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인 여자친구한테 냄새 안 나?”
- “수년 지나도 한국인과 친구 안 돼”
- 중국인 유학생 6만8000명 시대의 그늘
서울 한 대학의 한국어어학원에 다니던 시절, 중국인 유학생인 필자(왕해)는 중국인 선배 A씨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필자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붙임성이 있는 성격이기에 서울에서 얼마든지 한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필자는 3년 동안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A씨의 말이 거의 맞아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국인 유학생이 한국인과 친구가 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이렇게 느끼는 건 필자뿐만이 아니다. 많은 중국인 유학생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어느 월요일 오후 서울 고려대 근처 안암역 2번 출구 횡단보도 앞은 대학생들로 붐볐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중국어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스무 명 남짓한 학생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유학생은 6만7993명에 달한다.(2017년 4월 법무부 통계) 전체 외국인 유학생 12만3462명의 절반에 해당한다. 한국 대학 ‘글로벌화’의 결과이지만 정작 중국인 유학생들이 체감하는 것은 높은 벽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대학을 졸업한 뒤 계속 살고 싶었어요.”
고려대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첸모(24) 씨의 말이다. 그는 “지금은 중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 이 사회와 동화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들은 저희를 그냥 돈만 많은 중국인으로 보는 것 같아요.”
많은 중국인 유학생은 이렇게 답한다. 한국인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중국인 유학생 대부분이 넉넉한 집안 출신인 건 사실인 듯해요. 이해할 수 없는 게 수업에 안 들어오는 중국인 학생들이 있어요. 학비가 아깝지도 않나 싶죠.” 고려대를 졸업한 이모(26) 씨의 말이다. 경희대를 졸업한 심모 씨도 “중국인 학생들을 상대로 ‘학위 장사’를 한다는 말을 교수로부터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밥 한 번 사면 끝”
그러나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고려대의 중국인 유학생 이모(24) 씨는 “모든 중국인 유학생이 모범생인 건 아니다. 졸업장만 받으려고 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성실한 중국인 유학생도 많다”고 말했다.경희대의 중국인 유학생 정모(22) 씨는 한국인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밥값을 계산한 적이 많다고 한다. 정씨는 “중국에선 내가 한 번 사면 다음번엔 상대가 사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국인 학생들과는 그냥 내가 밥 한 번 사면 그걸로 끝이다”라고 했다.
한국인 대학생 중 상당수는 “중국인들의 매너 없는 행동에 관한 외신을 자주 접한 뒤에 한국의 중국인 유학생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뉴스와 개인적 경험이 일치할 땐 부정적인 인식은 더 심화된다.
대학생 하모(23) 씨는 “유럽 한 공항에서 줄을 서 있는데 내 앞에 중국인이 있었다. 다른 중국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중국인 앞으로 새치기를 하더라. 내가 인상을 쓰니까 오히려 내게 따지고 들더라. 이후 중국인에 대해 선입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모(25) 씨도 “공항 면세품 인도 장소에서 중국인들이 다량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장면을 늘 목격한다. 중국인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경희대 부근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소매업을 하는 최모 씨는 “중국인 손님들의 매너가 더 좋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인이 소수다 보니 문제를 안 일으키려고 해요. 진상을 떠는 중국인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인들은 존댓말을 잘 쓰지 않는 중국어 말투를 한국어에 그대로 쓰면서 자주 오해를 받는다고 한다. 최씨는 “같이 일하는 중국인 직원이 사장인 내게 ‘밥 먹었어?’라고 하기에 충격을 받았다. 그 직원 말이 중국에선 존댓말을 잘 안 쓴다고 하더라. 언어문화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고려대 재학생인 한모(23) 씨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말투가 매우 직설적이고 세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같은 대학의 중국인 유학생 류모(23) 씨는 한국인 학생들의 말투가 오히려 이상하다고 반박한다. 단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고 말해도 되는 것까지 ‘이런 것 같아요’ ‘저런 것 같아요’라고 에둘러 말한다고 한다. 반면 중국인들은 돌려 말하지 않고, 윗사람이라고 격식을 차리지도 않고, 깔끔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중국인 유학생인 필자는 서울에서 살면서 ‘중국인은 더럽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편견을 자주 접했다. 어느 날 필자가 학교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화장실이 너무 더러웠다. 휴지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고, 전에 쓴 사람이 물도 내리지 않고 나간 상태였다.
