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홍양호 통일부 차관

공직 생활 끝내려다 차관 된 햇볕정책 실무책임자

  • 신석호(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입력2008-05-16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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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양호 통일부 차관
    행시 21회에 합격한 뒤 총무처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1983년 자원해 당시 국토통일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현재 남아 있는 통일부 내 고시 출신 최고참으로 고시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한 기간(1999년 12월~2001년 7월)에 인도지원국장으로 일하며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의 핵심인 대북 인도지원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했다. 노무현 정부의 정동영, 이종석 장관 재임 기간 중에는 요직인 기획관리실장(2005년 2월~2006년 6월)을 맡았다.

    2006년 6월에는 남들이 가기를 꺼리는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대표 자리를 후배들을 위해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공직 생활을 정리할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 통일부 차관에 발탁됐다.

    꾸준히 쉬지 않고 공부하는 학자 스타일이다.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통일부 재직 중이던 1986년 12월 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단국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해 1998년 2월 ‘탈냉전시대 북한의 협상행태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올해 4월3일 경남대의 남북공동체지도자과정 특강에서 학생들에게 “평생 학습의 시대이니 열심히 배워 꼭 목적을 이루라”고 격려했다.

    3월 3일 취임사에서 “그동안 우리는 ‘보다 많은 접촉, 보다 많은 대화, 보다 많은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평가하고 “(앞으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제는 ‘보다 많은 내실 있는 접촉, 보다 많은 내실 있는 대화, 보다 많은 내실 있는 협력’을 해나가자”고 말했다. ‘내실’의 의미는 “지난 10년이 접촉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알맹이도 추구하자는 것”이라며 “이왕이면 이익과 성과가 있는 경협, 성과가 있는 대화를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취임 후 장관 인사청문회와 대통령 업무보고 등 각종 조직 내 대사를 무난하게 지휘해 부처 폐지 위기에 시달리던 통일부의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3월27일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남한 당국자 11명을 사실상 추방했을 때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북에) 당근(유인책)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며 당당하게 대응했다.

    북한 협상 관련 전문가인 그는 3월 말 이후 잇따른 북의 도발에 대해 “북한은 남한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각종 도발을 해 온 전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4월6일 일요일에도 출근한 그는 “차관이 되기 전까지는 매주 일요일 아내와 집 근처 산에 올랐는데 올해는 취임 이후 한 달이 넘은 오늘에야 처음으로 산을 찾을 시간을 낼 수 있었다”며 “몹시 분주했던 사이 온 산에 봄이 왔더라”고 말했다.

    洪良浩

    생년월일 : 1955년 5월25일

    출생지 : 대구

    학력 : 경북고, 경북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아대 대학원 정치학과(석사), 단국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박사)

    경력 : 행정고시 21회, 통일부 인도지원국장, 경수로기획단 정책조정부장, 기획관리실장,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대표

    저서 : ‘탈냉전시대 북한의 협상행태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논문)

    상훈 : 홍조근정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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