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김용기의 살맛나는 경제

“사회적 문제 해결, 금융 제 역할 해야”

  • 김용기|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입력2017-10-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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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서민 위한 사회적 이익 추구하는 것이 ‘포용금융’ 금융 非민주성이 자산양극화 초래 카카오뱅크發 금융혁신…좀 더 두고 봐야 그들의 금융? 우리의 금융! 포용금융으로 나아가야
    한국 금융은 누구의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

    금융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등 업계 1,2위를 다투는 금융지주사의 순이익은 올해 상반기에만 각각 1조8000억 원을 넘어섰다. 지주사 설립 이래 최고 실적이다. 그 외 하나금융지주와 우리은행까지 합한 4대 금융사의 상반기 순이익은 6조 원에 육박한다.

    앞으로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향후 금리 상승으로 취약계층의 채무상환능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은행 자산 전체의 건전성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득 1,2분위(하위 40%)에 대한 대출은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의 14%에 불과하다.



    금융사 관점 vs 국민 관점

    하지만 국민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금융은 근심거리다. 무엇보다 금융의 크기(size), 다시 말해 금융사가 보유한 자산이 너무 크다. 금융사의 민간 부문 자산은 가계 및 비(非)금융기업에 빌려준 돈이다. 금융사에는 이자 수입의 원천이지만, 가계와 기업 입장에선 부채다. 이 부채가 경제 규모 대비 과도하게 커져버리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흔히들 금융 발전과 경제 발전은 상관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행해진 연구 결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금융의 민간 부문 대출이 명목 GDP(국내총생산) 대비 100%를 넘어서면 금융이 경제성장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국 금융의 민간 부문 대출은? 무려 193%다.

    ‘과도한 금융’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첫째, 실물 부문(비금융기업)에서 활동해야 할 인재들이 거대 금융사로 간다.

    둘째, 평상시에는 신용 공급을 통해 자산 가격의 상승을 가져온다. 은행 대출로 집값이 고공 행진하는 것을 보라.

    셋째, 경기 침체기에는 그간 공급하던 신용을 줄여 자산가격의 급락을 초래한다. 실물  부문은 유동성 위기에 빠져 결국 상당수 실물 기업이 파산하게 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의 연구에 따르면, 경기 침체 시기 성장 둔화 내지 하락의 3분의 1은 은행이 신용을 줄인 탓에 발생한 것이다.

    과도한 민간 부문 금융의 절반은 가계부채다. 부채의 증가는 가계 소비를 촉진해 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으나, 그 정도가 과도할 경우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이어져 국내 수요를 제약하게 된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1360조 원에 달한다(2017년 3월 말 기준). 2분기에는 1400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부채만 놓고 봐도 GDP 대비 92.9%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5%포인트나 상승했다. GDP 대비 가계부채가 한국은 신흥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최근 들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불과 7년 전인 2010년,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60%를 하회했다. 지난 7년간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했지만, 그 성장의 상당 부분을 ‘빚에 의한 소비’에 의존한 바가 컸던 것이다. 그 결과 현재 가구당 DSR(처분가능소득 대 비 원리금상환액 비율)은 26.6%이다. 이는 2016년 3월 말 기준 통계이니 지금은 이보다 높을 것이다. 특히 소득 2분위(하위 20~40%)에 속하는 자영업자의 DSR은 33.8%로 위험 수위에 있다. 지속가능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전체 가구 중 57.7%가 금융부채를 보유한다. 가장이 30대 및 40대인 가구 중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비중은 각각 68.6%와 71.8%로 특히나 높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에 발표한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융부채를 보유한 가구 중 70.1%는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했다. 특히 20.4%는 ‘매우 부담스럽다’고 했다. ‘부담스럽다’고 답한 가구 중 74.5%는 ‘가계의 저축과 투자,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응답했다(왼쪽 표 참조).

    국제 비교를 해보더라도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은 매우 높다.

    가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안정된 노후 연금소득이 보장된 북유럽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한국이 단연 세계 톱이다. 169%다. 북유럽 국가들은 조세부담 수준이 높아 가처분가능소득은 적은 반면 보육·교육·주거·노후에 소비지출을 할 필요가 없다. 복지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통계 확보가 가능한 25개국의 가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평균치는 129.2%다. 이 또한 국제비교를 위해 2015년 말 통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한국의 2016년 말 부채비율은 178.9%다. 1년 만에 10%포인트나 올라간 수치다.


