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세계 언론 농락한 북한의 ‘사진 정치’

사진 속 김정일 영화촬영용 특수조명으로 병색 숨겼다

  • 변영욱│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

    입력2009-03-10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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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뽀송뽀송한 피부는 지난해 말부터 사용한 특수조명 덕분
    • 얼굴색 감추고자 야외촬영 때도 대형조명 사용
    • 다큐멘터리 형식의 동영상 공개 임박한 듯
    애처로운 행위자’ 북한이 승부수를 던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월23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함께 사진을 찍음으로써 건재함을 외부세계에 알렸다. 지난해 8월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졌다는 와병설이 처음 제기된 이후 첫 번째 공식 외빈 면담. 북한은 와병설 이후 간헐적으로 김 위원장의 동정 사진을 공개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사진을 살펴온 외부 관찰자들은 동영상을 공개하거나 외국 손님과의 면담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그의 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외부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북한이 두 장의 카드 중 한 장을 내민 것이다. 나머지 한 장의 카드도 곧 꺼내들 것 같다.

    왕자루이를 면담하는 사진 속 김 위원장은 혈색이 밝은데다 머리엔 수술 흔적이 없다. 손으로 서류를 주고받는 모습도 보인다. 사진조작설이나 대역설은 더 이상 거론하기 어렵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 정보기관이 김 위원장의 와병설 초기에 증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날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중병을 앓은 것은 아닐지라도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왕자루이를 실내에서 만남으로써 김 위원장은 여태껏 입던 사진 속의 두터운 외투와 장갑을 벗었다. 오른쪽 손에 비해 좀 부어있는 왼쪽 손과 홀쭉해진 복부, 항상 신던 키높이 구두 대신 신은 낮은 신발은 지난해 10월 이전 사진 속 김 위원장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기자는 2004년부터 북한 ‘노동신문’을 연구했다. 북한 언론학 교과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을 ‘영상사진’이라고 기술한다. 그러나 복수의 탈북자와 북한 사진기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1호 사진’이라고 부른다.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도로를 ‘1호 도로’, 전용 열차를 ‘1호 열차’, 관련 행사를 ‘1호 행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프로파간다의 도구

    건강이상설 이후 북한은 설(說)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사진을 통해 증명하려 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의 건강과 권력이 정상 상태임을 강변한다. 북한은 사진을 하나 공개하고 외국 언론이 문제점을 지적하면 거기에 답변하듯 또 다른 사진을 공개하면서 외부 세계의 문제 제기에 대응해왔다. 이러한 활동은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는 북한의 선전선동 담당자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언론매체에서 김 위원장의 얼굴이 사라진 것은 지난해 8월15일 ‘노동신문’이 군부대 시찰사진을 보도한 다음날부터다. 그로부터 57일 만인 10월11일 ‘노동신문’ 1면에 김 위원장의 얼굴이 다시 등장했다. 이 사진은 내부 단속용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 최고 지도자가 장기간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것에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북한 내부에 대한 정보 제공용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독자와 인민 처지에서 보면 이 사진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평범한 사진이었다. 전체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큰 크기로 실린 두 장의 사진은 기존의 사진과 큰 차이가 없다. 김 위원장의 사진은 촬영 시점을 명기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두 달 정도 지난 사진을 신문에 게재했더라도 특별히 조작했거나 독자를 속였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사진은 ‘노동신문’ 1면에 흑백으로 실렸으므로 북한 독자들이 촬영시점을 추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해상도 높은 컬러 사진을 본 한국 및 외국 언론들은 촬영 시점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10월 한반도의 날씨에 비해 숲과 풀의 색깔이 지나치게 초록빛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자 11월2일 북한 언론은 김 위원장이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김 위원장이 북한군 ‘만경봉팀’과 ‘제비팀’의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하면서 10여 장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 중 김 위원장의 얼굴이 등장하는 사진은 3컷. 이 사진들의 특징은 배경에 가을 단풍이 잘 보인다는 점이다. ‘2008년 가을 여전히 살아있는 김 위원장’을 증명하는 사진인 것이다. 한국 정부는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의 11월3일 브리핑을 통해 “북한 당국에서 발표한 ‘1호 사진’에 대해 제가 합성여부를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국가가 공식매체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진은 그대로 믿어주는 것이 관례”라고 밝혔다.

