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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설계 못하면 정책 간 충돌 일어날 것”

‘文 정권 숨은 조력자’ 성경륭 전 청와대 정책실장

  • 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치밀한 설계 못하면 정책 간 충돌 일어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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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저임금 脫원전 ‘충돌’ 조짐
  • ● “장하성 실장, 섬세하게 정책 짜달라”
  • ● ‘혁신과 성장’도 병행해야
  • ● “지지율은 낮은 곳으로 흘러…늘 경계하라”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호흡이 잘 맞았다.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노무현을 표상하는 여러 정책이 성 전 청와대 실장의 손을 거쳤다.

성 전 실장은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산하 포용국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문재인 후보를 도왔다. 당시 같은 위원회에서 활동한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내각의 요직에 발탁됐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월드컬쳐오픈’에서 성 전 실장을 만나 최근 경제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월드컬쳐오픈은 공익활동가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곳으로, 성 전 실장은 이곳에서 세미나를 여러 번 열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요?
“저와 노 전 대통령이 모두 지방자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2002년 6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같이 정책을 개발하자고 해서 그분을 돕는 데 참여하게 됐어요. 그해 10월경 문재인 현 대통령과도 인사하게 됐고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이번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라는 책을 냈는데, 포용국가라는 개념이 생소하면서 재미있어요.  
“계속 생성 중인 개념이에요. 여러 학자와 ‘이 시대에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공유하고 난상토론을 벌였어요. 처음엔 혁신국가라는 키워드에 착안했죠. 한국 경제의 도약과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선 혁신이 가장 절실하다고 보았죠.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혁신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될 수도 있으니까요. 생각이 ‘포용적 혁신국가’로 이어졌죠. 그러다 포용과 혁신 중에 포용이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어요. 에스모글루와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은 ‘정치제도가 약탈적인가 포용적인가’ ‘경제제도가 약탈적인가 포용적인가’라는 구분을 통해 ‘포용적인 나라가 번영한다’고 주장하죠.”



포용적인 나라가 번영한다. 좋은 말인 것 같네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9월 6일 서울에서 ‘아시아 경제의 발전을 위해선 포용적 성장 기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구조조정의 대명사’ 격인 IMF가 ‘포용’과 ‘성장’을 함께 언급해 조금 의외였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성장 동력을 수출 등 외부에서 주로 구했죠. 이젠 소득분배를 통해 다른 성장 동력을 가져보자는 거죠. 과거의 성장 모델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시점이 됐어요.”  



“침착한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소득 주도 성장’으로 집약됩니다. 그러면 성 전 실장의 ‘포용’과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에서 비슷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중요한 질문인데요. 최근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주도 성장을 놓고 토론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제가 그런 이분법으로는 안 된다며 통합적 모델을 찾는 토론을 하자고 역제안했어요. 왜냐하면 케인스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소득 주도 성장과 슘페터의 이론에 바탕을 둔 혁신 주도 성장은 상호 배타적인 게 아니거든요. 포용국가에는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주도 성장, 지속가능한 성장이 결합되어 있어요. 포용성, 혁신성, 유연성,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죠. 국내외 상황이 늘 바뀌고 새로운 기술이 계속 등장하기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연성도 포함했어요. 우리나라는 포용성도 낮지만 혁신성도 좋지 못해요. 특허출원 건수나 이공계 논문 수는 많지만 실제로 산업화·상업화되는 측면에선 상당히 평가절하되죠. 경제, 사회, 환경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은 더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제 판단으로는, ‘포용국가’ 비전이 ‘소득 주도 성장’ 비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요. 왜냐하면 포용국가 비전은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소득 주도 성장)도 추구하면서 동시에 성장 발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혁신 주도 성장)도 균형적으로 다뤄주기 때문이죠.  
“(웃으면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 기조에 맞게 가고 있다고 보나요?
“현 정부의 모든 정책은 이 기조에 입각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상승, 노인연금 인상, 보육복지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추구하고 있죠. 이런 측면에서 잘 가고 있다고 봐요. 다만 정부는 그동안 ‘혁신’ 쪽을 좀 덜 강조한 측면이 있어요.”