    국내 부채비율, 세계 톱 수준

    과도한 금융부채의 부작용은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 △가계소비 제약에 그치지 않는다. 소득양극화보다 더욱 심각한 △자산양극화를 초래한 것도 상당 부분 금융부채 탓이다. 오늘날 금융은 비민주적이다. 고소득자, 자산 보유자, 정규직 근로자의 편이다. 이들은 금융을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또 금융을 이용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자)도 적게 부담한다. 이들에게 금융부채는 실물자산을 늘리는 데 사용되는 종잣돈이다.

    우선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의 평균 금융부채는 1억5719만 원이다. 1분위(하위 20%) 가구 평균 금융부채 1286만 원의 12배다. 소득 5분위의 금융부채 중 이자율이 높은 신용카드 관련 대출은 평균 45만 원으로 총 부채의 0.4%에 불과하다. 반면 소득 1분위의 금융부채 중 신용카드 관련 대출은 5%나 된다. 소득 1분위의 부채는 비교적 이자가 싼 담보대출의 비중은 낮고 신용대출의 비중은 높은 구조다. 이들이 즐겨(?) 이용하는 신용대출 이자율은 대부분 법정최고금리인 27.9% 언저리에 있다. 최근 정부는 법정최고금리를 27.9%에서 24%로 낮추려고 하는데, OK저축은행 신용대출 중 85%의 이자가 24%를 초과한다.

    금융은 고소득자와 자산보유자만 바라본다. 프라이빗 뱅크(PB)를 통해 거액 예금자나 투자자를 상대로 절세를 하고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컨설팅한다. PB 점포는 부자들이 밀집한 서울 강남 등지에 몰려 있다. 이들 점포에는 부동산 전문가까지 상주한다. 고소득층 고신용자(1등급)는 저소득층인 금융소외자(신용 7등급 이하)보다 10분의 1에 불과한 싼 가격으로 금융상품을 구매한다. 고소득 고신용자가 연(年) 2%로 금융을 이용할 때, 저소득층 저신용자는 연 20% 이상의 고금리로 금융을 이용한다.

     일반 상품의 경우 고소득층은 백화점을 이용하며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저소득층은 시장이나 마트를 이용해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금융이 다수 서민을 위한 금융상품 개발에 실패한 탓이다. 관심이 없었다는 설명이 더 맞을지 모른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 미 예일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금융혁신의 결과가 보다 다수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보다 번영되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해결책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금융의 ‘탈민주화’ 심각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감독 당국을 중심으로 저신용자의 신용 회복과 채무 탕감을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7월 19일 최종구 위원장 취임 직후 금융위원회는 8월 말까지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소멸시효완성채권 21조7000억 원어치를 소각하기로 했다. 민간금융기관도 4조 원어치를 소각할 예정이다. 소멸시효완성채권이란 상법상 채무 소멸시효 5년이 경과한 채권을 말한다. 금융사들은 그간 법원의 지급명령 등을 받아 그 시효를 15~25년까지 연장해 관리해왔다.

    이론적으로는 이번 조치로 214만3000명의 신용등급이 개선될 수 있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어느 정도까지 성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이 중 상당수가 다중채무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같은 조치는 너무 늦었다. 채무자의 모럴해저드만 문제 삼던 그간의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원리금 지불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용을 공급한 채권자들 또한 진작 책임의 일부를 졌어야 했다.

    카카오뱅크를 통한 송금 수수료의 획기적 절감이나 연 10% 전후의 중금리 상품이 등장하는 것 또한 반가운 소식이다. 그간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간의 이자율 갭(gap)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가 일으키는 ‘금융 혁신’이 고신용자에게만 치중되던 금융 서비스를 다수 서민 중산층, 그리고 청년으로 향하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4,5등급의 중급 신용자와 청년에게 실제로 저금리 대출이 이뤄지는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1,2등급의 직장인 중심으로만 대출이 실행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 금융의 주된 관심은 여전히 고소득 고자산가에만 쏠려있다. 이제 다수의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금융 이용 실적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던 청년을 위한 민주적인 금융이 필요하다. 금융산업만을 위한 이익이 아닌, 한국 사회의 이익과 상충하지 않는 금융이 필요하다.

