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불해주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어서
내가 나를 지불해야 한다
삶은 매양 가벼운 순간이 없어서
당나귀 등짐을 지고
번지 없는 주소를 찾아야 했다
저녁이면 느닷없이 배달 오는 적막들
골목에 잠복한 불안
우체국 도장 날인처럼 쿵쿵 찍혀오는
살도록 선고유예 받은 날들
물건을 기다리는 간이역의 쪽잠 같은 꿈이
담벼락에 구겨 앉아 있다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으로
이 세상에 온 대가를 지불하고
빗방울은 가문 그대 마음을 적시는 것으로
저의 몫을 다한다
생이여!
나는 얼마나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야
나를 지불할 수 있는가
얼마나 더 울어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모든 날들은 착불로 온다
사랑도 죽음마저도
권대웅●1962년 서울 출생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당나귀의 꿈’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