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잃어버린 김치를 찾아서

생지와 묵은 지, 익은 지에 깃든 어머니의 손맛, 숨결

  • 김화성│동아일보 편집국 전문기자 mars@donga.com│

    입력2009-03-05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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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삭은 홍어 같기도 하고, 푹 익은 홍시 같기도 하고, 조선간장으로 담근 몇 년 묵은 게장 같기도 하고. 밥도둑 밥도둑해도 천하의 이런 밥도둑이 따로 없다.
    잃어버린 김치를 찾아서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상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 먹고 싶다.

    -정일근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제’

    “아이고, 호랭이 물어가네!! 올 시한(겨울) 날씨가 추웠다가, 더웠다가 미친년처럼 떠들어싸터니, 짐장헌 지 열흘이 넘었는디 아직도 지(김치)가 미처서 못 먹것고만이잉! 뻣뻣허고 씁쓸허니 맛이 하나도 안 들어부렀네! 지국(김치국물)도 익을라먼 한참 걸리것고….”

    새벽잠결에 밖에서 어머니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얼마 전 담근 김장김치 맛을 보았나 봅니다. 마당가 장광에서 김칫독 뚜껑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어머니의 가랑잎 밟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 말씀마따나, 예년 같으면 지금쯤 김치가 들척지근하니 맛이 들었을 만도 한데, 아직도 ‘쌩지(생김치)’에서 익을락 말락 지랄 같은 상태인가 봅니다. 한마디로 김치가 설익은 것이지요. 김치가 미쳐버린 것입니다.

    김장한 뒤 바로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그랬을 겁니다. 한 사나흘 영하 1~2℃쯤 죽 이어져야 서서히 맛나게 익었을 텐데….

    흔히 날씨가 떠들면(나부대면) 김치가 잘 미칩니다. 바람까지 씽씽 들까불고 있으니 ‘생지가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는 김치가 뻐셀뿐더러, 쓴맛까지 나서 먹기에 영 거시기합니다. 도리 없습니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요.

    김치는 생지, 익은 지, 묵은 지가 있습니다. 생지, 익은 지, 묵은 지는 김치를 담글 때부터 다릅니다. 절이는 것도 다르고, 소금을 넣는 양도 다릅니다. 생지는 소금을 약간 넣지만, 몇 년씩 삭힐 묵은 지는 생지보다 소금 넣는 양이 훨씬 많습니다. 생지는 하루나 이틀 정도 절이지만, 묵은 지는 보통 열흘 이상 푹 절여야 합니다.

    장독대, 헛간, 대밭

    보관하는 곳도 다릅니다. 좀 일찍 먹을 생지는 장독대 김칫독에 넣어둡니다. 겨우내 먹을 익은 지는 어두컴컴한 헛간 독에 보관합니다. 뒤란 응달에 김칫독을 땅에 묻고 그 속에 넣어두기도 합니다. 물론 그 위에는 반드시 짚으로 이엉을 이어 덮었습니다. 그 옆엔 구덩이에 숨구멍 하나만 만들어놓고, 무나 배추도 통째로 그대로 묻었습니다. 풋것이 먹고 싶은 함박눈 펑펑 내리는 한겨울, 통무나 통배추를 꺼내 생지나 생채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맛이란 한마디로 ‘쥑여’줍니다. 한겨울 땅속에 있었던 무 머리에는 연초록 싹이 우우우 돋아 있고, 배추는 병아리 같은 연노랑 색깔이 눈부시게 빛이 납니다.

    묵은 지는 시원한 대밭이나 종일 볕이 들지 않는 후미진 곳에 김칫독을 묻고 그 속에 보관했습니다. 땅도 더 깊게 팠고 이엉도 몇 겹으로 이어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김치 묻은 날짜를 적은 팻말을 세웠습니다. 한번 묻은 묵은 지 김칫독은 1, 2년 동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생지는 단순히 무나 배추 겉에 양념을 묻히는 것입니다. 무 배추의 세포조직이 숨죽지 않고 아직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가령 겉절이에는 배추의 풋내와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양념 맛이 제각기 따로 납니다. 한겨울에 먹는 생채무침은 무의 날것 맛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마늘과 생강 맛도 그대로입니다. 바로 그것이 생지 먹는 맛입니다.

    아삭아삭 풋것 깨무는 소리도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 같아 참 듣기 좋습니다. 모든 김치는 쇠칼을 대지 말아야 합니다. 가닥째 손으로 찢어 먹거나 통째로 밥 위에 놓고 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그중에서도 생지는 더욱 그렇습니다. 쇠칼을 대면 그 쇳내가 역하게 코를 찔러 생지 맛이 한순간에 달아나버립니다.

