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브랜드 스토리

鐵의 무한변신 시장을 ‘만들다’

동국제강 럭스틸

  • 강지남 기자|layra@donga.com

    입력2017-10-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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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뭇결인데 나무가 아니다. 잘 다듬은 대리석 같은데 대리석이 아니다. 동국제강이 만드는 컬러강판 ‘럭스틸’은 철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철근’으로 안으로 숨길 거부하고 건물의 외투가, 속살이, 때론 예술이 되고자 한다. 중국이 불 지핀 글로벌 철강 전쟁이 럭스틸을 낳은 셈인데, 럭스틸은 역으로 중국으로 들어가 ‘사드 보복’을 뚫어냈다.
    장강(長江)이 굽이굽이 흐르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사람들은 의리를 버린 자를 ‘반수(反水)’라 부른다. 물을 거스르는 것처럼 본성에 어긋난 짓을 했다는 뜻이다. 중국의 영웅호걸 중 ‘의리’ 하면 관우(關羽)다. 삼국시대 최대 격전지였던 후베이, 그리고 후베이의 중심 도시 징저우(荊州)에서는 관우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형주성벽에는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이 도시를 지키는 신물처럼 자리한다(신동아 2016년 6월호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 참고).

    그래서일까. 징저우 관우공원에 새로 세워진 관우상(像)은 물살을 가르는 듯한 배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높이 59m, 무게 136t으로 세계에 현존하는 청동조각상 중 가장 크다.

    관람객은 계단으로 배에 올라 관우에게 다가간다. 총면적 7200㎡(약 2000평)에 달하는 거대한 배는 목재 무늬가 드러난 원목 색이다. 그래서 많은 관람객이 나무로 배를 만들었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가 아닌 철(鐵)이다. 관우선의 외장재로 쓰인 것은 동국제강의 컬러강판 럭스틸(Luxteel)이다.

    컬러강판이란 표면에 도금 후 색을 입힌 철제강판을 말한다. 럭스틸은 기존 컬러강판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먼저 철판을 마그네슘, 알루미늄, 징크 등으로 도금 처리한 다음 다양한 패턴의 프린트를 입힌다. 벽지 종류가 무수히 많듯 럭스틸도 어떤 프린트를 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변신한다. 관우선에 쓰인 것처럼 원목 느낌을 내는 것도 있고 부식동(銅), 징크(Zinc·아연), 대리석, 벽돌 등의 패턴을 가진 것도 있다. 심지어는 ‘국방무늬’도 있다.


    銅 대비 70% 저렴

    건축업계는 보수적이다. 새로운 자재가 나왔다고 해 ‘실험 정신’을 발휘하며 사용하진 않는다. 선례가 있어야 한다. 동국제강은 론칭 후 럭스틸 레퍼런스(Reference) 쌓기에 주력했다.

