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겔라 메르켈이 2005년 11월 총리에 취임할 때만 해도 ‘과연 얼마나 갈까’ 회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10년 중환자 독일 경제를 되살려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가 그 증거다. 실업률은 취임 1년 전만 해도 12%에 달했지만 이듬해 10.8%로 낮아진 데 이어 지난해에는 9%대로 떨어졌다. 성장률이 1%만 넘어도 호황이라는 독일에서 2006년 성장률 2.7%를 기록했다. 세수(稅收)는 2005년 4521억유로에서 2007년 5141억유로로 늘었다.
수출은 2006년 1조1123억달러로 미국(1조373억달러)을 제치고 2005년에 이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인구수가 미국의 3분의 1도 안 되는 나라가 세계 최고의 수출대국이 된 것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독일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메르켈을 처음에는 ‘동독 출신의 촌닭’이라며 우습게 여기던 독일 국민들이 지금은 단단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국민을 잘살게 해주는 사람이 곧 좋은 지도자’란 만고불변의 진리가 이 나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성공비법
앙겔라 메르켈 성공비법은 다름아닌 시장친화 정책이다. 그 근간은 친기업 정책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다. 메르켈은 진정한 사회보장은 세금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자리 확대’에 있다고 믿는다. 고용 없는 복지 확대는 오히려 더 심한 빈곤과 경기침체를 불러온다고 생각하고, 품질 좋은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 제품을 만들어 전세계 소비자에게 팔 때 독일 경제가 부활한다고 믿는다. 해법은 간단하다. 첨단제품, 첨단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해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가 우선 노동분야 개혁에 손을 댔던 것도 그 때문이다. 독일 기업의 최대 단점은 노조가 강하다는 것이었다. 주식을 배분받은 노조는 안정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며 기득권으로 ‘가늘고 길게 살기’를 원했다. 이들이 고용 창출의 걸림돌이 된 건 물론이다. 실업률은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메르켈은 노조의 경영 참여를 축소하고 신규 채용자를 해고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에서 2년으로 늘리는 등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 애썼다. 법인세율도 39%에서 29.8%로 낮췄다. 근본적인 해결은 아직 안 됐다는 지적이지만 어쨌든 철옹성 노조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메르켈을 영국의 ‘대처’에 빗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메르켈은 2000년 11월18일자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에 기고한 글에서 “독일의 노사관계는 세계화된 현재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사회보장을 실시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불필요한 분야에 세금이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 에너지 통신 분야의 과감한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
그는 철저한 친미(親美)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며 반미 정서를 독일 국민에게 확산시킨 슈뢰더 전 총리와는 딴판이다. 슈뢰더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거부한 유럽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메르켈은 슈뢰더가 유럽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막아 오히려 유럽의 대미 영향력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2003년 2월 메르켈은 미국을 방문하는데, 방미 며칠 전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슈뢰더가 독일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슈뢰더 총리가 이라크 문제에 있어 독일의 이익만 내세워 우호적이던 독미(獨美) 관계를 해치는 유별난 길을 걷고 있다”며 대놓고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