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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주년 大특집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압축적 성장사회에서 질 높은 성숙사회로’

  •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 jyyee@snu.ac.kr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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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국 60년은 고통과 영광, 절망과 희망, 좌절과 성취가 뒤섞이면서 압축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그 결과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불행하다고 말한다. 속도에 집착하다 보니 ‘안전’보다 ‘모험’, ‘내실’보다 ‘외형’, ‘과정’보다 ‘결과’, ‘투자’보다 ‘비용절약’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사회 품격 유지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성숙사회란 성장 못지않게 배분과 배려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다.

정부 수립 60년, 이는 한반도에 전통적인 왕조가 아닌 자주적인 근대국가가 수립, 유지된 기간이다. 세계사의 60년은 짧을 수 있지만 한국사의 최근 60년은 남들이 수백년 걸려 만든 변화를 압축해서 겹겹의 지층으로 쌓아올린 왕성한 충적기(沖積期)에 해당한다. 이 기간에 한국사회는 고통과 영광, 절망과 희망, 좌절과 성취의 국면을 모두 담은 놀라운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변화의 궤적을 복기하는 것은 향후 발전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가장 밑바닥에는 식민지의 경험이 해체하다 만 전통시대의 흔적들이, 그 위로는 정부 수립 후 국가 형성이 채 마무리되기 전에 전쟁이 할퀴고 간 깊은 상흔의 골짜기가 자리 잡았다. 제1공화국은 신생국가로서 제대로 뿌리내리는 데도 벅찬 환경 속에 놓였던 위태로운 시기였다. 험난한 국제정세와 6·25전쟁 속에서 신생국가의 독립성을 지켜낸 것만으로도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위대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국가경영의 토대를 신속하게 갖추는 데 실패했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독재화한 것은 한계였다.

본격적인 산업화 이전에 과잉 팽창한 고등교육은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했지만 민주주의에 대해 예기사회화(무엇을 사회화해야 하는 것인지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된 세대를 대거 배출했다. 그 결과 4·19혁명과 이상적인 내각책임제 개헌을 가져왔으며,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토대가 된, 잘 훈련된 인적자원을 배출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감당할 부르주아를 형성하지 못한 나라에서 이루어진 빠른 민주화는 실질적인 주도세력을 만나지 못해 결국 군부 쿠데타로 귀결됐다.

그럼에도 군복을 입고 통치한 남미나 동남아의 군부정권과 달리, 박정희 정권은 형식적으로는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고 재선에 성공했다. 또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의 증대 등과 같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 후 유신체제의 성립을 통해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한 바 있고, 1980년 민주화의 열망이 전두환 정권의 철권통치로 좌절되면서 고도성장과 정치적 억압이 결합된 부조화의 시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점진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중도적인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의 연이은 등장을 보게 됐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평화적인 전환과정이었다.

가장 큰 성과 ‘산업화, 민주화’



지난 60년간 가장 주목할 성과는 산업화와 민주화다. 전쟁의 폐허 속에 신음하던,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짜리 신생 대한민국이 2만달러 선진국의 문턱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0년, 앞선 나라들은 건국 이후 수백년씩 걸린 먼 길이었다. 달랑 1억달러이던 수출액은 같은 기간에 무려 3000배 이상 폭증했다. 이런 초고속 질주의 결과 한국은 경제규모 11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고,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로는 177개국 중 26위의 개화문명국이 되었으며, 프리덤하우스에 의하면 5등급의 독재국가에서 1등급의 자유국가로 탈바꿈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데 국제사회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수혜자여야 할 국민의 70%는 한국이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불행해졌고, 걱정과 불안은 늘어났으며, 제도와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기대가 높아지면 실망도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 부실하게 흐른 탓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속도에 집착하다 보니 ‘안전’보다는 ‘모험’을, ‘내실’보다는 ‘외형’을, ‘과정’보다는 ‘결과’를,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는 당장의 ‘비용절약’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 재난으로, 기업의 줄도산을 가져온 외환위기로 나타나기도 했다. 비교적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기업재무구조가 건전해지고 외환보유고도 급속히 늘어났지만 후유증은 깊이 남았다. 양극화가 심해졌고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기는 사람은 대폭 줄었으며 일자리 걱정은 오히려 늘어났다. 복지재정이나 국민연금 가입범위를 확대했음에도 고령사회의 문턱에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도리어 커졌다. 연이어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 깊어졌고, 투표율도 계속 떨어졌다.

수백만명이 광우병의 위험을 이유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정치권은 무능하기만 하다. 정책대결과 무관하게 스캔들을 둘러싼 세 싸움으로 선거를 치러왔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에도 불구하고 조기유학과 교육이민, 그리고 사교육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외국인 체류자 100만명 시대를 맞았고 농촌지역에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대거 안방을 차지했지만, 우리 제도와 마음의 빗장은 여전히 닫혀 있다. 입법, 행정,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위험 수준이고, 자살자의 숫자는 세계 최고에 달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문제가 쏟아지고 있다. 모두 ‘경제성장’이나 ‘민주화’ 처방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정부 수립 후 60년간 이뤄낸 성공은 한편으로 커다란 자부심의 원천이지만, 성공이 가져온 위기(peril of success)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공식 통계에는 이러한 무형의 자산손실을 가늠할 대차대조표조차 없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정보화와 세계화는 복합적 사고와 창의성을 요구하는 또 다른 도전이 되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문제인식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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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 jyy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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