    익은 지는 담근 지 최소 한 달은 넘은 김치를 말합니다. 그쯤 되면 김치에 간이 배기 시작합니다. 무나 배추의 뻐센 성질이 한풀 꺾이고, 소금과 양념 맛이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합니다. 소금의 짠맛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해 조금씩 단맛과 신맛이 생깁니다. 양념 맛도 소금과 다른 양념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 고유의 맛이 조금씩 변합니다. 그것이 바로 익은 맛이고 삭은 맛입니다.

    김치는 역시 익고 삭아야 비로소 김치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얼마만큼 익었느냐, 어느 정도 삭았느냐에 따라 맛도 천차만별입니다. 삼천리 방방곡곡 집집마다 김치 맛이 모두 다른 까닭입니다.

    묵은 지는 적어도 1년 넘게 숙성되고 발효된 김치를 말합니다. 남도에 가면 2~3년 묵은 지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4~5년 된 것들도 있습니다. 아주 푹 익고 곰삭아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무나 배추 젓갈 고춧가루 마늘 생강 소금 등 모든 것이 제 고유의 맛을 버리고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머니의 놀이동산

    모두 한데 어우러져 묵은 지를 만듭니다. 새콤달콤하면서 구수하고 기름이 자르르 흐릅니다. 잘 삭은 홍어 같기도 하고, 푹 익은 홍시 같기도 하고, 조선간장으로 담근 몇 년 묵은 게장 같기도 합니다. 입에 넣으면 금세 사르르 녹습니다. 밥도둑 밥도둑 해도 천하의 이런 밥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호랭이 물어가네.’

    40년도 더 전에

    우리 할머니 남양 홍씨가

    혼잣말로 내뱉던 말씀,

    말없이 말없이

    할머니로만 살다가

    손녀딸 손가락이라도 좀

    삐끗하면

    빨간 피 몇 방울

    비치기라도 하면

    손 저으며 눈 감으며

    하시던 말씀

    ‘호랭이 물어가네.’

    참말로

    그놈의 호랭이가 물어갈

    아픈 날들은 가고

    호랭이가 물어갈 쓸쓸한 날들도 가 버린

    오늘

    우리 할머니 남양 홍씨가 마음속에 감춰둔

    말씀 곱씹어 보네

    아, 호랭이가 물어갈 썩을 놈의 시간들

    -이진숙 ‘사랑스런 욕’

    어머니는 늘 울안 남새밭에서 놀았습니다. 상추 고추 아욱 가지와 놀았습니다. 텃밭의 무 배추 파 쑥갓 마늘 푸성귀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채소에 조금만 벌레가 먹어도 “아이고, 호랭이 물어가네!”라며 쯧쯧 혀를 찼습니다. 울안 텃밭은 어머니의 놀이동산이었습니다. 채전 채소들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어머니 발걸음 소리 듣고 컸습니다. 강아지 새끼들처럼 구물구물 컸습니다.

    어머니는 닭장 옆에 가지를 심고, 돼지 막 옆에는 고추를 심었습니다. 햇볕 잘 드는 탱자나무 울타리 쪽엔 상추 배추 아욱 쑥갓 마늘을, 모래 많은 감나무 아래엔 생강과 땅콩을, 뒤쪽 흙 담벼락 쪽엔 머위 딸기 도라지를, 탱자나무 울타리 밑엔 호박을, 뽕나무 아래 서늘하고 습한 곳에는 토란을, 부엌 가까운 곳엔 솎아 먹어도 자꾸만 자라는 부추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쌀뜨물이나 허드렛물을 부추 밭에 주었습니다. 부추는 풀에서 나는 젖입니다. 아무리 자르고 또 잘라 먹어도 며칠만 있으면 금세 자랍니다. 뱃속이 헛헛할 때는 부추가 최고입니다. 부추김치 부추장아찌는 물론이고 비 오는 날 부쳐 먹는 부추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맛있습니다.

    우물가 허드렛물이 도랑을 타고 나가는 텃밭에선 미나리가 씩씩하게 자랐습니다. 그 더러운 시궁창에서 미나리는 파릇파릇 줄기차게 싹을 밀어 올렸습니다. 겨울엔 아이들이 미나리꽝에서 얼음을 탔습니다. 미나리는 볕이 잘 들지 않아도, 가물어서 땅이 메말라도 파랗고 싱싱하게 잘도 자랐습니다.

    문득 살짝 데쳐서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미나리강회가 생각납니다. 저절로 입 안에 침이 혼곤하게 고입니다. 아삭아삭 씹는 맛과 그 향긋한 냄새, 생선매운탕에 넣으면 한순간에 비린 맛을 덮어버리는 그윽한 향기. 한겨울 눈으로 보기만 해도 기운이 샘솟는 그 푸르름.