    서울 종로구 화동 송원아트센터를 럭스틸로 만들었고(회색 부식동 강판을 주름처럼 접어서 외장 마감을 했다), 2014년 이정훈 건축가와 럭스틸 전시회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서울 종로구 옛 조선총독부 체신청 부지(국세청 남대문별관)에 ‘럭스틸 마운틴(LUXTEEL Mountain)’이라는 전시 공간을 럭스틸로 만들어 서울건축문화제의 주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2015년 서울 남산 N서울타워의 ‘서울타워 플라자’가 리모델링 되면서 외부를 마감하는 데 럭스틸이 사용됐다. 특히 나무 기둥으로 보이는 알루미늄 목(木) 무늬 프린트 제품을 장식 루버(louver)로 사용해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리모델링을 맡은 설계사무소가 럭스틸 론칭쇼에 와서 장 부회장의 명함을 받아갔고, 럭스틸을 쓰고 싶다며 장 부회장에게 직접 연락해왔다”며 “원래 계획했던 수입 징크 대신 럭스틸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우상 프로젝트는 럭스틸의 중국 대리점 ‘심천아트’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 유명 예술가이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를 디자인한 한메이린(韓美林)이 관우상 디자인을 맡았는데, 그에게 “철강 제품이지만 어떤 질감이든 표현해낼 수 있다”며 럭스틸을 소개한 것. 중국에서는 관우상 프로젝트가 좋은 선례가 돼 시장이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중국항공사 남방항공이 자사 빌딩 외장재로 럭스틸을 택했다”며 “적어도 럭스틸 교역에서는 사드 보복 기류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이케아 광명점의 파란 외관, 하남 스타필드 제네시스 매장, KCC 스웨첸 아파트 정문, 수서역 SRT 환승센터 등에도 다양한 질감과 느낌의 럭스틸이 쓰였다. 2017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서울 노원구의 작은 도서관 ‘한내 지혜의 숲’ 역시 알루미늄 느낌의 은회색 럭스틸로 외관을 둘렀다.(314 쪽 참조) 이 도서관을 설계한 장윤규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는 “럭스틸은 철이 철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고수익 내는 비결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철강업계 구조조정은 살벌했다. 일부는 ‘터널’을 무사히 통과했고, 나머지는 그러지 못했다. 동국제강은 전자에 속한다. 2014년 6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추진했다. 유니온스틸을 흡수·합병했고, 본사가 들어선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 및 비핵심 계열사 등을 팔았다. 장 부회장은 유니온스틸에서 동국제강으로 옮겨와 단독 대표이사를 맡았다. 시장성이 나빠진 후판 및 형강 등의 비중을 낮추고 럭스틸과 같은 고수익 제품에 주력했다. 동국제강은 2년 만인 지난해 6월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졸업했다. 2015년 1965억 원, 2016년 2566억 원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기조로 돌아섰다.

    이러한 동국제강의 약진에 럭스틸은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국내외 판매량은 3년 전인 2014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올해 장 부회장이 ‘꿈’이라고 표현한 2000억 원 매출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럭스틸은 타 제품군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상당히 높은 알짜 제품이다.

    동국제강은 철강업계의 전통적인 B to B(Business to Business)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B to D(Business to Designer)로 전환한 것이 럭스틸 성공에 주효했다고 본다. 철강제품은 보통 대리점을 통해 고객에게 공급된다. 대리점에 제품을 납품하면 그걸로 끝이다.



    ‘있던’ 제품, ‘없던’ 시장

    그러나 동국제강은 럭스틸 시공팀을 따로 조직해 직접 건설 현장이나 설계사무소를 찾아간다. 시공팀은 신축 건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뒤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6명의 전문 인력으로 꾸려진 디자인팀이 다양한 패턴을 개발하기 때문에 고객 요구에 따라서는 맞춤형 패턴도 제작 가능하다. 현재 가공설비를 자체적으로 갖추는 중으로 내년부터는 고객이 원하는 형태로도 맞춤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박 차장은 “럭스틸을 박스 모양으로 만들어달라거나 접어달라거나 하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컬러강판의 고급화를 동국제강만 시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한 것은 럭스틸이 유일하다. 직접 고객과 대화하는 B to D 영업, 철강제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제품 전용 홈페이지(www.luxteel.com) 운영, ‘럭스틸리에(Luxteelier)’ 육성 등은 럭스틸을 브랜드로 공고화하려는 노력이다. 럭스틸리에는 럭스틸과 소믈리에(Sommelier)를 결합한 단어로 럭스틸 디자인 전문가란 의미다. 장 부회장이 직접 만든 용어다.

    럭스틸의 향후 목표는 건축 외장재로 더욱 확고한 입지를 다지며 해외시장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인테리어 자재 시장으로도 적극 진출할 예정이다. 화재 규제가 강화되면서 병원, 학교, 빌딩 로비 등에 주로 쓰이던 합판을 불이 잘 붙지 않는 럭스틸로 대체하려는 수요가 커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철강업계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 그 가운데 동국제강은 ‘있던’ 제품을 환골탈태시켜 ‘없던’ 시장을 만들어냈다. 작지만 강한 ‘희망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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