북의 학부모들이 강남의 고등학교에 자녀를 취학시키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결국 문교부가 ‘고교평준화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는데, 여기에 과학고와 예체능계 고교를 추가 설립하고 ‘어학 영재를 위한’ 외고를 신설함으로써 고등학교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추진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각종학교로 출발한 외국어학교들이 정규 고등학교로 인가받고, 추가로 외고를 더 신설하도록 인가했다.

    결국 외고는 강남 일부 고교로의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어학 영재 양성’이라는 취지를 달았지만, 어학 영재 판별법은커녕 차별화된 교육과정이나 교재도 없이 외고를 정규고등학교 범위로 끌어들였다.

    교육당국의 자가당착

    또한 당시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외고 응시 자격은 외고가 입시 명문고로 성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문교부에 의해 외고 설립이 기정사실화된 1991년 9월, 서울시교육청은 기존의 3개 외고(대원, 대일, 한영)를 정규학교로 개편하는 동시에 2개의 새로운 외고(명덕, 이화)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와 함께 응시 자격을 ‘서울시내 각 중학교의 성적 상위권 5% 이내 학생으로 제한할 계획’임을 공표했다.

    외고는 생겨날 때부터 포장은 어학 영재 육성을 위한 학교지만, 내용은 상위 성적 학생들로 제한됐다. 결국 외고 입시는 출발부터 지금까지 줄곧 ‘성적 우수자 집단에 대한 선별 기회’였던 것이다.

    이종태 소장은 이 보고서를 통해 “특목고에 관한 사회적 논란과 교육적 왜곡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현 시점에서 특목고가 영재 교육을 위한 기관인지 아니면 단지 성적 우수자에 대한 선별 기제를 허용하기 위한 것인지 분명하게 선택하고 그에 맞게 정책과 제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특목고, 특히 외고에 대한 다각적인 점검과 지도를 실시했지만 결국 나온 조치라는 게 ▲2010년부터 전국단위 선발을 지양하고 시·도별 선발 방식을 도입하도록 한다는 것 ▲학생 선발 기준에서 내신의 실질 반영률을 대폭 높이도록 한 데 불과하다. 정부의 지침을 충실히 따른 나머지 일부 외고는, 외국어에 상당한 소질이 있어도 중학교 내신 성적이 최상위권에 들지 않은 학생은 외고에 들어갈 수 없도록 전형을 바꿨다.

    일례로 대원외고는 지난해 10명을 선발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특기자 특별전형을 올해부터 없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외국어 특기자를 뽑아보니, 외국어는 잘하는데 다른 과목 학습능력이 떨어졌다. 한 가지만 잘해서는 지식의 장애인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일반전형으로 들어와서 제2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훨씬 높아 외국어 특기자 전형을 없앴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외고 입시는 특별전형과 일반전형으로 구분되는데, 대체로 내신 성적과 영어듣기, 구술·면접이 큰 틀을 이룬다. 그리고 전형 부문에 따라 평가항목에 영어 에세이 쓰기, 토플이나 텝스 성적, 학교장 추천이나 수상경력 등이 추가된다. 얼마 전 ‘토플 대란’의 진원지로 외고가 지목됐으나 외고의 모든 전형에서 토플점수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영어능력 우수자 전형, 국제화 전형 등에 지원할 경우만 토플 점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외고의 영어듣기 시험 난이도가 워낙 높은데다 외고 지원자들의 영어 실력이 대체로 뛰어나기 때문에 영어 특기자 전형에 지원하지 않더라도 외고에 합격하려면 ‘토플식’ 영어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입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원외고 입시 설명회에선 “내신비중이 높아졌으니 학과 공부에 충실하고, 영어 듣기와 구술면접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영어듣기 시험 수준은 중학교 3학년 수준이 아니라 수능 외국어영역 듣기 수준보다 높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사교육으로 단련된 실력

    특목고 입시 학원에선 여기에 맞춰 학생들을 훈련시키기 때문에 중3 여름방학 때면 영어는 이미 고3 수준을 마스터하도록 계획한다. 덕분에(?) 지난해 3월에 치른 전국 연합학력평가에서 서울 상위권 3개 외고 1학년의 87% 이상이 외국어영역 1등급이고, 99%가 2등급 이상이었다. 하늘교육이 ‘서울 중·상위권 외고 수능 영역별 1등급 비율’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A외고 1학년은 첫 모의고사에서 97.19%가 외국어영역 1등급을 받았다. B외고는 83.14%, C외고는 82.04%가 1등급이었다.