    “왼팔도 멀쩡하다”

    이날 북한이 공개한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자연스러운 사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았다’. 첫 번째 사진은 구도에서 북한답지 않았고, 두 번째 사진은 내용 면에서 자연스럽지 않았다.

    첫 번째 사진(김 위원장이 의자에 앉아서 웃고 있는 사진)에서는 나머지 등장인물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1호 사진’에 누가 등장하는가는 북한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 만들기에 동참한 사람의 면면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관례다. 북한 신문에 기념사진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기념사진은 좁은 지면에서 가장 많은 얼굴을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등장인물이 검게 표현되는 사진은 아주 특이한 경우다. 이것은 김 위원장이 앉아있는 건물 밖의 가을 단풍을 보여주고자 카메라의 플래시를 강하게 터뜨렸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카메라와 가까운 부분에 있는 김 위원장의 얼굴은 뚜렷한 반면 뒤의 인물들에는 빛이 도달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얼굴이 화면 정가운데 위치하지 않은 것도 관례에 비추어 볼 때 배경을 살리기 위한 파격적인 사진 편집이다.

    두 번째 사진(관계자들에게 훈시하는 사진)의 경우, 등장인물의 손에 수첩이 들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진에 비해 파격적이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를 하는 사진을 보면, 등장인물의 손에는 수첩과 필기구가 들려 있다. 한마디 한마디가 역사인 김 위원장의 담화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11월2일 사진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빈손이다. 김 위원장의 손이 주머니 속에 완전히 들어가지도, 뒷짐을 지지도 않은 점도 특이하다. 포토숍 프로그램을 이용한 조작사진이 아니더라도 외부세계를 염두에 둔 연출사진이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일상적인 현지지도 형태가 아니라 사진 촬영을 위해 상황을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은 중병설을 제기한 외부 세계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 ‘2008년 가을 김 위원장은 건재하다’는 걸 외부에 알린 것이다. 두 장의 사진에서 북한은 김 위원장의 오른쪽 뺨과 왼쪽 뺨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일각에서 제기한 뇌수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이 사진들에 대해 서울의 언론들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김 위원장의 왼팔을 지적하며 ‘팔에 마비가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북한은 11월5일 ‘왼팔도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손뼉 치는 사진을 조선중앙방송 TV 화면을 통해 공개했다.

    사진 조작은 없다

    김정일 사진은 2008년 11월5일 분기점을 맞는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이 유력해 보이던 이날 오전 8시경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대 두 곳의 장병들과 찍은 단체사진 두 장을 공개했다. 건강이상설 이후 처음으로 나온 단체사진이며, 등장인물은 각각 190명과 124명이다. 축구경기 관람 사진에 이어 3일 만이었다. 이 사진은 곧바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로 전송됐다. 이날 공개한 두 장의 군부대 시찰 기념사진은 기존의 ‘1호 사진’과 똑같은 형식이다. 김 위원장은 다수의 군인 가운데 서 있으며 연단 뒤편에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기존의 사진과 다른 점은 사진의 사이즈가 크다는 것이다. 각각 2513KB와 1986KB. 그동안 조선중앙통신이 전송한 ‘1호 사진’은 200~400 KB크기의 JPEG 형식 파일이었으며 1000KB가 넘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는 포토숍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저장하면서 압축 정도를 낮춰, 사진을 확대해도 해상도가 변하지 않게 했다는 뜻이다. ‘조작인지 아닌지 크게 확대해서 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점부터 나오는 사진들은 전형적인 북한의 ‘1호 사진’이다. 북한 사진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사진 조작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북한이 선전선동을 위해 사진조작을 일삼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북한은 1945년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환영 군중대회 사진에서 소련군 사령관들을 지움으로써 김일성이 처음부터 독자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였다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 1994년에는 백두산 천지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김일성에 비해 김정일의 키가 작은데도 비슷한 크기로 보이게 했다. 또 남로당의 총수 박헌영 등 숙청된 정치인들의 얼굴이 역사 자료 속에서 지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과거의 일일 뿐이며 아주 지엽적인 사례다) 현대의 북한 신문과 통신은 정치인의 얼굴과 관련해 조작 사진을 싣지 않는다. 북한은 사진 조작을 하는 대신에 상황을 연출하는 방법을 사용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만든다.

