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두언 전 의원, “MB 관련, 구체 증거 확보 어려워”
- 여론조작 시초…2009년 초 ‘연쇄살인 홍보 지침’
- 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청와대 문건의 폭발력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기 위해 집권세력이 슬슬 몸을 풀고 있다.”(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9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적폐 청산’ 정국에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특히 여권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정치보복 논란이 일 수 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되어 있는 보수 세력이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즉 파편화된 보수 세력이 나름대로 전열을 정비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여권에서 이 전 대통령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그의 집권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과연 이 전 대통령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또 그의 운명을 가를 핵심 인물 3인은 누구인가.
“원세훈, MB 지시 관련 증언 가능성 없어”
이와 관련해 우선 주목되는 인물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다. 그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심리전단국 직원들과 외곽팀을 동원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2013년 6월 재판에 넘겨졌다.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무죄(1심)-유죄(항소심)-파기환송(대법원)이라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지난 8월 30일 법정 구속됐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가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기 때문이다.원 전 원장이 구속되면서 ‘청와대 개입설’이 전면화했다. 원 전 원장이 독자적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겠느냐, 청와대 나아가 이 전 대통령과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분석이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건이 드러난 적도 있다. 지난 6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국가정보원 적폐청산TF가 원 전 원장 시절인 2011년 ‘SNS 장악보고서’ 등 불법적 정치 개입 내용을 담은 문건을 국정원이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보고했다고 밝힌 것이다. 법원도 비슷한 판단을 내놓았다.
그러나 원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관련해 청와대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는 아직 드러난 바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정치권 인사는 9월 5일 통화에서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 지시 사항’ 같은 것이 나온다면 추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증거로 나올 것으로 보지 않는다. 원 전 원장이 그렇게 증언할 가능성도 없다”고 단언했다. 즉,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의 직접 관련성이 드러날 일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9월 8일 만난 정두언 전 의원도 “이 전 대통령은 성격이 용의주도한 사람이다. 자신이 책임질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유형이다. 문제가 되면 ‘내가 언제 하라고 했느냐’라고 말하는 식이다.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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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공군참모총장 경질 후 제2롯데월드 허가
그러나 이후 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제2롯데월드 초고층 빌딩 신축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 사업이었다. 20여 년에 걸쳐 전임 정권에서 번번이 좌절되어온 사업이 성취되었기에 그 배경을 놓고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신축에 반대하는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면서까지 허가를 내주었다.
진작부터 이 전 대통령은 롯데그룹과 남다른 관계였다. 당선자 시절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1층의 스위트룸을 사무실로 사용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인 장경작 전 호텔롯데 사장과의 친밀한 관계도 주목된다. 장 전 사장은 퇴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출연해 만든 청계재단의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급성장했는데, 자산 총액이 43조 원에서 96조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 신축 관련 수사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의혹을 속시원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고 최측근이던 이인원 전 롯데그룹 부회장이 롯데 수사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계에서는 현 정부가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해 움직임을 보인다면 롯데그룹이 제1 타깃이 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2012년 9월 2일 이명박-박근혜 독대의 비밀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은 2012년 9월 2일 청와대에서 정오부터 오후 1시35분까지 독대했다. 제18대 대통령선거를 100여 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대변인 격이던 이정현 의원은 “국민의 신임을 잘 얻어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대화가 있었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맞붙은 이후 이명박 정권 내내 사사건건 부딪쳤던 두 사람은 이날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이날의 독대와 ‘국정원 댓글 사건’은 아무 관계가 없을까?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소장이 참고가 될 것 같다. 공소장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면서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비난하는 5만여 건의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은 2012년 9월 1일부터 12월 18일까지다. 공교롭게도 이명박-박근혜 독대 하루 전부터 국정원의 댓글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독대의 비밀’은 이 전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한 장면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