    이 같은 통계는 외고 신입생의 영어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가늠하게 하는 동시에 외고 진입장벽이 얼마나 높은지도 실감케 한다. 그러나 특목고 입시 전문가들은 “영어 실력을 높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외국 어학연수를 당연한 코스로 여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하늘교육 임성호 이사는 “특목고 입시 설명회 때마다 ‘언제 외국에 보내는 게 유리하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며 “‘강남에서는 그런다더라’ 하는 검증 안 된 소문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시간 낭비, 돈 낭비는 물론이요 아이가 일찌감치 지쳐버릴 수 있다”고 충고했다. 임 이사는 “순수 국내파라면 일반전형을 목표로 내신 관리에 치중하고, 영어듣기 실력을 꾸준히 쌓는 게 현명하다”고도 했다. 외국에 한번 다녀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무난히 한영외고에 입학한 이모군(17)은 “‘해리 포터’ 원서를 수십 번 반복해 읽으며 어휘력과 문장력을 기르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자막 없이 보면서 듣기 실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외고 진입장벽이 영어만은 아니다. 외고 입시에 지필고사가 금지돼 있지만 대부분의 사립 외고는 구술·면접시험을 지필고사의 변형된 형태로 치러왔다. 학생이 10개 안팎의 문제가 적힌 시험지를 풀고 면접관 앞에서 답과 그 답이 나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다.

    “1, 4, 8, ○, 19, 26에서 빈칸에 들어갈 숫자는 뭘까요?”

    “13”

    뜨거운 감자, 外高

    지난 4월, 서초동 고등법원에서 열린 외고생들의 모의법정 경연대회.

    “그럼, 131, 228, 331, 430, 531, 630, 731, □, 930, 1031, 1130, 1231에서 빈 칸에 들어갈 숫자는 뭘까요?”

    대원외고 입시설명회에 참석해 열심히 듣고 메모하던 학부모들에게 진행자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13’을 답할 때와 달리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앞자리에 앉은 한 엄마가 손을 들고 “831”이라고 답했다. 진행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1월은 31일, 2월은 28일, 8월은 31일 이죠.”

    정답이었다. 여기저기서 “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술·면접이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831이라고 답은 맞혔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1월은 31일, 2월은 28일…하는 규칙은 발견했는데 답을 830이라고 하면 어떡하죠? 이럴 경우 부분점수를 줘야겠죠.”

    ‘831’을 정확하게 맞힌 엄마에 대해 ‘똑똑해서가 아니라 전에 그런 문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외고 진학을 목표로 놓고 보면 그런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도 경쟁력이다. 특목고 입시학원에선 ‘창의력수학’이란 이름으로 외고 구술·면접에 대비해왔고, 실제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교육당국의 외고에 대한 집중 점검이 있은 뒤, 서울 6개 외고는 올해 입시에서 수학 문제를 내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시험 문제 출제위원에서 수학교사가 아예 배제됐다고 한다. 대원외고 관계자의 설명이다.