    둘째, 지면을 독점한다. 1967년 이후 신문 1면에 등장하는 정치인은 김일성-김정일 부자 이외는 없다. 아주 예외적으로 2003년 2월23일 ‘노동신문 1면’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의 전신사진이 지면의 좌측하단에 세로 10cm 가로 6cm 크기로 실렸을 뿐이다. 1966년까지 북한 ‘노동신문’ 1면에는 김일성 이외 권력자들의 모습도 실렸다. 파워 블록(power block) 안에 제한적이나마 다원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북한 신문에 실리는 인물 사진 중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얼굴보다 큰 크기의 얼굴이 실리는 일도 없다. 김 위원장의 사진이 날마다 신문에 실리는 것은 아니고 월 평균 4회에서 6회 정도 게재되는데, 그때마다 해당 지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2001년 12월17일 ‘노동신문’에는 3개면에 걸쳐 9장의 김정일 사진이 실렸다. ‘노동신문’이 6면 발행 체제인 것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보도 행태다. 사진이 아닌 초상화가 실제 얼굴 크기로 1면을 차지하기도 한다. 신문에 실리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는 세로 길이 27~28cm의 크기다. 한국인의 얼굴 크기는 이마에서 턱 끝까지 평균 23.5cm. 초상화 아래 위 여백을 제외하면 실제 얼굴 크기의 80%에 달하는 크기의 초상화가 신문에 게재되는 것이다.

    모두가 연출한 사진

    셋째, 북한의 사진기자들은 김 위원장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클로즈업의 기준은 사진의 아래가 와이셔츠 3번째 단추 이상에서 찍었으냐, 더 밑으로 내려왔느냐다. 외부에서는 김 위원장의 혈색과 주름살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을 원하지만 북한 사진기자들은 그렇게 촬영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아온 김 위원장의 클로즈업 얼굴 사진은 모두 외국기자들이 찍었거나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서 얼굴만 확대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얼굴 사진만 작은 게 아니라 북한 신문에 나타나는 인물 사진 대부분에서 얼굴은 작게 표현된다. 이는 신문뿐 아니라 북한 영화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클로즈업은 북한의 영상 매체에서 드물게 나타난다. 이것은 김 위원장의 미학관과 밀접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부터 북한의 문화예술계에 영향을 끼친 김 위원장은 1973년 ‘영화예술론’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북한의 영화 전공자들은 이 책을 외워서 시험을 보아야 한다. 각 부문 촬영담당자들도 이 책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책에“촬영에서 특대사(빅 클로즈업), 대사(클로즈업) 화면들로 대상을 확대하기를 좋아하거나 인물들의 얼굴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보여주는 것은 다 형식주의적인 표현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영화를 전공한 30대 후반의 탈북자 C씨는 2006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교수 중 한 분께서 ‘특대사 많이 하는 연출가 중에서 성공한 사람 보았느냐’고 충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1967년 이전까지 북한 신문에 게재되는 인물 사진은 현재의 한국 신문 사진보다 훨씬 더 클로즈업된 형태였다. 북한 역사에서 1967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해 5월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은 당시 선전과 문화 분야를 담당하던 고위 간부들인 고혁, 김도만, 허석신 등을 유일사상에 위배되는 정책을 시행했다는 이유로 숙청했다. 이 일로 당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급격히 강해졌다. 많은 북한학 학자가 1967년을 김 위원장이 북한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시기로 본다. 또한 북한의 문학, 미술, 음악 등 거의 전 분야 예술 활동이 이 때를 기점으로 굴절을 겪는다. 북한에서 수령체제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북한은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수령의 영상을 화면에 모시는 촬영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넷째, ‘1호 사진’은 1967년 이후 비슷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이 현저하게 커지고 게재 빈도가 높아진 것도 이 시기부터다. 1946년 창간시기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노동신문’에 나타나는 김일성의 사진에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순간을 포착한 사진의 비율이 높았던 것이다. 1967년이 지난 뒤 김일성의 사진은 ‘연출된 사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출 사진이 증가한다는 것은 사진 속의 포즈와 줄거리를 누군가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신문 본사정치보도반

    다섯째, ‘1호 사진’은 불필요한 정보를 드러내지 않는다. 북한 방송에는 당연히 김 위원장 관련 뉴스가 많이 나온다. 특기할 것은 방송에서도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사진 한 장을 화면에 몇 초씩 띄워놓고 아나운서가 멘트를 덧붙인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가 흔히 들어본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20장의 사진이 공개됐다”고 하는 것이 이런 맥락이다. 동영상 화면이 없는 TV 뉴스는 우리에게 낯설고 단조롭다. 집중해서 보기도 어렵다.

