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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친 별 아래 집’

포화 속 동물원장 부부의 선행기

  •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미친 별 아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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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합창곡’

맹수들의 우리가 파괴되고 빗장이 풀리자 우리 안에 있던 맹수들은 밖으로 튀어나와 우왕좌왕한다. 그 대목에서 애커먼의 묘사는 서사시와 같은 문학적 울림을 준다.

“상처에서 피가 철철 나는 얼룩말이 허겁지겁 달리고, 겁에 질린 원숭이와 오랑우탄이 울부짖으며 나무와 관목들 사이로 돌진하고, 뱀들이 미끄러지듯 바닥을 따라 이동하고, 악어들이 발끝을 세운 채 종종걸음을 치는 동안, 유리며 금속 파편이 동물들의 피부, 깃털, 발굽, 비늘 등을 무차별 공격했다. 날아온 포탄이 조류사육장의 그물을 찢자 앵무새가 아스텍 문명의 신들처럼 빙빙 돌며 위로 솟구치더니 이내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탁한 공기 때문에 호흡이 곤란했고 불타는 나무, 건초, 살 등이 악취를 풍겼다. 원숭이와 새들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은 차라리 저승의 합창곡 같았다.”

유대인들이 수용된 게토와 ‘저승의 합창곡’이 울려 퍼지는 이 파괴된 동물원은 묘하게 상호 조응한다. 게토는 약탈, 협잡, 기만, 일상적으로 참수형과 총살이 이루어지는 생지옥이고 아수라장이다. 약탈자와 희생자가 공존하는 게토의 생태학은 곧 악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저를 드러내는지를 보여준다. 악은 세계의 도처에서 으르렁거리며 그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위기에 직면한 산 자들은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고, 곤두박질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우리 안에 갇힌 맹수들을 향해 재미 삼아 총질을 하는 나치 고위 관료들의 ‘사냥’과 게토의 유대인 어린아이들을 향해 재미 삼아 총을 난사하는 나치 경비병들의 모습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극악무도함은 어디까지인가. 아리안족의 순수 혈통을 확립한다는 명분 아래 대량 살상과 강제 불임수술 등을 행한 나치즘의 생물학적 이데올로기의 근거는 망상이다. 그들은 한 마디로 미친 것이다. 반면에 얀과 안토니나는 그 미친 자들과 싸운 진정한 의인이다. 그들은 곤경에 빠진 동물을 구하고 돌보듯,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도망자에게 은신처로 제 집의 일부를 내주고, 불안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듯 사람은 신성에 민감하며 경이와 초월을 추구하는 숭고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추악한 생물 종이기도 하다. 나치가 유대인을 ‘인간 이외의 종’으로 분류해 조준하고, 추적하고, 총구를 들이대고, 가스실에 집어넣어 박멸하는 광경은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혐오스럽고 사악한 존재라는 명백한 증거다.



포탄 속 작은 낙원

사람은 도덕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도덕은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내면의 도덕이 세계의 파멸에 맞서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행동의 원동력이 될 때 그것은 숭고해진다. 사람은 도덕 때문에 숭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덕이 행동으로 전환하는 강력한 동기가 될 때 비로소 숭고해진다. ‘미친 별 아래 집’의 주인인 얀과 안토니나가 바로 거기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그들은 미친 세상 속에서 지치지 않는 용기와 위엄, 그리고 이타주의의 행동으로 고통과 절망의 바다에서 유일하게 그것을 벗어난 ‘노아의 방주’를 창조한다. 그 방주 바깥은 나치의 만행으로 위험과 불안이 상존했지만 방주 안은 “놀이, 동물, 경탄, 호기심, 경이, 천진무구한 동심”이 존재했다. 죽음을 피해온 사람들과 사향쥐, 수탉, 산토끼, 개, 독수리, 햄스터, 고양이, 새끼여우 같은 천진난만한 생명들이 동거하며 자기들만의 작은 낙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 되기의 어려움은 언제나 절망과 고통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홀로코스트 속에서 피어난 감동적인 실화를 담은 이 논픽션은 한 동물원 사육사 부부의 특별한 체험을 통해 우리에게 사람은 어떻게 서로를 절멸에 이르게 할 수 있고, 거꾸로 어떻게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신동아 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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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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