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류승완 감독)는 역사 왜곡 논란, ‘V.I.P.’(박훈정 감독)는 여성혐오 논란, ‘청년경찰’(김주환 감독)은 재중동포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예전에도 영화가 논란을 일으킨 적은 종종 있으나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주요 작품들이 한꺼번에 논란에 휩싸인 것은 드문 일이다. ‘군함도’가 세월호 참사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감독이 그동안 액션영화를 주로 연출한 경력 때문에 영화가 수난극이 아닌 탈출 액션극이 된 것은 지난 호에 논의했으니 이번에는 ‘V.I.P.’와 ‘청년경찰’을 그 이전에 있었던 논란의 사례와 비교해보고자 한다.
한국영화의 수난사를 거론할 때 주로 정부 검열로 인해 영화가 훼손되고 영화인이 투옥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더불어 특정 직업군의 반발로 인해 영화 상영에 문제가 생기거나 영화 제작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1981년 작 ‘도시로 간 처녀’(김수용 감독)는 당시 버스안내양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었다. 영화 속 일부 버스안내양이 버스요금을 삥땅하는 장면과 그로 인해 버스회사가 수시로 몸수색을 하는 장면이 버스안내양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항의하면서 전국자동차노조연맹이 상영 중단을 요구하고 200명의 버스안내양이 항의시위를 하고 한국노총도 비난 성명을 낸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영화사는 영화를 극장에서 내렸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영화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들이 항의했고 영화제작사는 몇 장면과 대사를 삭제하고 그다음 해에 재개봉했다.
1984년에는 일엽스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 ‘비구니’(임권택 감독)가 불교계의 항의로 인해 아예 제작이 무산된 적도 있다. 영화 시나리오 내용 중 여주인공이 출가하기 전 남자와 정사를 나누는 일화가 나오는데 이것을 승려 사회의 ‘음란도색화’라고 반발했다. 불교계는 1980년 신군부 쿠데타 당시 법란을 겪은 후라 정부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 있었고, 이 영화는 그런 불교계의 상처를 건드린 셈이 됐다.
‘이어 오브 드래곤’의 사례
미국영화계에서는 1985년에 개봉한 ‘이어 오브 드래곤’(Year of the Dragon·마이클 치미노 감독) 논란이 있다. 이 영화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경력을 지닌 뉴욕의 폴란드계 강력반 형사 스탠리 화이트(미키 루크)가 차이나타운 조폭 트라이어드의 새로운 보스인 조이 타이(존 론)에 맞서는 이야기다. 마이클 치미노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인 백인 노동계급 청년들의 삶과 우정을 그린 ‘디어 헌터’(The Deer Hunter·1978)로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각광받던 감독이다. 하지만 1980년 거액을 투입해 제작한 ‘천국의 문’(Heaven’s Gate)이 흥행에 참패함으로써 영화감독 경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그 상태에서 선택한 재기작이 ‘이어 오브 드래곤’이었는데, 차이나타운을 범죄와 마약의 소굴로 묘사하고 중국계 미국인을 인종주의적으로 폄하하는 단어인 ‘짱꼴라(chinks)’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녀석들(slanted eyes)’을 그대로 쓴 것에 대해 개봉 당시 아시아계 미국인의 거센 반발을 샀다. 당시 미국 사회는 베트남전이 끝난 후 크게 좌절했고, 백인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이는 마치 9·11 이후에 아랍인에 대한 적대감이 커져서 아랍인과 외모가 비슷한 인도인이 린치를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던 2000년대 초반과 비슷하다. 이전에도 미국의 백인 남성 위주 주류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소외되던 아시아계 미국인은 더욱 위기감과 공포감을 느낀다. 실제 필자가 예전에 만나본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 주류 영화나 코미디영화가 아시아계를 조롱하는지 여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이런 논란을 분석해보면 각 영화에 등장하는 사회적, 성적, 인종적 소수자, 혹은 소외되고 상처 입은 계층의 반발과 그 이면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놓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이전에 나온 다른 작품들에서 묘사된 모습에 대해 불만이 쌓여 있다가 위에 언급된 그 작품들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고정관념에 맞서라
‘청년경찰’은 재중동포와 중국인 거주지역이 된 서울 대림동을 범죄 소굴로 그리고 재중동포들을 장기 밀매하는 흉악범으로 그리고 있다. 사실 ‘청년경찰’ 이전에도 ‘아저씨’ ‘황해’ ‘차이나타운’ ‘신세계’ ‘아수라’ 같은 많은 한국 범죄영화가 재중동포를 흉악범으로 묘사했는데 마침내 ‘청년경찰’을 계기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재중동포의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영화이론가 리처드 다이어는 서구 사회의 사회적 주류인 이성애적 백인 중산층 남성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기준으로 삼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인물을 비정상적으로 그려내곤 하는데, 이것이 인종·성·계급의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동성애적인 남성은 여성화된 남성으로 그리거나, 하층계급의 유색인 남성은 무식하거나 우스운 인물이거나 폭력적이라는 스테레오타입으로 재현함으로써 그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면 이성애적인 한국 중산층 남성을 기준으로 그 남성의 출신 지역에 따라 위계를 설정하는데 그 맨 아래쪽에 위치하는 것이 바로 남한 출신이 아닌 다른 아시아 남성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범죄자로 그려지거나 조롱과 희화화, 무시의 대상이 되고 부족하거나 비정상적인 인물이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군함도’ ‘V.I.P.’ ‘청년경찰’을 둘러싼 관객층의 반발은 영화계에 숙제를 하나 안겨줬다. 영화계는 이것을 단순한 단발성 해프닝 정도나 평점 테러로만 여기지 말고 근본적으로 관객의 인식과 대응이 바뀌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폭력과 범죄 묘사 자체에서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것만큼이나 연계된 인물의 출신이나 최근의 사회적 추세에 대해 더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모니터링을 거칠 수 있다. 그 모니터링 과정에서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집단의 인권을 침해할지도 모를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더 신경 써야 한다.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