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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2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

아이스크림

  • 윤혜영

아이스크림

2/10
하이힐 소리

“당신 시장할 텐데 나가서 식사를 하고 오는 게 어떻겠소?”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초췌한 얼굴을 보며 벽시계를 보니 벌써 10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나야 이것저것 주워 먹어서 크게 시장기를 느끼지 못했으나 하루 종일 일하고 온 남편은 피곤하고 배가 고픈 것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내 친정어머니 곁에 앉아 있느라고 남편 저녁까지 굶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언제까지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다.

“너희들 저녁은 먹었니?”

나는 남편의 말에 답하는 대신 동생에게 물었다.



“아니,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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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또 올케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럼 매형이랑 가서 먹고 와. 나는 좀 먹었어.”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으니 같이 가서 먹읍시다. 밤샘할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남편이 동생하고만 가는 게 마음에 안 내키는지, 나만 놔두고 가서 먹고 싶지 않은지 내게 재촉했다. 나만 떼어놓고 가서 먹을 생각은 전혀 없는 기색이었다.

“그럴까.”

언제 숨을 거두실지 모르는 엄마 곁에 한없이 앉아 있는 것도, 또 그 곁을 잠시라도 비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2~3주 동안 식사다운 식사를 제대로 못한 처지여서인지 어느 맛있는 식당에 가서 잘 먹고 싶은 욕망도 뿌리치기 힘들었다.

엄마가 언제 마지막 숨을 내쉴지 모르는 판국에서도 입속에는 맛있는 음식을 향한 열망으로 침이 고였다. 먹는 일은 사람을 가장 치사하게 만든다던가. 단호하게 권하는 남편이 고맙기까지 한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깊은 잠이 드신 것인지 혼미 상태에 계신지 알 수 없는 평안한 얼굴로 조용한 호흡을 계속하고 계신 엄마를 살피며 말했다.

“엄마, 나 저녁 먹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혼자 가버리지 말고 쉬고 있어. 응? 어디 혼자 가면 안 돼. 알았지? 나도 배가 고프지만 종수랑 정 서방도 아직 저녁을 못 먹었어.”

아무 대답도 없으시지만 엄마도 우리가 배를 곯으면서 곁에 앉아 있는 것을 절대 원치 않으실 것이다. 담당 간호사에게 식사를 해야 하는데 한 시간만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는지 물으니 당연한 듯 “슈어” 하고 대답한다.

오빠 내외는 어디로 갔는지 복도에도 밖에도 보이지 않았다.

동생 내외와 우리 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메인 로비를 지나 주차장으로 나왔다. 발딱 일어나 제 남편 옆에 딱 붙어 걷는 올케의 따박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내 머릿속을 예리하게 찔러댔다.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나는 남편에게 인사말처럼 생각난 듯 물었다.

“아, 별일 없으셔. 저녁 잡숫는 것 보고 나왔으니까 지금은 잠드셨을 거야.”

“유노 인슐린도 잊지 않았지요?”

“응.”

집에는 시어머니와 딸 유노가 이미 깊은 잠에 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법을 어기고 있는 중이다. 이 두 사람만 집에 놔두고 우리 둘이 다 나와 있으면 안 된다. 우리 둘 중 하나가 이 두 사람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이 법이다.

30년 전, 결혼 후 남편과 미국으로 오던 다음해 한국에 혼자 남아 계시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게 되었다. 내가 남편과 만나 결혼을 결정할 때 시어머니를 우리가 평생 모시고 살아야 된다는 것은 당연 그 이상의 의무였다. 스물두 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달랑 하나 키운 아들이 내 남편이다.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우리를 미국으로 떠나보내던 해 어느 추운 겨울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다가 기적같이 살아나셨다. 그리고 거의 1년 이상 병원과 재활원을 오가며 끈질기게 삶의 줄을 놓지 않으셨다. 부축을 안 받아도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고 화장실 출입도 제대로 하게 되었을 때 줄곧 한국을 오가며 어머니를 보살피던 남편이 모시고 들어왔다.

시어머니는 내가 한국을 떠날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의 훈육부장같이 무섭고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주눅 든 어린애같이 얼이 빠져서 아들인 남편 옆을 잠시도 떠나지 않으려 했다. 몇 달 동안 헤매던 사경에서 소생하실 때 같이 소생하지 못한 두뇌의 어떤 부분이 시어머니를 멍청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결혼 초 나를 노상 긴장하게 만들던, 명석한 변호사 못지않던 언변은 어눌해졌고, 예리한 눈빛은 흐리멍텅해졌다. 또한 냄새나 음식 맛을 못 느껴 차려주는 밥상의 음식을 쓴지 단지 모르고 그냥 씹어 삼키기만 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라는 네 가지 감정인 희로애락 가운데 애락은 사라지고 단지 희로의 표현만이 기복 심하게 오르내렸다.

하지만 소아당뇨에 장애자인 유노를 위해서는 무조건의 사랑으로 감쌌다. 왜 유노에게 그 좋아하는 단것들을 못 주게 하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시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엔 크고 작은 분란이 일기도 했지만 그것이 유노에게 얼마나 나쁜 것인지 파악한 듯 이제는 단것만 보면 유노에게 안 돼, 안 돼 하며 주의를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주부인 내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장애자인 딸을 돌보며 사는 평화로운 집인 것이다.

온전하지 못한 노인으로 타운에 등록되어 있는 시어머니로서는 ‘다운 신드롬 장애자’인 손녀를 법적으로 보호해줄 수가 없었다. 만약 두 사람만 집에 있을 때 타운의 감독관이 알게 된다면 즉시 담당관의 관할 아래 분리조치 당하고 보호자인 나와 남편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여기 법이다.

아주 오래전 유노를 시어머니에게 잠깐 맡기고 시장에 간 사이, 유노가 혼자 밖에 나갔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이웃집에서 보고 경찰에 신고한 일이 있다. 시어머니가 유노의 외출을 알아차리고 온힘을 다해 붙잡았더라도 유노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타운재판소에 몇 번이나 불려 다니면서 시어머니도 장애자로 분류돼 경고처분을 받았다.

다시 어머니와 유노만 집에 두고 나갔다가 적발되면 나는 아마 수갑을 차고 감옥에 가야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친정엄마의 임종을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 나는 어느 우주에 살고 있는 사람일까.

조금 떨어진 뒤에서 아스팔트를 울리는, 올케의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내 두뇌 속의 신경을 몹시도 자극했다. 나는 엎드려 풀어진 운동화 끈을 다시 맸다. 30년간 미국에 살면서 달리기 선수처럼 운동화만 신고 살아온 세월. 오래전에 나도 또각거리는 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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