    “구술시험은 언어영역 4~6문제, 일반사회, 지리, 세계사, 국사 관련 문제 3~5개를 낼 예정입니다. 언어영역 지문의 절반 이상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가져오고, 문제 형태는 수능 언어영역과 유사할 겁니다. 풍부한 어휘력을 쌓는 게 중요하죠. 다른 문제들도 학교 공부가 구술면접의 출발점이 되도록 출제할 겁니다. 구술면접을 통해 수학 잘하는 학생을 선발하고 싶은 게 학교의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렇게 못하게 하니 이번엔 수학 문제 절대 안 냅니다. 그렇다고 수학 공부에 소홀해도 되나? 절대 그렇지 않죠. 입학시험과는 관계없어졌으나 대학 갈 때는 수학이 당락을 좌우합니다. 수학 실력으로 대학 배지 색깔이 결정돼요. 외국어 영역은 만점 못 받는 학생이 거의 없어요. 교과서 수학, 정통 수학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명성학원 경규학 기획실장은 “외국어만 잘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의 폭이 좁기 때문에 외고로선 대학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수학 실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회 등 다른 교과에 흡수된 형태로 수학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간단치 않은 문제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이지만, 대부분의 외고가 어학 영재보다 대학 입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학생 중심으로 선발하다보니 상당수 학부모는 ‘외고에 붙지 않더라도 외고 입시를 준비해 손해 볼 게 없다’는 주의다. ‘특목고 입시 전문’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학원들도 이 같은 논리로 학생을 유치한다. 이를테면 대원외고 국제화전형 지원 자격이 ‘토플 CBT 250점 이상’인데, 서울대 인문계 특기자 전형 지원자격이 토플 CBT 253점이다. 외고 관문이 세칭 명문대 문턱과 비슷한 셈이다. 이 때문에 일선 학원가에선 20만~30만명이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고, 실제로 원서를 내는 건 30~40%에 불과하다고 추정한다.

    “재학생 중에 혼자 힘으로 이 학교에 들어온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는 외고에 들어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울의 한 외고 교감의 말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사교육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학생은 외고 진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원외고엔 소년소녀가정 특별전형이 있지만 지금껏 합격자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1년에 한두 명은 꼭 시험을 치르는데, 아직까지 한 명도 합격한 적이 없다. 다른 지원자에 비해 실력이 너무 차이 난다. 학원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해서 오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도 고민이다. 그냥 기회를 주자니 들어와서 적응하는 게 문제라 그럴 수도 없다.”

    외고 진학 희망자의 학원 의존도가 높다 보니 여름방학이 끝난 뒤 일선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선 담임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부모는 갖가지 편법으로 아이를 학교 대신 학원에 보내려고 하고, 교사는 어떻게든 학교 수업은 빠지지 않게 하려고 승강이하는 것. 외고 입시가 3학년 1학기 내신까지만 평가하기 때문에 일부 학원에서 3학년 2학기를 총력 기간으로 정하고 낮에도 강의를 개설하는 탓이다. 일산의 한 중학교 교사는 “아이에게 거짓말까지 시켜가며 특목고 보내서 얼마나 잘될까 싶다가도 자녀를 둔 동료 교사들이 특목고 입시 정보를 나누는 걸 보면 이게 간단치 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외고에 다니는 학생의 만족도는 어떨까. 대원외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조모양은 “모두가 열심히 하려는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워낙 뛰어난 학생이 많다 보니 성적표를 받아볼 때마다 까무러치게 놀라죠. 하지만 좌절하기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져요. 주위 친구들도 그러니까요. 중학교 때는 공부하는 게 눈치 보였지만, 지금은 서로 자극하고 도와주기 때문에 중학교 때 비하면 내신 석차는 형편없어도 제가 쑥쑥 크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외고생 71.4%, “교사 열의 높다”

    ‘특목고의 중장기 운영방향 및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시설과 교실환경, 친구들과의 관계, 수업시간의 공부 분위기, 선생님들의 수업 수준, 학교의 전통과 명성 및 졸업 후의 대학입학 가능성 등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전반적으로 과학고 학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외고, 일반고 순으로 나타났다. 과학고와 외고의 차이는 외고와 일반계고교의 차이보다 훨씬 작아, 특목고 재학생들의 학교 만족도가 일반고 재학생보다 현격하게 높은 것이 확인됐다. 설문은 지난해 11월, 전국의 외고 9개, 과학고 6개, 일반고 14개교에서 1학년과 2학년 한반씩 총 19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교사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엔 일반고 8.1%, 과학고 39.8%, 외고 25.2%가 교사의 열의가 매우 높다고 응답했다. 매우 높음과 다소 높음을 합해서 비교하면, 각각 41.0%, 85.0%, 71.4%로 일반고와 특목고 간에 큰 차이를 보였다.