성 전 실장은 “어느 교수가 몇 년 전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침착한 노무현’이라고 했다고 한다. 잘된 표현이다. 예를 들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하는 10분 동안 문 대통령은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고도로 절제된 침착함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성 전 실장은 침착함이라는 좋은 덕목과 국민과의 적극적 소통이 더해져서 문재인 브랜드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는데, 장하성 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요.   
“장 실장은 워낙 훌륭한 분이고 여러 가지 연구나 경험을 많이 해서 잘하리라 생각해요. 제가 특별히 보탤 건 없는데요. 다만, 제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균형발전위 눈부신 성공 사례”

어떤 경험인가요?
“저는 노무현 정부 5년 전체에 걸쳐 일했어요. 그래서 공공정책을 펼 때 문제 제기 단계, 의제 설정 단계, 분석 및 대안 모색 단계, 정책 결정 단계, 집행 단계, 수정 보완 단계, 정책 평가 단계를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을 갖게 됐죠. 공공기관 지방 이전, 연구와 제조를 접목한 국가산업단지 조성, 농촌을 살리는 신활력사업이 이렇게 해서 나왔어요. 제가 놀란 건, 저희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만든 정책들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9년 동안 거의 그대로 계승돼 집행됐다는 점이죠. 신활력사업도 6차 산업으로 이어졌어요. 그만큼 정책들이 내용면에서 치밀하게 설계됐기 때문에 이후 정부에서도 필요성과 타당성 면에서 공감을 얻었다고 봅니다.”

그 비결이 뭘까요?
“우선 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책 방향 면에서 100%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고 또 집행과 실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행위자와 폭넓게 대화하면서 매우 치밀하게 정책을 설계했죠. 이런 관점에서 원래의 질문인 ‘지금 정부가 잘하고 있을까’에 대해 당부 말씀드리자면, 정책과 관련해 뭘 하려고 하는 게 많잖아요. 원전 공사 중단 공론화도 그렇고요. 온갖 일을 지금 진행하고 있는데, 반드시, 반드시, 일하는 사람들은 의제 설정에서부터 최종 실행까지 내가 이것들을 다 책임지고 마무리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프로세스를 잘 밟아야 해요. 무엇보다 집행 단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고민해야 해요. 초기에 정책의 원리를 잘못 설계하면 집행 단계에서 반드시 문제가 드러나게 돼 있어요. A정책과 B정책 사이에 적용되는 원리가 다르다고 하면 기획 단계에서는 몰라도 집행 과정에서 충돌이 생기죠. 이런 문제들이 지금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봅니다. ”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비정규직을 줄이자,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것은 시대적 요구죠. 저도 그것을 주장해왔습니다. 둘 다 필요한 정책인데요. 그다음에 증세 정책을 집행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를 예상해야 해요. 정책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과 충분히 지속적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이런 정책들이 집행되는 곳은 주로 기업, 산업 현장일 텐데요.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 근로자 등 수많은 당사자가 있죠. 당사자의 동의를 미리 다 받기는 힘들죠. 당사자들이 이 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많은 문제 제기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당사자들이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어느 단계부터 꾀를 내고, 어느 단계부터 조용히 저항하고, 어느 단계부터 대놓고 저항할 것인지를 판단해 대응 조치를 만들어야 해요. 제가 지금 염려하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죠.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상 자신에게 부담을 더 지우면 누구나 싫어하고 반발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이해관계가 달린 정책은 섬세하게 디자인해야 해요. 어떤 국가 비전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야 해요. 정성을 다해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죠. 그래야 충돌할 가능성, 좌절될 가능성이 줄어들죠. 도저히 안 된다 싶으면 돌파하듯이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최후에 해야 하는 일이고요.”  



“도대체 어떻게 관리해서…”

사실, 요즘엔 기업도 근로자도 자영업자도 다 어렵다고 하죠. 청년들은 취업이 안 돼 그들 나름대로 아우성이고요.
“그래서 사회적 대화를 잘해야 해요.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나라의 운명이 걸렸다고 봐요. 잘나가는 기업에 ‘정규직 전환 많이 하고 직원 급여도 올려주고 세금도 더 내달라’고 하면 이 기업들이 쉽게 동의하겠습니까? 다른 한쪽에선 노동자들이 (우리가 더) 급하다고 곳곳에서 요구할 것입니다. 이미 기간제 교사들과 임용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있다고 해요. 과거 방식도 안 되지만, 지금처럼 하자고 해놓고 일을, 도대체 이 프로세스를 어떻게 관리해서…집행 단계에서 문제를 줄여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도움을 받는 이런 쪽으로 모델을 만들어내 관리해야 하는데…”

성 전 실장은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된다. 소홀히 하면 영어로 ‘You will get paid(현재의 잘못에 대해 장차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 소홀함 때문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혁신’과 관련해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과 컴퓨터를 잘한다고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 수학과 컴퓨터 능력이 급격히 하락한다. 직장 내 재교육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게 우리나라의 실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사람들처럼 물 위에 건물 지을 생각을 왜 못 할까?”라고 반문한다.    