필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을 내렸지만 변기가 막혀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칸에서 그냥 나왔다. 한 한국인 학생이 그 칸으로 들어갔다. 이내 그 학생은 “중국인, 화장실 개 더럽게 써”라고 투덜댔다.
“매일 닦아”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졸업한 중국인 유학생 제모(24) 씨는 한국에 온 뒤 ‘중국인은 더럽다’는 말을 안 들으려고 결벽증까지 생겼다고 한다. 한번은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갔다. 제씨는 자리에 앉기 전 테이블을 먼저 닦았다. 동행한 한국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넌 중국인 같지 않게 깨끗하네.”
한국인 남자친구를 사귀는 중국인 유학생 유모(여·23) 씨는 “남자친구의 친구들이 제 남자친구한테 ‘중국인 여자친구한테 냄새 안 나?’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중국인 유학생 유모(26) 씨는 “건물 밖에서 한국인이랑 함께 담배를 피웠는데 관리자가 다가왔다. 한국인한테는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가볍게 말하더니 내게는 ‘중국에서 나쁜 습관을 갖고 왔다’고 심하게 대하더라”라고 했다.
고려대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 류모 씨는 “서울의 지하철 객차 안에서 친구와 중국어로 조근조근 말해도 옆에 있는 한국인들이 ‘또 중국인이다, 시끄럽다’고 자주 불평한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겐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어로 조근조근 말해도…”
“죄송하지만 왕해 씨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주세요. 이름은 넣어드릴게요.” 한국인 대학생 세 명과 중국인인 필자가 함께 해야 하는 조별과제(팀 프로젝트)의 첫 만남에서 들은 말이었다. 한국어로 기사를 쓰는 과제였는데 필자에겐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한국인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폐가 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도 같은 팀원인데 처음부터 배제하는 게 서운했다. 얼마 후 필자는 팀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면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팀원들도 필자의 생각에 동의했고 필자는 열심히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학점을 받았다.중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인 학생들과 교류하는 거의 유일한 기회는 수업에서 해결해야 하는 조별과제다. 하지만 한국인 학생들은 중국인 유학생들과의 팀워크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대학생 이모 씨는 “조별 모임 때 나타나지 않는 중국인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한모 씨는 “성실한 중국인 유학생도 한국어 비문을 많이 쓴다. 그 부분을 완전히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학생 엄모(24)씨는 “그가 중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의견이 주제와 맞지 않아서 반영이 안 된 것인데, 그는 중국인이라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더라. 역(逆)편견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휑한 채팅 방
하지만 적지 않은 중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인 학생들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국민대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왕모(23) 씨는 팀 프로젝트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왕씨를 제외하곤 모두 한국인인 팀이 만들어진 후 팀원들은 채팅 방을 만들었다. 왕씨는 이 채팅 방에 먼저 인사말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도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채팅 방엔 왕씨의 인사말만 남겨져 있었다. 발표 당일, 왕씨의 팀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왕씨가 모르는 내용을 발표했다. 조원 명단에 왕씨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왕씨는 “제 의사도 묻지 않고 그렇게 빼버리니 어이없었다”고 말했다.고려대에 유학 중인 중국인 관모(23) 씨는 “한 한국인 조원이 내 앞에서 ‘왜 중국인 학생들은 공부를 못하는가?’를 주제로 조별 발표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중국인 유학생 이신격 씨는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지만 한국인을 대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고 말한다.
대학생인 한국인 필자(이지원)는 수업 과제인 이 기사의 공동 제작을 위해 같은 수업을 듣는 중국인 필자(왕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때 중국인 필자는 한국인 필자를 중국인인 줄 알았다.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먼저 말을 걸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인과 공동 제작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면 한국인 필자는 중국인에게 먼저 말을 걸었을까?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