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 엘렌 H.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 이른아침/716쪽/2만5000원
달러(dollar). 쉽게 말하면 미국 돈(화폐)이다. 그런데 달러는 미국 화폐만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사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다. 그래서 우리 돈인 원화와 같은 화폐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세계경제는 끄떡도 하지 않지만 달러에 문제가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련의 어려움은 바로 이런 달러의 기능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달러가 ‘사기’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믿겠는가.
‘사악한 화폐의 탄생과 금융 몰락의 진실’이란 부제를 단 ‘달러’(원제: THE WEB OF DEBT)는 이런 사실을 폭로하면서 지금 전세계를 거대한 빚더미에 빠뜨린 ‘속임수의 거미줄’을 추적하고 국가(세계)를 다시 건전하게 만들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달러의 ‘사기’ 발행에 대한 설명부터 하는 것이 순서이리라. 그러잖아도 이 달러 때문에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는데, 궁금증을 잔뜩 부풀린 이 리뷰가 그 궁금증을 빨리 해소시키지 않는다면 들고 있던 잡지를 집어던지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다.
달러의 태생적 한계
원화를 한국은행에서 찍어내듯 달러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RB)에서 찍어낸다. 한국은행은 우리가 알고 있듯 국책은행으로서 국가기관이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면 우리는 정부가 돈을 찍어낸 것으로 안다. 그런데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무늬만 연방정부기구일 뿐 실체는 모건(Morgan)과 록펠러(Rockfeller)의 금융 토대인 시티뱅크와 J. P 모건체이스사(社) 같은 민간은행이 양대 주주로 있는 민간법인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연방기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방준비은행이 달러를 찍어내면 미국 정부가 달러를 찍어낸 것으로 안다. 왜일까?
사정인즉 이렇다. 연방준비은행은 40센트의 인쇄비를 들여 100달러를 인쇄하고, 여기에 10달러의 이자를 붙여 연방정부에 대출한다. 민간은행이 정부에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하다. 이자를 안 받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데 미국 연방정부는 달러가 필요할 때 한국은행처럼 발권 기능을 통해 달러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연방준비은행에서 이자를 주고 빌릴 수밖에 없다. 이 돈은 정부가 대출(부채)을 받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며, 대출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이런 시스템은 미국의 민간 은행은 물론 전세계의 모든 은행이 그대로 따라 한다. 있던 돈을 대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부채가 늘면 당연히 시장의 돈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은행 돈을 빌릴 때도 똑같은 방식이 적용된다. 은행이 가지고 있던 돈을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대출이 없던 돈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물론 예금자 보호를 위해 지급준비금제도라는 안전판이 있지 않으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지급준비금이란 게 대체로 전체 예금의 10%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래서 10%의 준비금만 있으면 그 10배의 돈을 대출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10달러의 준비금으로 100달러의 부채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 가운데 90달러는 대출이 일어나기 전에는 없던 돈이며 대출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진 돈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엄청난 돈, 즉 대출(부채)을 만들어내고, 그 부채는 누군가의 몫이다. 이렇게 달러는 여러 가지 속임수로 만들어진 ‘빚의 거미줄(The Web of Debt)’로 세계 금융시장을 삽시간에 포획한다.
이 책의 주장에서 또 하나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럼 연방준비은행은 뭘 믿고 연방정부에 돈을 빌려줄까 하는 점이다. 돈을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인 담보물이 없으면, 빌리는 자가 누구라도 떼일 것이 분명하다면 빌려주지 않는 것이 금융자본의 본색이다. 그럼 미국 정부는 연방준비은행에 무얼 담보로 내놓을까. 바로 국민의 세금이다. 그런데 그 세금이라는 것이 현재 걷힌 세금이 아니라 - 걷힌 세금은 이미 담보물로 잡혀 있으므로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 앞으로 걷힐 세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세금까지 포함한 것이다.
이런 아비 없는 자식처럼 태어나는 달러의 속내가 이러하니 사악하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