    “어릴 때부터 책 많이 사줬다”

    특목고는 선택과 선발을 거쳐 들어간 학교인 만큼 학생의 만족도가 높은 건 어느 정도 예상된 바. 특목고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과도한 경쟁에 대해선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특목고 중에서도 과학고 학생이 경쟁의식을 가장 강하게 느끼고, 외고 재학생의 경쟁의식도 일반고보다는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들 사이의 경쟁의식 정도가 매우 강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일반고 11.9%, 과학고 55.1%, 외고 45.2%였고, 약간 강하다고 답한 경우까지 합치면, 일반고 48.8%, 과학고 91.0%, 외국어고 84.3%였다.

    중계동의 한 외고 입시학원 관계자는 “시험에 통과해야만 외고에 진학할 수 있고, 진학한 다음에도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된 생활을 해야 하는 만큼, 자녀가 외고에 진학하길 바란다면 먼저 평가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성취욕은 있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대범함을 길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교육연구소 보고서는 현재 사교육을 받고 있는지 여부도 조사했다. 국어과목의 경우 일반고 23.0%, 과학고 4.7%, 외고 30.9%로 외고 재학생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 영어는 일반고가 37.8%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외고 33.3%, 과학고 31.2%로 조사됐다. 수학과목에 대해선 외고 재학생의 사교육 참여도가 66.4%로 가장 높고, 일반고 46.6%, 과학고 43.4%로 나타났다. 실제로 상당수 외고 재학생이 주말을 이용해 학원을 다니고 있으며, 평일에도 밤 10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후 혹은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학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업 계획을 묻는 질문엔 계열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학생이 4년제 이상 대학 진학을 희망했으나 석·박사 과정에선 학교 유형별로 차이를 보였다. 일반고의 경우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비율이 각각 9.4%, 14.7%인 반면, 과학고는 6.9%, 86.2%, 외고는 27.3%, 28.1%였다.

    전공과 관련해선 일반고의 경우 희망 전공이 다양한 영역으로 나뉘었고, 과학고 재학생은 대부분 공학계열과 자연과학계열을 선호했다. 외고 재학생의 경우 사회과학계열(29.0%), 인문계열(25.25), 외국어계열(22.5%)에 고르게 분포했다. 보고서는 “외고 학생들의 진학 우선순위가 외국어계열이 아니기는 하지만, 대체로 학교 유형의 특성이 반영된 진학계획”이라고 평했다.

    부모의 지원에 대한 설문에선 과학고에 다니는 학생의 부모가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가 매우 적극적으로 공부를 지원한다고 대답한 비율이 일반고 27.0%, 과학고 54.2%, 외고 52.8%였다. 반면, 부모의 지원이 별로 적극적이지 않거나 전혀 적극적이지 않다고 대답한 경우는 일반고 23.2%, 과학고 9.3%, 외고 9.0%로, 일반고에 재학하는 학생이 특목고 재학생보다 상대적으로 부모의 지원을 덜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정 분위기와 부모 관심사에 관한 설문에선 전반적으로 과학고와 외고 학생들의 가정 분위기와 부모의 관심이 일반고에 비해 학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치우쳐 있었다. 대표적인 문항이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서점에 같이 가서 책을 많이 사주셨다’인데, 외고 학생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대원외고 입시설명회에서도 재학생을 상대로 한 비슷한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이런 엄마는 좋아요’란 문항에 학생들은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줄 때, 위로하고 격려해줄 때, 맛있는 음식 사줄 때, 용돈 많이 줄 때, 믿어줄 때’를 꼽았다. 반면 ‘이런 엄마는 싫어요’ 항목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할 때, 살쪘다고 구박할 때, 사생활 간섭할 때, 신문에 난 아이들 이야기 계속할 때, 학원을 마음대로 옮길 때, 다른 엄마한테 이상한 얘기 듣고 와서 허둥댈 때’ 등을 꼽았다.