“발상 자체에서 유럽 사람들에게 뒤져요. 우리는 지금도 바꿀 게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50대가 되어서야 ‘아, 내가 너무 틀에 박혀 살아왔다’고 깨닫게 되죠. 지능과 잠재력은 대단하지만 창의성은 아직 부족해요.”

그래서 ‘포용국가’ 론에서 교육개혁을 함께 주장하는 것이군요.  
“포용은 여러 사람의 다른 생각을 수용해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이 분열하고 대결하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함께 공존하고 공동 번영하는 선순환의 길을 찾을 수 있죠. 이것이 포용의 놀라운 힘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할 의향이 있나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어요. 정부에 들어가면 골치 아프고 잠도 잘 못 자요. 좀 자유로운 위치에서 응원도 하고 건전한 비판도 해야겠죠. 그것을 좀 해야 경각심을 잃지 않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데에서 주어진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잘나갈 때 경계해야”

성 전 실장은 “지금 지지율이 높은 것이 함정일 수 있다. 가장 잘나갈 때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것이 함정이 될 만한 부분이나 경계할 부분인가요?
“한국갤럽 조사에,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의 5년치 지지율이 나와 있어요. 모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예외 없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릅니다. 그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일 고통스러운 종말을 맞았지만 이 법칙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이 지금까지 거의 없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 지지율 법칙을 깰까요?
“잘하면 그렇게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것이 어떤 중력의 법칙과 같은 것이라면 문재인 정부도 기울기 같은 부분에서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이 법칙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겠죠. 그게 일반적인 판단이고요.”

이런 숙명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떤 자세를 갖는 게 좋을까요?  
“사람이 박수를 받을 때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죠. 어떤 질타를 받을 땐 스스로를 경계하는 마음을 갖게 되죠. 성공만 경험하거나 실패만 경험하는 건 둘 다 불행해요. 성공만 경험하면 잘못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죠. 유필화 성균관대 교수의 ‘승자의 공부’라는 책을 보면, ‘항상 경계하라’라는 말이 나와요.”

항상 경계하라.  
“고대 중국에서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죠. 많은 세력이 국가를 건설하는 데만 신경을 썼지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데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거죠. 이 책은 ‘지킨다는 것’의 핵심이 ‘경계하는 것’이라고 간파하죠.”  



“장하성 실장이 귀 기울여주기를”

오늘날의 상황에 비춰보면, 집권 세력이 지지율을 유지하고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선 항상 경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군요.
“이 정부는 모두가 이익을 누리는 모델을 만들고, (그에 대해서) 대화하고 설득해 마침내 실행해나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초기 단계에서 성공을 거둬야 해요. 매번 1차 연도에서 중요한 개혁에 실패했어요.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노사정위원회가 지금까지 개혁과 사회적 합의에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죠. 위원회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한 치의 양보 없이 극단의 주장을 폈고 정부는 정부대로 치밀하게 설계하지 못하고 조화시키지 못한 때문이죠. 이런 관성에서 이제 벗어나야 해요. 장하성 실장이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랍니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위가 만든 정책이 보수 정부 9년 동안 그대로 이행됐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정책 목표를 잘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실무적으로 치밀하게 집행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또한 포용국가 개념이 분배를 위한 포용성뿐만 아니라 성장을 위한 혁신성도 함께 담고 있다는 점이 귀에 꽂힌다. 성 전 실장이 문재인 정권의 숨은 조력자로 꼽혀서 더 그렇다. 아직 분배를 중시하는 소득 주도 성장 기조만 보여주는 문재인 정부가 다시 유의해야 할 점인 듯하다.   

성 전 실장은 “저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롤모델로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국민에게 ‘갈등하지 말고 이런 수준까지 한번 가보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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