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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外高

강력한 수요와 애매한 대처가 낳은, 이 똑똑한 사생아를 어찌할꼬!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뜨거운 감자, 外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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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명문대 진학률로만 보면 과학고가 외고에 뒤지지 않는데도 선호도가 낮은 것은 모집단위 때문이다. 전국 29개 외고가 총 1만여 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반면, 전국 20여 개 과학고의 모집인원은 1700여 명에 불과하다. 서울 소재 학교로만 비교하면, 외고는 6개 학교에서 2100명, 과학고는 2개 학교에서 280명을 뽑는다.

외고는 10여 년 전만 해도 일부 상위권 중3 학생들이 한번쯤 도전해보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중위권 학생까지 특목고 진학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2007학년도 서울시내 6개 외고 특별전형 평균경쟁률이 8.38대 1이었다. 일반전형 평균경쟁률은 4.67대 1로 2006년의 4.43대 1, 2005년의 3.81대 1보다 높았다. 외고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나서 “내신성적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하에서는 동일계 이외의 분야로 지원하는 외고 학생이 불리한 위치에 있다”(2006년 6월21일 교육인적자원부 국정브리핑)고 엄포를 놓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아랑곳하지 않은 결과다.

삼밭이냐 쑥밭이냐

다시 대원외고 입시설명회장. 학교를 소개하는 10여 분 분량의 동영상이 꺼지자 진행을 맡은 교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학부모들은 수첩을 펼치고 펜을 들었다.

“대학 들어가는 데 불리할까봐 대원외고 진학을 망설이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러면 먼저 특목고가 입시에 불리한지 살펴보지요.”



대입에 있어서 특목고의 유·불리를 따져보는 것으로 본격적인 설명회가 시작됐다.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를 반영한 대목일 터.

“불리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절대 불리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고, 예년에 비해 훨씬 불리하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부가 2008학년도 이후 대입 전형에선 내신이 강화될 거라고 했지만 이게 잘 시행이 안 됩니다.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데려가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해요. 우수한 학생을 뽑아놓으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니까요. 정부가 원하는 것과 대학의 바람이 분명 다르기 때문에 저희는 대학들이 정부의 (내신 강화)지침과 다른 길을 찾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대학들이 지금껏 그래왔거든요. 입학 전형에 다양한 트랙이 만들어진 게 그 방증이죠. 내신과 별로, 혹은 전혀 상관없는 트랙들이 만들어졌고, 그게 점점 확대되는 추세예요. 과거 몇십 명 규모였던 게 지금은 수백, 수천 명으로 늘어났어요. 2008학년도 입시안만 봐도 고려대가 정시인원의 50%를 수능만으로 선발하겠다고 했어요. 연세대도 마찬가지고요. 불리하지 않은 길이 많아지고, 넓어지고 있는 거죠.”

진행자는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각 대학의 내신 실질반영률은 그리 높지 않고, 논술 구술 면접 적성검사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 서울대, 연·고대, 이화여대 등이 2008학년도 입시에서 예정하고 있는 ‘특기자 전형’이야말로 특목고생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쐐기를 박듯 “특목고 졸업생 절반 이상이 서울대와 연·고대에 진학한다”며 “대원외고는 2007학년도에 302명이 서울대와 연·고대에 진학하고, 70여 명이 미국 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학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부가 함께 온 경우 서로 마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주고받기도 했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말이 있습니다. 쑥을 삼밭에 심어놓으면 삼을 닮아 곧게 자란다는 말이지요. 고등학교 3년을 어떤 환경에서 보내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막말로 삼밭이냐 쑥밭이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죠.”

“대학은 특목고를 원한다”

‘삼밭이냐 쑥밭이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이지만, 이날 대다수 학부모가 그 말에 마음을 빼앗긴 게 사실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주부 김희정(45)씨는 “내신이 불리해 망설였는데, 학생 절반 이상이 서울대, 연·고대에 진학하고, 해외 대학도 내다볼 수 있는 환경에서 공부시키는 게 낫겠다는 확신이 섰다. 일반고에서 내신 1, 2등급이어도 좋은 대학 가기 힘든 현실에 비하면 내신이 불리하더라도 우수한 학생들과 더불어 실력을 키우는 게 훨씬 많은 기회를 만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외고의 교육 여건이 내신 불이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고는 요즘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정부는 치열한 외고 입시 경쟁으로 인해 사교육이 과열되는 걸 막으려고 안절부절못하지만, 자녀를 외고에 보내려고 안간힘 쓰는 학부모들을 당할 재간이 없다. 대원외고 입시설명회장에서도 거론됐던, 대학의 특목고 편애가 기정사실화하면서 학부모들의 외고 고집은 결과적으로 대학입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 됐다.

연세대를 비롯한 서울 소재 대학교 상당수가 2008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전형에서 내신 4등급까지 만점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한 데 이어 고려대도 입시설명회에서 학부모들에게 “내신 실질반영비율이 높지 않을 것이므로 수능과 논술에 치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세대와 고려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이미 정시의 50%를 수능 성적만으로 선발한다고 발표한 터라 나머지 50%에 한해서만 내신성적을 반영하는데, 이마저 실질반영률이 낮거나 ‘4등급까지 만점’을 적용하면 대입에서 내신성적은 변별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할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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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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