    ‘이상한 얘기’ 듣고 와서 허둥대는 엄마

    듣기 싫은 말로는 ‘쓸모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넌 정말 구제불능이야’ ‘머리랑 옷차림이 그게 뭐니, 날라리처럼’ ‘넌 누굴 닮아 그러니’ ‘옆집애는 외고 갈까 과고 갈까 고민한다는데 그 엄마 복도 많지’ 등을 써냈고, 듣기 좋은 말로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 ‘너만 보면 든든해’ ‘실수였어. 다음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넌 운동을 잘하지 않느냐’ 등을 지목했다. 학생들의 생각과 부모의 행동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대원외고는 1만3000명의 인적네트워크를 자랑합니다. 서울대 2054명, 연세대 2268명, 고려대 2681명, 그리고 해외대학에 410명을 진학시켰고, 졸업생들이 언론계(400명), 재계(1000명), 법조계(200명), 문화·학계(1500명), 유엔·로펌·세계금융(1000명) 등 각 분야에 진출해 있어요. 또 매년 100명 이상의 국가고시 합격자를 배출합니다. 어떤 학교도 따라올 수 없는 실적이죠. 1회 졸업생이 39세밖에 안 돼서 그렇지 10년 뒤면 지금까지 경기고가 차지했던 위상을 대원외고가 차지할 게 확실합니다. 오히려 대원외고가 더 유리할 거라고 보는 이유는 대원외고 학생은 성적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리더의 필수 요건인 영어 실력이 뛰어나니까요.”

    외고 졸업생이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녀가 어느 면에서나 최상의 것을 경험하기 바라는 부모로선 외고의 이러한 실적에 자신의 자녀가 포함되기를 강렬히 바란다.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주위에 그런 친구가 있기를 바란다. 그건 나쁘다고 비난할 수 없는,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다. 자식이 더 나은 교육을 받길 바라는 부모의 열망은 국내 대학이 성에 차지 않아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리는 실정이다. 자녀를 둔 부모에게 외고는 먹기 힘든 감일 뿐 독이라는 생각이 들 리 없다.

    외고의 정체성

    문제는 소수 학교의 과도한 학벌세력화를 무력화하기 위해 평준화제도가 도입됐고, 엄연히 유효한 상태에서 ‘특수 목적’으로 설립된 외고가 신흥 학벌세력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2004년 이후 외고가 8개나 새로 생기는 등 특목고 비중이 커지면서 일반고는 ‘이류학교’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고, 학교엔 학생 선발권을 줌으로써 모든 학교가 경쟁력을 키울 수밖에 없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평준화제도를 없애자는 얘긴데, 정부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외고만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학 영재 양성을 목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했지만 결국 3년 후에 대학 문 앞에 서야 하는 건 일반고와 마찬가지니, 학생을 뽑을 때도 내보낼 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외고 출신은 어문계열로만 진학하라는 것도 억지다. 고교 과정 중 82시수를 외국어에 할애하는 외고 졸업생의 전공 언어 실력은 대학 학부 졸업생 수준과 비슷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도 동일 계열로 진학해야 한다는 건 비합리적일뿐더러 여러 모로 낭비다. 동일계열 진학을 강요하려면 먼저 대학에 이들을 위한 별도의 전공 심화 과정을 개설하는 게 순서다.

    교육당국은 외고를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외고를 낳은 장본인으로서 외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평준화제도에 반하는 것이지만, 성적우수자 집단으로서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어학 영재 양성’의 본래 취지를 살려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특목고의 지위를 폐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저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저앉거나, 괜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히는 것, 혹은 그렇다고 오해받는 것 모두 전혀 교육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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