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OECD 1위 항생제 소비국 汚名
- SK C&C ‘에이브릴’로 세계 최초 항생제 어드바이저 개발
- 2018년 하반기 서비스 개시… “항생제 내성 해결 가능”
우리나라의 항생제 내성률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질병관리본부가 2016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6개 종합병원 환자들로부터 대장균 등 8종 병원체(총 1만586주)를 수집해 항생제 내성 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장균의 43.9%와 32.1%가 각각 항생제 시프로플록사신(Ciprofloxacin), 세포타짐(Cefotaxime)에 내성을 보였다. 이들 항생제는 주로 대장균 치료에 쓰이는데, 10명 중 3,4명에게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항생제인 카바페넴(carbapenem)은 면역에 손상을 주는 아시네토박터균(acinetobacter)에 대한 치료제인데, 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은 무려 73.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의 두 배… 국내 항생제 ‘남용’
항생제 내성률을 따질 때 중요하게 보는 지표 중 하나는 ‘항생제 사용률’이다. 항생제 사용률이 높다는 것은 항생제 오남용이 심각함을 뜻한다.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한국인의 항생제 사용량을 분석한 자료를 내놨다. 이 자료는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항생제 사용량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OECD는 회원국을 대상으로 매년 항생제 사용량을 조사한다.
매년 늘어나던 한국인의 하루 항생제(전신성 항균물질) 사용량이 2015년 1000명당 31.5DDD(Defined Daily Dose·의약품 규정 1일 사용량)로 나타났다. 하루 동안 한국인 1000명 중 31.5명이 항생제 처방을 받는다는 뜻이다.
항생제 사용량이 감소한 것은 정부가 2008년 의약품 사용량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한국인의 하루 항생제 사용량은 2008년 26.9DDD에서 2014년 31.7DDD로 꾸준히 증가했다. 2015년 증가세가 주춤해졌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중에는 최고 수준이다. 2015년 OECD 회원국 평균 하루 항생제 사용량은 20.3DDD다. 항생제를 가장 적게 사용하는 국가는 스웨덴(13.9 DDD)과 에스토니아(14.1 DDD) 등으로,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한국인의 항생제 사용률을 끌어내릴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최근 의료 현장에 전문적인 항생제 관리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5월 고려대의료원과 국내 정보통신기술(ICT)기업 SK C&C의 인공지능(AI) 기반 ‘에이브릴 항생제 어드바이저(Aibril Antibiotics Advisor) 공동 개발 및 사업 계약’ 체결이다. 양측은 2018년 하반기 진료 현장에 에이브릴 항생제 어드바이저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고려대의료원 측은 “환자에게 적합한 항생제를 추천해주는 AI가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프로그램의 개발은 의료 현장에서 전문적인 항생제 관리(스튜어드십·stewardship)의 필요성을 절감한 고려대의료원이 SK C&C 측에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논의가 이뤄졌다. 손장욱 고려대 안암병원 감염내과장은 “WHO에서 권고하는 항생제 관리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항생제 내성 발현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에이브릴은 ‘의학공부’ 중
2017년 9월 현재 고려대의료원과 SK C&C는 이 어드바이저 공동 개발 사업에 착수한 상태다. 고려대의료원은 그간 쌓아온 진료 및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항생제 사용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방침이다. 전 세계가 함께 항생제 오남용을 줄여나가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다.‘에이브릴’은 이번 사업의 핵심 요소다. 에이브릴은 2016년 5월 SK C&C가 발표한 AI 서비스. AI와 Brilliant(눈부신)의 합성어로, ‘지식이 자라나 찬란한 꽃을 피우는 AI’라는 뜻이다. 사람과 직접 소통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상의 정보와 대안을 제시하는 현명한 의사결정 조력자가 되겠다는 SK C&C의 의지를 반영했다고 한다.
서비스가 구축되려면 기본 인프라에서 각종 데이터를 끌어올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기본 인프라는 AI 엔진을 뜻하며, 이 엔진에 각종 데이터를 끌어오는 통로 역할은 IBM이 개발한 ‘왓슨(Watson)’이 한다. 이렇게 왓슨과 결합해 탄생한 AI 서비스 에이브릴은 국내 AI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AI 산업 부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SK C&C는 에이브릴을 통해 대화, 자연어 분류, 언어 번역, 검색 및 평가, 문서 변환, 성향 분석, 이미지 인식, 자연어 이해 등 총 8개 서비스를 API(운영체제(OS)에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IT 개발자나 서비스 기업은 이러한 에이브릴 API를 활용해 애플리케이션 등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고려대의료원과 SK C&C는 에이브릴 항생제 어드바이저를 최신 의학 논문이나 빅데이터를 활용해 적절한 항생제 관리가 가능한 의료용 AI로 개발하기로 했다. 환자의 증상과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적합한 항생제의 종류와 처방 방법, 주기, 추천 근거 등을 의료진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의료+산업의 ‘시너지’ 기대
한국은 ‘OECD 1위 항생제 소비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은 요원한 상황.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바로 ‘항생제 관리’다.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처방 및 사용함으로써 내성균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이 절실한 상황에서 에이브릴 항생제 어드바이저는 항생제 내성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안정옥 SK C&C 사업대표는 “에이브릴 항생제 어드바이저는 AI를 활용해 보다 건강한 사회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앞으로 고려대의료원과 SK C&C는 에이브릴에 감염병과 관련한 국내외 최신 논문, 가이드라인, 약품 정보, 보험 정보 등 방대한 양의 의료 문헌과 고려대의료원의 치료 사례 및 노하우를 학습시킨다. 이후 에이브릴 항생제 어드바이저는 환자의 증상에 맞는 항생제를 추천할 수 있게 된다. 항생제를 처방할 때 부작용, 주의사항이나 보험 적용 여부 등 다양한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항생제가 적절하게 처방된다면 환자의 치료 효과가 증대될 뿐만 아니라 항생제 사용 전문성 또한 향상된다. 내성균 발현 억제, 의료비용 감소 등 사회적 효과도 기대된다.
김효명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에이브릴 항생제 어드바이저에 대해 “의료계와 산업계의 협력이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를 위협하는 항생제 오남용과 슈퍼박테리아에 전 세계 의료진이 함께 대응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에이브릴 항생제 어드바이저가 현대 의학의 ‘구세주’ 역할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