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구역상 주소를 이야기하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외(外)나로도’라고 해야 “아, 우주센터가 있는 섬” 하며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외나로도를 관할하는 행정조직이 봉래면이다. 이 섬에는 신금·외초·예내·사양의 4개 리(里)가 있는데,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예내리는 세(勢)가 약한 편에 속한다. 우주센터는 예내리에서도 한갓진 남쪽 끝 바닷가에 면해 있다.
우주센터 뒤에 해발 410m의 봉래산이 치솟아 있어, 우주센터는 산자락 끝에 걸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해발 410m라지만 바다에 면한 곳에 솟아 있어 매우 높은 편이다. 말이 바닷가이지 산골과 다를 바 없는 이곳에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든 것은 KSLV-1을 발사하는 ‘우주쇼’를 보기 위해서다.

고흥 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 설치된 실물 크기의 KSLV-1 모형. 좌우에 있는 것은 항우연이 과거에 개발한 KSR로켓 시리즈다.
사람 운수를 따질 때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서른아홉, 마흔아홉, 쉰아홉 등 아홉으로 끝나는 나이에 결혼이나 이사를 하면 불운을 만날 수 있다는 속설에서 나온 말이다. 세계 우주개발사업이 이 아홉수에 걸려 있다. 현재 우주발사체를 제작해 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 인도 이스라엘 여덟 나라뿐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우주선을 발사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발사체는 구소련이 개발한 것이라 우크라이나는 자력으로 발사체를 개발해 발사에 성공한 나라로 꼽지 않는다. 세계 아홉 번째로 위성발사에 도전했던 나라는 브라질이다. 그런데 아홉수 탓인지 브라질이 시도한 세 번의 발사는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브라질의 실패는 맨 뒤에 있는 상자 기사 참조).
그로 인해 브라질은 세계 9위를 차지할 기회를 대한민국에 넘기게 됐다. 한국으로서는 한 자리 순위에 들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KSLV-1 발사를 성공시킬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처음 개발하는 발사체의 성공 확률은 50% 내외이기 때문이다. KSLV-1이 ‘세계적인 망령’이 된 아홉수를 돌파할 것인지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외나로도(봉래면)와 내나로도(동일면)는 말할 것도 없고, 포두면에도 이렇다 할 숙박시설이 없다. 숙소로 삼을 만한 곳은 고흥읍이나 여수시로 나가야 있다. 영향력이 있다는 사람들은 고흥읍과 여수시에서 기다리다가 “오늘 발사한다”는 연락이 오자 부리나케 이곳으로 달려왔다. 비중 있는 요인들은 광주나 서울, 그리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원장 백홍열)이 있는 대전에서 기다리다가 자동차나 헬기 편으로 내려왔다.
지난 1년 이상 고흥군과 전남도 등은 이 날을 대비해 도로를 넓히는 공사를 해왔다. 그러나 땅 위의 도로는 넓힐 수 있어도 십수년 전에 건설된 왕복 2차로의 나로1교와 나로2교는 확장할 수 없었다. 따라서 두 다리에서 심각한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을 염두엔 둔 극성팬들은 일찌감치 외나로도에 들어와 민박을 하거나 텐트를 치고 기다리며 발사 날짜를 기다렸다.
2008년 동지 무렵의 외나로도
그러나 우주 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역은 외나로도 건너편의 여수시 돌산도다. 돌산도를 필두로 여수반도 전체는 KSLV-1 발사 광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여수는 2012년 해양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된 데다 덤으로 우주쇼를 즐길 수 있는 명당으로 소문 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특수를 누렸다.
우주센터가 있는 고흥에서 쇼를 구경하려는 사람도 많다. 고흥군에서 우주쇼를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공지(空地)로는 고흥군 영남면 남열리에 있는 해수욕장이 꼽힌다. 고흥군은 이곳을 ‘고흥우주해양리조트특구’로 공고하고 KSLV-1 발사가 임박하면 이곳에 대규모 관람석을 만든다. 고흥(高興)은 ‘하늘로 인해 흥하는 곳’이라는 뜻이니 고흥군은 우주센터로 인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러나 진짜 꾼들은 외나로도로 들어가 우주쇼를 보고 싶어한다.
음력 동짓달의 겨울 해는, 특히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나왔다가 쏙 들어가는 자라목처럼 그야말로 ‘꼴깍’ 넘어가버린다. 그러곤 칠흑 같은 어둠이 덮쳐온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한다. 호들갑을 떨며 먼저 분위기를 잡기 시작한 것은 TV 방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