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 별 아래 집’ : 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미래인, 404쪽, 1만5000원
‘미친 별 아래 집’은 바르샤바 동물원 원장이던 얀 자빈스키와 아내 안토니나가 남긴 일기, 메모, 회고록 등을 종합해서 다이앤 애커먼이 쓴 논픽션이다. “끔찍한 현실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가득”했던 나치 점령기의 폴란드에서 양심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 저자는 “동물들은 겨우 몇 달 만에 포식 본능을 억누르기도 하는데, 인간은 수세기 동안 교화 과정을 거쳤음에도 그렇게나 급속히 짐승보다 잔인한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이유는?”이라고 묻는다.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책은 낡은 단벌 정장을 정성들여 갠 뒤 의자에 걸쳐놓는 사소한 행위, 밤이면 누워서 잠에 곯아떨어지는 것조차 신성한 기쁨과 경이의 체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실과 상상력이 버무려져 나타나는 애커먼의 화려한 수사학은 이 책에서도 빛이 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새로운 요소가 더해졌다. 그것은 바로 감동이다. 책을 다 읽은 뒤 내면 저 깊은 곳을 울리는 깊은 감동이 가라앉을 때까지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목숨 건 선행
‘미친 별 아래 집’은 나치 강점기에 지하에서 저항 운동의 참여자 일부가 폴란드 바르샤바 외곽의 한 동물원, 즉 ‘비스와 강변의 녹색 동물왕국’과 동물원장 부부가 살던 빌라를 암호화해서 부르던 별칭이다. 동물들이 다른 동물원으로 이송된 뒤, 바르샤바 동물원은독일군 식용으로 쓰일 돼지 농장과 모피 제조용 동물 사육장으로 변한다.
동물을 돌보던 평범한 부부 역시 이제 동물이 아니라 전쟁으로 미친 세상에서, 즉 화장터와 가스처형실 문턱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폴란드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뛰어든다. 얀과 안토니나는 수백명의 유대인을 게토에서 빼내 이 동물원의 은신처에 숨기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목숨들을 구한다. 얀은 유대인을 숨기는 일을 하며 나치에 타격을 주는 폴란드 지하군 조직의 일원으로 뛰어든다. 얀과 안토니나는 길 잃고 다친 동물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상처를 치유하고 주린 배를 채워주듯 갈 곳 잃은 유대인들을 동물원과 빌라에 은닉한 뒤 먹이고 재우며 돌본다.
이 군식구들을 거두는 행위는 저와 제 가족이 한꺼번에 몰살에 이를 수 있는 ‘중대 범죄’다. 그러나 얀과 안토니나에게 그런 협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부부임에 분명한 이들은 그럴싸한 거짓말과 창조적인 위장으로 나치의 감시를 따돌리고 이들 군식구들과 즐거운 동거를 한다. 얀과 안토니나는 위기에 대비해서 항상 청산칼리를 갖고 다니면서도 유머와 음악을 잃지 않고, 숨어 사는 군식구들에게 흥겨운 삶을 독려한다. 이 빌라의 주인이거나 임시 거주자들은 ‘작은 왕국의 엄격한 규율’을 따른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동물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이 기묘한 동거는 참으로 아름답다.
전쟁의 참화(慘禍)는 원래 사람에게만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되는 전쟁으로 동물원에도 포탄이 떨어진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 우리에서 들리는 사자의 끙끙거리는 신음소리, 호랑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안토니나는 사자며 호랑이 어미들이 ‘공포에 질려 어린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숨길 안전한 장소를 찾아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코끼리가 나팔소리 같은 울음을 미친 듯이 뿜어대고, 하이에나들은 겁에 질려 가끔씩 딸꾹질을 하며 킬킬거리고 숨을 헐떡였다. 아프리카사냥개는 섬뜩하게 짖어댔고, 붉은털원숭이들은 흥분하여 서로 뒤엉켜 싸웠다. 병적으로 흥분한 녀석들의 날카로운 외침이 대기를 갈랐다.”
이는 살아 있는 것들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본능적으로 드러내는 공포와 절망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는 대목이다. 동물들은 찢기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동물원 안에서 위기를 감지하고 날카롭게 울부짖고, 신음하고, 킬킬거리고, 헐떡이고, 딸국질을 하고, 짖어대고, 뒤엉켜 싸운다. 그렇게 무차별적인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 ‘동물원’에 대한 묘사는 호모 사피엔스 전체가 종(種)의 사멸에 이르리라는, 세상 끝 날에 대한 요한묵시록의 은유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