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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ㅣ글로벌 경제위기와 한국

전문가 대담-미국식 자본주의의 진로

유종일 “고삐풀린 탐욕이 부른 파국” VS 공병호 “시장실패 교정 중, 솔루션 찾을 것”

전문가 대담-미국식 자본주의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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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미국의 주주자본주의, 자유시장주의라고 하는 게 이상대로만 움직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이 붕괴될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걸 보고 “뉴이코노미다” “미국경제 최고”라고 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을 보고 “야, 정말 미쳤다. 경제학의 정통이론을 다 부정하면서 무슨 뉴이코노미냐, 엉터리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붕괴했잖아요. 엔론-월드컴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엄청난 분식회계와 회계부정이 만연한 기업범죄 사건이었죠. 개인적 책임이 강조된 체제라면 그런 도덕적 해이는 없어야죠. 특권층이 가장 부패했더라고요. 회계법인과 컨설팅회사, 기업 CEO, 사외이사가 모두 짜고 서로 봐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CEO들은 천문학적인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한번 개혁됐는데 지금도 도덕적 해이는 여전합니다. 이번에 문을 닫은 워싱턴뮤추얼의 CEO는 18일 동안 근무하고 우리 돈으로 162억원을 챙겼습니다. 연방정부로부터 850억달러를 받은 AIG는 그 상황에서 회사 간부들이 플로리다로 놀러가 몇백만달러를 썼죠. 미국식 자본주의는 소위 주주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모럴 해저드를 용인하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회사 가치를 올린다며 노동자를 마음대로 자른 후에 기업을 팔아 일시적으로 주가 올리고, 그러곤 그걸로 잔치하고. 그게 미국식 시스템입니다. 제가 미국 경제의 건강한 면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면이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유럽 시스템에 비해 일자리도 많이 만들고 창조적 파괴, 혁신도 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뭐냐는 겁니다. 초대형 부자는 많이 만들어냈지만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소득은 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부의 편중이 심각합니다. 미국의 1인당 소득이 유럽보다 높지만 거꾸로 유럽은 미국 사람들보다 휴가가 굉장히 깁니다. 노동시간이 짧다는 거죠.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조금 덜 받아도 직장만 안정된다면 그쪽을 선택하는 게 옳다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역동성을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일각에서 ‘미국식 자본주의가 몰락했다, 몰락할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요. 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식 경제시스템 내에서 특히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몇 가지 요소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진 경제모델 차원의 이야기이고요. 또 다른 의미에선 미국이 행사하던 세계 경제에 대한 주도적 리더십, 이른바 헤게모니 자체가 기울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전문가 대담-미국식 자본주의의 진로

<b>공병호</b> <br>공병호경영연구소장, <br> 미국 라이스대 경제학 박사, <br>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 실장, <br> 자유기업원 원장

미국식과 유럽식



공병호 :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지만 미국 자본주의 체제도 단점은 있어요. 예를 들면 지나치게 높은 의료비를 치르는데도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마 일본 CEO는 기업이 파산한 상태라면 할복했을 겁니다. 미국의 톱 클래스들 중에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상실한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자본주의체제가 원래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문제는 미국이 제도상으로 탐욕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장치가 미비돼 있다는 점입니다. 또 1970년대 이후의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 중산층의 임금수준이 내려가면서 상위층에 엄청난 부가 편재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앞으로 유럽과 한국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중간한 노동계층들은 실질임금이 점차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실은 세계화 때문이지요.

말씀하신 휴가 부분은 사회적 선택입니다. 기본적으로 정치가 결정하는 부분이에요. 행복지수 측면에서 보면 삶의 질은 미국체제가 유럽체제보다 떨어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의 이기들은 대부분이 ‘메이드 인 USA’이죠. 이건 치열한 경쟁의 소산입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역동성은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많은 나라에 혜택을 줬습니다. 우리가 그 상품을 싸게 만들어서 팔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죠. 이런 면에서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현대문명의 성장이나 발전에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보는 거죠.

유종일 :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거시경제학적으로 냉정하게 보면, 시간당 생산성 면에서 미국이 유럽보다 우위에 있지 않습니다. 경제 시스템도 문제인데요. 저는 미국의 도덕적 타락이 세계 경제의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사례가 이라크전쟁인데요. 거짓말로 일으킨 전쟁이었죠. 이면에는 좀 전에도 말했지만, 특권층의 지나친 탐욕이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헤지펀드 매니저들, 돈을 얼마나 많이 법니까? 정치권에 로비해서 35% 소득세를 안 내고 자본이득세 15%만 내게 됐잖아요. 이는 어마어마한 특혜죠. 그들이 상속세조차 없애자고 했지 않습니까? 국제적, 국내적으로 미국 엘리트 계층의 도덕적 파탄은 미국 사회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큰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공병호 : 최근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비판한 진보 진영 문필가를 들자면,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가 있습니다. 라이시 교수의 ‘슈퍼 자본주의’라는 책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논지가, 미국 선거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돈이 소요되는 쪽으로 변해왔고, 그 과정에서 부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후원금을 통해 정치지형도를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또 크루그먼도 최근에 낸 책 ‘미래를 말한다’에서 상세한 자료를 가지고 그에 대한 논지를 폈는데요. 1920년대 상한선이 24%, 루스벨트 임기에 79%, 1950년대 중반 냉전 피크기에 91%까지 오른 미국의 소득세가 1980년대 이후에 탈규제, 작은 정부, 저세금 정책을 펴면서 35% 정도까지 내려왔고, 1979년 70%까지 올라간 상류층에 대한 소득세가 2006년 35%로, 또 자본이익에 대한 세금은 28%에서 15%로, 법인세 세율은 48%에서 35%로 떨어졌는데 이게 전부 정치가 결정했다는 것이지요. 결국 미국의 정치가 부자들에 의해 지나치게 포섭됐다는 부분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미 대선에서 ‘Change’라는 구호가 먹혀 드는 것도 공화당 정권에서는 이런 큰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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