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이 특정 종교 지도자와 함께 포스터에 등장해 모금운동에 얼굴을 빌려준 것은 선교활동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어요. 거기에다 종단의 수장까지 과잉 검색하면서 일이 커졌지요. 불교계에서 어청수 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화제는 어청수 청장 거취를 둘러싼 얘기에서 자연스레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계기로 불붙었던 촛불집회로 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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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주부와 청소년들이 협상을 잘못한 정부 실책을 지적하며 건강권과 검역권을 지키기 위해 촛불문화제를 연 것은 옳은 일”이라고 했다. 다만 “평화롭게 이뤄지던 촛불문화제가 나중에 과격 양상을 띤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과격시위자, 정당하게 법 집행해야”
“경찰의 진압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습니다. 평화롭게 진행되던 촛불집회가 나중에 일부 과격한 사람들이 편승하면서 연일 거리를 점령하고 진압 경찰을 폭력으로 공격하는 사태로까지 번져 국법질서 문란과 국정 마비에 대한 우려를 낳았거든요. 경찰이 과잉 단속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하게 법을 집행했다는 평가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어느 쪽이 옳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촛불시위 관련 수배자 해제나 구속자 석방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과격 시위자에 대해서는 준법질서 확립을 위해 정당하게 법집행을 해야 합니다. 법 준수 없이는 국가나 사회가 제대로 유지될 수 없어요. 정부를 상대로 한 청원도 절차를 밟아서 해야지, 물리적인 힘으로 해서는 안 되지요.”
▼ 촛불집회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을 이끌어낸 점은 성과 아닌가요.
“국민 건강권과 검역권을 지키자고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 아니에요. 대통령 사과와 추가협상을 이끌어내는 것까지 (촛불집회를) 하고 멈췄어야 합니다.”
▼ 조계사에는 여전히 촛불집회 관련 수배자들이 머물고 있는데요.

이명박 대통령은 9월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종교 편향 논란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했다.
촛불집회 얘기로 잠시 샛길로 빠졌던 인터뷰는 다시 정부와 불교계 갈등 문제로 돌아왔다.
▼ 종교와 관련한 공직자들의 무분별한 언행이 지금의 갈등을 촉발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공직자는 신앙인과 공직자로서의 지위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일반 신도와 공직자로서의 언행은 달라야지요. 우리 헌법은 정교(政敎)분리를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신앙공동체에 참여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일부 공직자들이) 무분별하게 언행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결과가 초래된 것입니다.”
공직자의 언행을 강조하면서 월주 스님은 “대통령직보다 장로가 더 소중하다”는 표현을 예로 들며 “그런 표현은 (대통령이) 특정 종교에 치우쳤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9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기독인회 조찬기도회에서 “교회 장로로서 정치하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직은 잠시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어쩌면 대통령직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일이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민과 민족을 위해 대통령 직분에 걸맞게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곧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요, 자비를 실천하는 길입니다. 신앙은 유지하되 국정 운영에서는 개인이나 당파, 종파를 넘어 중립적인 태도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할 때에야 비로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월주 스님은 “공직자들이 종교 편향의 유혹을 이겨내도록 하는 힘이 대통령의 중립적인 태도와 의지에 달려 있다”면서 “누구보다 대통령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군 복무 시절 사격을 할 때 ‘영점 조정’을 하던 일이 떠올랐다. 시범 사격에서 탄환이 표적을 많이 벗어나 있을 경우 가늠쇠를 한두 번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어찌 보면 대통령은 공직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가늠쇠일지 모른다. 대통령의 종교관(觀)에 조금이라도 편향된 시각이 있다면, 즉 장로에서 대통령으로 영점 조정이 제대로 안 돼 있다면 대통령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공직자들이 ‘그릇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에서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종교 편향 언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영점 조정’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그릇된 판단을 한 공직자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도 공직사회에 퍼져 있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9월9일 불교계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경찰청장에게 사과할 것을 지시했다. 대통령이 취한 조치에 대해 불교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종교문제에 관한 한 아무리 큰 파장을 일으켰더라도 끝내 내치지는 않는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공직사회에 보낸 것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