    북한은 왜 김 위원장의 동정보도를 하면서 동영상 화면을 이용하지 않는 것일까? TV와 영화를 선전선동의 중요 도구로 여기는 사회에서 기술력이 뒤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사진이 통제 가능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글과 달리 동영상을 통해 기자들의 의도와 상관없는 다른 정보들이 독자 및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사진 역시 불필요한 정보가 외부로 노출될 수 있지만 동영상에 비해서는 훨씬 통제가 쉬운 매체이므로 최고 지도자의 행보를 보도할 때 유용하다. 북한은 김 주석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최고 지도자 관련 보도를 해왔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의 생활을 담은 동영상 화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화면을 영화처럼 편집해서 보여준다. 정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북한의 의도는 사진설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 위원장의 사진에는 시간과 장소, 촬영자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간, 장소, 촬영자 정보가 기술됐지만 1967년부터 정보를 최소화해왔다.

    여섯째, 전담 사진기자들이 촬영한다. 1967년까지만 해도 ‘노동신문’ ‘노동자신문’ 등 각각의 매체가 따로따로 김 주석을 촬영했지만 현재는 전속팀이 전담해서 촬영해 배포한다. 전담해서 찍는 사람이 모두 몇 명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들은 ‘노동신문 본사정치보도반’ 소속의 기록사진 전담 사진기자와 화보팀 소속의 예술사진 전담 사진기자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호 사진가’들은 평양연극영화대학 촬영학부 또는 김일성종합대학 신문보도학부에서 양성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聖畵, 佛畵 닮은 ‘1호 사진’

    일곱째, 가장 중요한 사람이 화면 가운데에 서 있다. 김일성 생전에는 화면의 중심에 항상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사후에는 김 위원장의 얼굴이 지면의 한가운데에 있다. 2009년 1월18일 기념사진은 좌우의 인원이 다르다. 각각 4명과 5명이다. 그런데다 김 위원장은 가운데에 위치한다. 사진의 왼쪽 여백이 오른쪽 끝 여백보다 크기 때문이다. 또한 왼쪽 줄 배열을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느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을 화면 가운데 위치시키고자 북한이 꾸준히 써 온 방법이다.

    주인공을 사진 가운데에 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겠지만 북한 이외의 사회에서는 주제가 되는 요소를 화면의 가운데 놓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진구도는 황금분할비에 따라 화면의 가로 또는 세로를 3분할해 주인공을 배치한다. 대칭구도는 성화(聖畵)나 불화(佛畵) 등 종교화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김 위원장 관련 사진의 70% 이상이 좌우대칭형 구도다. 구소련이나 중국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이런 식의 사진 촬영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이는 북한 신문기자들이 하는 의도적인 편집의 결과다.

    가장 중요한 인물임을 강조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히틀러는 자신의 작을 키를 숨기고 위대한 지도자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카메라를 얼굴보다 낮은 위치에 놓고 촬영하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물 사진의 경우, 낮은 데서 올려보는 앵글(로앵글)은 인물이 관객 위로 솟아오르게 만들며, 오만함과 우월감을 표현하게 한다. 북한은 이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히틀러처럼 얼굴이 갸르스름한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는 촬영법이지만 김일성-김정일 부자처럼 턱이 넓은 경우 턱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화면 가운데에 주인공을 두는 방식은 북한이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든 나름의 매뉴얼인 셈이다.

