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 주도 성장, 구체적 청사진 시급한데…
- 치킨 값 인하 칭찬한 재벌 저격수?!
- “기대만큼 속도 안 나 답답하다”
홍 수석은 논문에서 외환금융위기 이후 시기(1999~2012년)에 실질임금 증가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0.68~1.09%포인트,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0.45~0.50%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 경제발전연구 제20권, 2014). 이러한 연구 결과의 함의를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최저임금제 강화, 생활임금제 도입,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연계성 확립 등 과도하게 하락한 노동소득분배율을 회복시키는 노동친화적 분배정책과 영세 자영업자 소득안정대책이 내수증진과 생산성 향상으로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에 기여할 수 있다.’(위 논문)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홍 수석은 노무현 정부 때 국민경제자문회의 특별위원회 전문위원, 노사정위원회 제조업발전특별위원회 위원을 맡으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12년과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참여하며 ‘문재인 경제정책’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위 논문에서 거론한 △최저임금제 강화 △생활임금제 도입 △영세 자영업자 소득 안정 등은 문 정부 출범 후 ‘제이노믹스’의 주요 방안으로 포함됐다. 내년 최저임금은 역대 최고 상승률(16.4%)을 보이며 7530원으로 인상됐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생활임금제 확대기반 구축’이 과제로 들어가 있다.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홍 수석은 2014년부터 문재인 의원 혹은 더불어민주당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여러 정책안을 내놨다. 2014년 7월 ‘소득주도 성장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서 그는 상시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법정노동시간 준수와 실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현실화, 소상공인 공동납품·공동교섭 보장 등을 제안했다(159쪽 표 참조). 이러한 내용은 문재인 공약에 대거 포함됐고, 향후 실제 정책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한마디로 가계소득을 늘려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선(先)성장 후(後)분배가 아니라,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한다. 소득분배 개선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포스트 케인스주의자들의 임금 주도 성장(wage-led growth)과 맥을 같이한다. 홍 수석을 잘 아는 한 경제학자는 “홍장표 교수는 주로 중소기업 관련 산업정책을 연구해왔는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소득 주도 성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그들의 이론을 그대로 들여오기보다는 노조 조직률이 낮다거나 영세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점 등 한국적 특수성을 고민하며 연구해왔다”고 전했다.
가을 정기국회 놓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5월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깜짝 발탁하면서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변화시켜 경제민주화와 소득 주도 성장, 국민 성장을 함께 추진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고공행진 중인 문 대통령 지지도에서 엿볼 수 있듯 이러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높다. 정부 안팎의 ‘문재인 사람들’ 또한 새 정부가 운전대를 확 돌린 김에 저성장→양극화의 순환 고리를 잘라내길 바란다. 그런데 문 정부 출범 4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슬슬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크게 두 가지 점에서다. 하나는 소득 주도 성장의 구체적 청사진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벌개혁에 실기(失期)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득 주도 성장을 지지하는 한 경제 전문가는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기대치를 한창 올려놓고는 지금까지 한 게 거의 없어 정책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걱정과 불만이 나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한 경제학자는 다음과 같이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 출범 이후 4개월간 소득 주도 성장과 관련해 정부가 한 일은 무엇인가.
“최저임금 인상한 것과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문재인 케어’를 발표한 것 이외에는 나온 게 없다. 그런데 지금 필요한 것은 미시적인 정책 방안이 아니라 구체적인 청사진이다. 가계의 소득을 얼마만큼 올려줄 것인가, 그렇게 하면 경제 활성화 효과는 얼마나 나타나는가, 가계의 소득을 늘릴 방안은 무엇이며, 거기에 소요되는 재원은 얼마인가, 재원 마련 방안은 무엇인가 등 거시적으로 접근하고 구체적인 계량치를 제시해야 한다. 이것 없이 주먹구구로 소득 주도 성장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하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캠프에서 만들지는 않았나.
“캠프는 공약을 만드는 곳이어서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 청와대에서는 경제학자인 홍장표 수석밖에 할 사람이 없는데, 정책을 다뤄보지 않은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는 작업도 아니다. 국책연구원들이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이러한 종합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답답하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과)와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과)가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된 것은 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의 반영으로 해석됐다. 잘 알려졌다시피 장 실장과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 운동에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사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문 정부가 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구체적으로 내놓은 재벌개혁안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장 실장은 청와대가 공개한 ‘친절한 청와대’ 영상에서 문 정부에 들어와 추진한 정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세 가지로 △치킨 값 인하 △8·2 부동산 대책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정부가 직접 부담하는 것)을 꼽았다. 재벌개혁과 관련한 정책은 없었다. 이에 일각에선 장 실장에 대해 ‘총알 없는 재벌 저격수’라는 말도 나온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 전문가는 “이번 정기국회가 재벌개혁 법안을 통과시킬 적기인데, 정부가 그럴 생각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왜 지금을 적기라고 보는가.
“내년에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그다음 해는 총선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 여당이 압승한다면 또 기회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높고, 재벌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여론도 강하다. 이번 가을 정기국회는 재벌개혁과 대기업 집중을 해소할 법안들을 통과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다.”
▼어떤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전체적인 방향이 나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의무 소유 비율을 상향시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고 본다. 이전 정부가 추진하다가 실패한 상법 개정안도 다시 시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만큼도 안 하려는 것인지….”
‘혁신 성장’ 시동 언제 켜나
2013년 법무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를 대상으로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집행임원제 의무화 △감사위원인 이사를 다른 이사와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대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고,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을 늘려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를 도모하려는 의도에서다. 이들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한편 ‘성장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문 정부의 4대 경제정책 방향은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공정 경제 △혁신 성장이다. ‘혁신 성장’의 주요 방안은 중소기업의 성장 동력을 촉진하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 대외개방을 확대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러한 과제를 주도할 주무 부처인 중소기업벤처부 수장조차 임명하지 못한 상태다.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 한 인사는 “외교·안보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경제 문제”라며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