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지사 문팬 500명과 대화
- “경선 때 대연정 진의 밝혀라”
- 3선 도전이냐, 재보선이냐 “연말 결정”
‘그땐 그때고 지금은 사랑의 눈빛을 달라.’
어느 닭살 돋는 만남의 현장이다. 9월 9일 저녁 충남 서산시 운산면 서해안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제2회 ‘문팬(다음 문재인공식팬카페)’ 전국 총회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와 문팬 500여 명의 만남이 있었다.
이 만남이 흥미로운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인데 문재인 지지자 모임이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안 지사를 공식 초청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 지사의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3선 도전이냐 재보궐 선거 도전이냐를 두고 정치권의 관심을 받고 있는 터다.
이 행사에서 문팬(카페지기 군자대도) 회원들은 안 지사에게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대연정론의 진의’와 문재인 정권 성공을 위한 역할 등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대연정론은 지금도 갖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론이 나와 있던 상황이라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의 100대 개혁 가운데 16개 안이 바로 충남 도정 운영을 통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문팬 회원 수 2만2200여 명
문팬은 회원 수 2만2200여 명의 다음 카페 모임으로 지난해 9월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뿌리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시절 시작된 ‘문사모’다. 이날 총회는 문팬 운영진 등 500여 명이 지난해 창립총회를 개최한 서산 청소년수련원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자축하는 분위기에서 진행됐다.지난해 창립총회에는 문 대통령이 참석해 발언한 반면, 이날은 대통령의 메시지가 따로 없었다. 대신 나소열 청와대 자치분권비서관이 참석해 문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의 힘든 일상을 소개하며 정권의 성공을 위해 함께하자고 당부했다.
9, 10일 이틀간 진행된 총회의 주요 행사로는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의 ‘탈핵’ 정책강연, 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최순실 재산 추적기, 정청래 전 의원의 특강 ‘문재인 현상’, 안희정 지사·박주민 의원·최재성 정당발전위원장·김현 대변인·정청래 전 의원 등이 참석한 ‘고품격 산상 토크쇼’ 등이 있었다.
‘고품격 산상 토크쇼’에서 사회를 본 김현 대변인이 “충남의 대통령”이라고 소개하자 안 지사는 문팬 총회에 자신이 참석한 이유를 설명했다.
“저는 이게 민주주의 정당의 좋은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은 경선에서 경쟁자였지만 저에게 가장 오래된 좋은 형님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관계도 이전에 민주당과 노사모란 이름으로 같이해온 오랜 동지 사이였습니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쪽으로 가기도 하지만, (가지만 다를 뿐) 큰 줄기로 보면 그것은 한 나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에서 한 나무와 한 뿌리라는 것을 여러분과 공감하고 확신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문재인의 승리는 저 안희정의 승리였습니다. (환호)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정이라고 불러야겠네요”
문팬의 A 회원은 안 지사에게 “노사모 때부터 든든한 동지애를 말했고, 누구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경선 당시) 충남에서 연설할 때 제가 그랬지요. 내가 누구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타인을 미워할 이유가 되면 안 된다고요. 서로 다른 견해를 동지에 대한 신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 문화, 민주주의 시민의 문화를 만듭시다. 그런 마음에서 여러분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이 순간에 제가 여러분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 영원히 마주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여러분 눈을 마주치고 싶습니다. (환호) 여러분도 신뢰와 사랑의 눈빛을 저에게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 중 16개는 충남 지방정부의 현장 경험을 기초로 해서 저희가 제안해 채택됐습니다. 지방정부 현장의 제안이 100대 국정과제를 풍부하게 하는 데 일조한 겁니다.”
지난 경선 때 제안한 대연정에 대한 소신을 아직도 갖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안 지사는 지금도 소신이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상적으로 의회에서 연정하는 것은 우리가 겪게 될 현실입니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더 큰 이유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분단과 북핵 문제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 계십니까. 미국과 중국, 북한 정권의 압박도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결정적 문제는 대한민국이 단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저는 분단 문제를 풀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경제 체질을 실질적으로 바꿔내고 정부 혁신을 위한 합의에 이를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 소신이었습니다. 이런 저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봐주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회를 보던 김현 전 의원은 “후보 시절보다 더 부드럽고 재치 있게 말을 잘한다”며 안 지사를 치켜세웠다. 이에 안 지사는 “저의 말이 좀 더 쉬워졌다면 지난 경선 과정에서 여러분에게 배운 덕분”이라고 하자 환호성이 일었다. 김 전 의원은 “어유, 이제 ‘정이’(문재인 대통령의 애칭 ‘이니’를 빗대서)네요. 정이라고 불러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 지사를 띄우는 분위기는 지속되지 못했다. 미국 시애틀에서 온 한 문팬 회원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니, 문재인 현상을 능가할 수 있는 인물을 다시 키워서 이 정권을 연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청래 전 의원은 “지금은 깃발을 들 때가 아니라 지지자가 드는 깃발을 따라가야 하는 시기”라며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차단했다.
“지지자 의견 듣고 결정”
‘3선 도전이냐, 재보궐 선거 도전이냐.’ 9월 초 안 지사는 “연말에 최종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재보선 출마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안 지사가 조직력이 열세이므로 서울지역 재보궐 선거에 도전해 당권을 노린 다음 차기 대선에 도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이에 대해 안 지사 측근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다”며 “연말쯤 입장을 정하겠다는 뜻은 그때까지 당원, 지지자, 중앙당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가 어떤 행보를 취하든 차기 대선을 노리기 위해 결집력이 있고 확장성이 큰 문팬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팬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 측근은 “팬덤 현상은 주인공이 빠지면 결집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라 현재 상태에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 지사의 정치적 행보가 빨라질수록 문팬과의 ‘케미(chemistry·궁합)’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