    최근에 공개되는 ‘1호 사진’은 위에서 언급한 전형적인 특징을 다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이상설 이전의 사진과 똑같은가? 약간의 변화가 있다. 건강이상설 이후 북한이 공개하는 사진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김 위원장의 신발이 잘 드러나는 사진이 많다는 점이다. 북한 기자들은 최고지도자의 약점을 사진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노동신문’에 나오는 김일성 사진의 95%는 그의 왼쪽 얼굴이었다. 오른쪽 목에 종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작은 키가 핸디캡이어서 키높이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는 사실은 쉽게 파악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그 사실을 안 것은 김 위원장이 2002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외신 기자가 촬영한 사진을 본 후 한국 보수단체가 시빗거리로 삼으면서부터다. 북한 매체에 김 위원장 사진이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도 키높이 구두를 뒤늦게 발견한 것은 북한에서 나오는 사진들이 김 위원장의 전신을 촬영할 때 거의 정면에서만 촬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구두는 보여도 뒷굽의 높이는 보이지 않는다. 김일성의 ‘얼짱’ 각도가 왼쪽이었다면 김정일의 ‘얼짱’ 각도는 정면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사진들에서 북한은 굳이 김 위원장이 와병 이후 신기 시작한 굽이 낮은 신발을 감추지 않는다. 측면에서 촬영된 전신사진도 많이 나온다. 낮은 신발은 건강 이상설의 방증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해 말부터 특수조명 사용

    지난해 12월과 올해 1, 2월 북한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사진에선 또 하나 중요한 변화가 보인다. 지난해 12월2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 두 장을 공개했다. 평안남도 남포시에 있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시찰하는 모습을 찍은 것. 조선중앙통신은 촬영날짜가 최근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개한 사진은 김 위원장이 화면 정가운데에 있는 점과 ‘본때를 보이자’는 선전구호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1호 사진’이다.

    특기할 점은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특별한 조명장치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 주변 등장인물의 오른쪽, 왼쪽에 생긴 그림자를 보면 2개 이상의 대형 조명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예전에 예술공연단 또는 외국 대사관 직원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2개 이상의 대형 조명을 사용한 경우는 몇 번 있었다. 하지만 평양시내의 건물에서 촬영하는 기념사진이 아니라 현지지도를 나간 지방의 건물에서 대형 조명을 설치하고 촬영한 사진은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사진기자의 처지에선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지난해 12월23일은 김 위원장이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지 17주년을 맞은 특별한 날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촬영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김 위원장의 사진에는 대형 조명의 흔적이 계속 나타난다. 1월7일 사진을 보면 그림자의 위치가 카메라와 수평이 아니다. 카메라의 오른쪽에 강한 빛이 있다. 카메라와 떨어진 곳에 조명이 있다는 의미다. 1월17일 사진에서 과자공장 여직원 손가락의 그림자는 아래에 있다. 조명이 천장에 있는 것이다. 그림자의 농도를 고려한다면 ‘아주 강한 조명’이라고 할 수 있다.

    1월18일 사진을 보면 환하게 웃는 김정일의 선글라스에 5개의 캐치라이트(Catch Light)가 기록되어 있다. 캐치라이트는 눈동자 또는 안경 등에 빛의 반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 사진에서 깔끔하게 표현된 캐치라이트는 일반적인 카메라 플래시를 사용했을 때와는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또한, 하얀 눈밭의 밝은 배경과 그 앞 피사체의 노출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도록 촬영하려면 일반 카메라 플래시의 광량으로는 불가능하다. 카메라 플래시의 3~4배 되는 강한 라이트를 카메라 바로 위 또는 사진기자 뒤에서 누군가 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촬영하면서 대형 조명을 사용한다는 것의 함의는 무엇일까?

    사진 속 김 위원장의 얼굴은 밝아지고 있다. 얼굴색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1월16일 껌 공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의 얼굴색은 그의 옆에서 설명하고 있는, 화장 한 여성의 얼굴색과 비슷하게 밝다. 환갑을 훨씬 넘긴 남자가, 게다가 현지지도 등 야외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온 김 위원장의 얼굴색이 그 정도의 밝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김 위원장이 얼굴에 메이크업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이 메이크업을 하고 조명을 받으며 기록 영화 촬영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 위원장이 2008년 말과 2009년 초 겨울 동안 왕성한 현지지도 활동을 했던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

    영상은 인간이 특별한 의도를 갖고 제작한 것으로, 일정한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 북한의 ‘1호 사진’ 역시 인간의 의지에 의해 탄생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호 사진’을 연출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진기자일 수도 있고, 의전담당 관료일 수도 있고, 김정일 자신일 수도 있다. 북한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온 ‘1호 사진’은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활용돼왔다. 이것은 북한의 정치지도자와 권력이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현실과 유리된 현실’을 북한 인민들과 외부세계에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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