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사통제동 옥상에서 바라본 발사대와 조립동(아래 건물). 발사대는 발사통제동에서 직선으로 1.8km 떨어져 있다.
우주센터 안에서도 KSLV-1의 발사 광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한 TV 중계팀은 대낮보다 밝은 불빛을 받고 우뚝 서 있는 KSLV-1을 화면 가득 비추면서 치열했던 한국의 우주개발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방송사 중계팀이 포진한 곳은 KSLV-1 근처가 아니다. KSLV-1이 세워진 발사대로부터 1.8㎞나 떨어진 발사통제동의 옥상이다.
연말을 앞두고 뭔가 큰 이벤트가 벌어졌으면 하는 시기에, 더구나 해가 져서 폭죽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대감이 넘치는 시각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한국의 첫 번째 우주발사체 KSLV-1을 발사하는 것은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KSLV-1을 발사하기 위해 준비해온 작업이 이때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일몰 무렵을 발사 시간으로 삼은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KSLV-1은 한반도 남쪽을 향해 수직으로 날아간다. 발사 후 540초가 지나면 KSLV-1은 호주 부근에서 2단까지 떨어뜨리고 고도 306km까지 올라간다. 이곳은 공기가 없으니 마찰도 거의 없다. 그리고 위성을 보호하기 위해 탑재부에 설치한 페어링(fairing)을 떼어내 위성을 분사시킨다. 1단과 2단 로켓이 실어준 힘 덕분에 위성은 점점 더 고도를 높이다 발사 40여 분이 지나면 남극을 넘어 지구 반대편에서 돌아야 할 궤도에 진입한다.

저녁 7시를 넘겨 KSLV-1을 발사해도 위성은 햇빛이 쏟아지는 한반도 반대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위성이 펼치는 태양전지판은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등진 형태가 되므로 에너지를 많이 발생시키지 못한다. 물론 위성에는 배터리가 장착돼 있어 태양전지판이 가동하지 않아도 위성을 가동시킬 수 있다. 하지만 배터리의 조기 작동은 위성 수명을 감소시킨다.
그래서 2008년 12월 말의 KSLV-1 발사는 하늘 문이 열리는 일몰 직후에 이뤄지는 것이다. 덕분에 방송사 중계팀과 국민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우주쇼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날은 바람 한 점 없어 불꽃이 더욱 잘 보일 수밖에 없다.
ICBM 만들던 흐루니체프 사
방송사 중계팀이 옥상을 차지한 발사통제동에는 나로우주센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발사관제소(LCC)’와 ‘발사지휘소(MDC)’가 있다. 우주발사체 발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최초 추력을 내는 1단 로켓엔진을 점화시켜 제대로 날아가게 하는 것이다. KSLV-1의 1단은 러시아 흐루니체프(Khrunichev) 사가 제작한 ‘앙가라(Angara)’ 로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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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발사체는 ICBM으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흐루니체프 사가 우주발사체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전략무기 감축협정 START-2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흐루니체프 사는 ‘23호 공장(OKB-23)’으로 불리며 폭격기를 생산했다. 1951년 소련은 23호 공장에 대형 폭격기를 개발하는 설계1국’을 만들었다.

KSLV-1 발사와 관제를 하는 발사통제동의 발사관제소. 이곳에서는 러시아 흐루니체프 사 기술진이 주도권을 잡고 포진해 KSLV-1 발사를 최종 결정한다. 이들 옆에는 동수의 항우연 연구진이 앉는다.
이러한 여론에 직면한 미·소는 1970년대 두 나라가 생산하는 ICBM을 제한하자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맺었다. 이로써 두 나라가 보유할 수 있는 ICBM에 한계가 지어졌는데, 이러한 제한은 23호 공장의 풀가동을 막는 브레이크 기능을 했다. 그러나 이때의 브레이크는 그 후 요동치는 역사가 건 제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SALT 협정을 통해 상대도 핵전쟁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파악한 미·소 양국은 1982년부터 핵무기를 줄이는 새로운 협상에 들어가 1991년 START-1으로 약칭된 전략무기감축협정을 맺었다. SALT는 ICBM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생산을 제한하자는 것이었으나 START는 이미 실전 배치된 핵무기를 폐기해 일정 숫자 이하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합의 직후 소련이 붕괴했다. 88 서울올림픽이 있은 후 헝가리를 필두로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동유럽의 공산 정권이 줄줄이 무너지더니 START-1 협정 서명이 있은 직후인 1991년 말 소련도 무너졌다. 그리고 구소련 영토에서 러시아와 발트3국, CIS의 12개 나라가 독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역사가 요동치자 전략물자를 생산하던 구소련의 공장이 일제히 멈춰 섰다. 23호 공장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