    금융은 일자리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금융의 불안은 경기 침체를 야기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켜 실업을 일으킨다. 자본시장에서 단기적 주주가치를 강조할 때 노동환경은 악화된다. 단기적 배당과 주가 상승을 위해 당기순이익 높이기에만 주력할 경우 장기적 투자와 고용, 사내교육과 훈련 등은 뒷전으로 밀린다.

    금융적 이해관계가 득세하면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공공 서비스는 시장화, 금융화, 탈민주화의 길을 걷는다. 최근 논란이 된 민자고속도로의 과도한 통행료 징수가 좋은 사례다. 단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추구한 정부의 이해관계와 민간자본의 수익 추구가 맞물려 교통복지라는 공공성은 외면됐다. 

    민자도로 1호인 인천공항고속도로(신공항하이웨이(주) 운영)는 16년간 투자비(1조4760억 원)의 두 배가 넘는 통행료 수입을 이미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2030년까지 계속해서 통행료를 챙길 예정이다. 유료도로법에 의하면 통행료 총액은 해당 유료도로의 건설유지비 총액을 초과할 수 없다. 통행료 수입은 비정규직 요금징수원에 대한 낮은 보수를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 영업이익으로 남기 때문에 통행료 수입이 투자비를 두 배나 초과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의 장난’이 개입되면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가 된다.

    우선 민자도로 건설과 운영의 주체로 나서는 기업의 자본금은 매우 작다. 공사를 수주한 주체는 도로설계/공사/토지보상/건설유지관리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을 실질적 건설·운영 주체인 대주주로부터 15~20%의 고금리로 조달한다. 이후 정부 보조금과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이는 통행료의 상당 금액은 영업이익으로 잡히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빌린 차입금 이자 비용으로 쓰인다. 이로써 대주주는 투자비용의 두 배 이상을 대출금 이자 명목으로 거둬들이고, 형식적인 민자도로 건설·운영 주체는 통행료 수입의 상당 비중을 이자 비용으로 지불한 후 나머지만으로 법적 투자비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의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매각, 재벌 2,3세들의 제조업 경시와 재무적 이익 추구, 이에 따른 고용 불안정의 심화 또한 금융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적 가치가 훼손된 사례들이다.



    금융이 ‘이생망’ 막으려면

    사실 금융이 사회적 이익을 저버리고 사적 이익을 추구해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아주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울렸다. 가령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미 1936년 그의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금융과 산업자본 간 관계의 균형이 필요하다. 투기적 자본이 생산적 자본보다 중요해질 때 경제는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고 주창했다.

    금융은 이제 저신용자의 신용 회복이라는 좁은 의미의 포용적 금융을 넘어 사회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넓은 의미의 포용적 금융으로 나아가야 한다. 금융산업만의 이익이 아닌, 한국 경제와 사회의 이익이 병행하는 금융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금융과 사회가 함께 갈 수 있도록 국가, 말하자면 정부와 사회공동체가 금융을 민주적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관치금융이 무너진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간 그러했던 것처럼 금융산업은 계속해서 국가 정책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포획하려 할 것이다.

    금융은 또한 국민의 소득은 늘리고 가계지출은 줄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의 금융은 부동산 투기를 지원해 상위 계층의 실물자산 확대에 기여한다. 이를 통해 상위 계층의 사업소득(임대소득 포함)은 늘어나는 반면 서민중산층의 소비지출 중 주거비와 비(非)소비지출 중 이자 비용의 증가를 초래한다(위의 표 참조). 솟구친 집값은 청년들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나 ‘3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의 원인이 된다.

    금융은 또한 상위 20%가 아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혁신해야 할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 연준 의장을 지낸 폴 볼커는 금융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20년간 금융의 유일한 혁신은 ATM(현금자동지급기) 정도였다.”

    하지만 금융을 적대시하고 외면하기보다는 금융이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러 교수는 “(금융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PB,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사회간접자본을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의 창설과 이를 위한 투자자의 발굴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금융의 역사를 보면 금융은 보험(리스크 대비)이나 모기지(주택 구입 후 작은 돈으로 나눠서 갚는 것), 적금(저축)이나 종합자산관리계좌(여윳돈 관리), 연금(노후 대비) 등의 상품 개발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한국 금융은 여전히 일부 고소득층을 위한 절세 비즈니스에나 노력을 경주할 것인가, 아니면 청년 등 보다 많은 사회구성원을 위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할 것인가. 정부와 우리 사회 공동체의 관심과 압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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