    어머니는 닭똥과 돼지 똥 그리고 부엌 아궁이의 몽근 재를 고추 마늘밭 고랑에 뿌려줬습니다. 아침마다 요강소매(오줌)도 뿌려주었습니다. 우리 집 여자들 전용인 사기요강 오줌은 고추밭에 부었고, 주둥이가 너부데데한 남자들 전용 놋요강오줌은 무 마늘 밭에 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아이 많이 난 동네아줌마가 고추 모종할 때 인기였던 것이나, 아들 많은 집 아저씨가 무 마늘밭 갈 때 인기였던 거나 마찬가지 이치였습니다.

    김장하는 날은 동네 잔칫날입니다. 동네마다 아낙네들 옹기종기 모여 김장품앗이하던 정경이 아련합니다. 마당에는 이미 김장배추가 가득합니다. 고추 소금 마늘 파 생강 굴 갓 당근 설탕 새우젓 황석어젓 멸치젓 청각 갯새우 깨 동태 낙지 등도 크고 작은 옴박지에 담겨 있습니다.

    배추는 김장 며칠 전부터 절여놓은 상태입니다. 생지, 익은 지, 묵은 지에 따라 절이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절이는 것은 몸에 술이 서서히 젖어드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과 같습니다. 배추에 소금이 알게 모르게 천천히 배어드는 것입니다.

    같은 배추라도 두꺼운 뿌리 쪽 부분은 진한 소금으로 절이고, 노란 잎 부분은 묽은 소금으로 절이는 것도 다릅니다. 그래야 고른 맛이 우러나옵니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김장하는 우물가를 뱅뱅 돕니다. 덩달아 부엌 강아지도 천방지축으로 마당을 뛰어다닙니다. 마당 모퉁이엔 장작불이 벌겋게 타오릅니다. 부엌 무쇠 솥에선 “치익~치익~” 소리를 내며 뭔가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중국김치와 공장김치

    아이들은 어쩌다 배추꼬랑이를 얻어먹습니다. 오호라! 상큼하고 코를 살짝 찌르는 매운맛. 거기엔 어머니 손에 묻은 매콤 짭쪼름한 고춧가루와 젓갈냄새도 버무려 있습니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아스라이 떠오르는 ‘김장김치의 추억’. 배추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고들빼기김치, 파김치, 갓김치, 섞박지…. 젓갈도 조기젓, 새우젓, 황석어젓, 갈치젓, 까나리젓 대구아가미젓 등 가지각색입니다.

    김치는 북쪽 지방으로 올라갈수록 싱겁고 맵지 않습니다. 국물도 많습니다. 남쪽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짜고 맵고 국물이 없는 편입니다. 이것은 날씨와 관련이 있습니다. 더운 곳일수록 땀을 많이 흘려서 소금 섭취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전라도 김치는 찹쌀죽을 돌확에 갈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념도 많이 써 걸쭉합니다. 한여름 열무김치를 담글 때도 반드시 찰밥을 짓이겨 넣습니다. 그래야 칼칼하고 시원하고 들척지근합니다. 이 때 고추는 돌확에 갈아야 합니다. 칼로 잘게 썰어 넣으면 열무의 풋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김 모락모락 나는 고봉 흰쌀밥에, 어머니 손맛 듬뿍 담긴 김치 한 가닥 쭉 찢어 걸쳐 먹으면 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김치를 찾아서

    전라도 명물음식인 향원당 묵은지.

    김치는 삭혀 발효시키는 음식입니다. 젓갈이나 간장 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발효식품들이 한데 어우러지면 그 맛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스카치위스키 만드는 사람들은 위스키 숙성을 ‘신의 몫(God‘s Share)’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립니다. 위스키의 발효 결과는 자기들로선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김치는 어머니의 손맛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기온이나 날씨처럼 ‘신의 몫’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스카치위스키의 그것보다는 훨씬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손맛이 절대적입니다. 어머니의 손맛은 며느리와 딸에게로 대대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 김치는 이제 서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전국 김치가 통일되어가고 있습니다. 공장김치가 아침 밥상에 오른 지는 한참 됐습니다. 어느 집에 가도 그 김치가 그 김치입니다. 맛이 비슷비슷하고 달착지근한 단맛이 진합니다. 생지, 익은 지, 묵은 지의 독특하고 감칠맛 같은 깊은 맛이 사라졌습니다.

    식당김치는 아예 김치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무나 배추에 양념 무친 흔적만 날 뿐입니다. 깊은 맛은커녕 생김치의 풋풋한 맛조차 없습니다. 짠맛에 고춧가루 냄새만 역하게 날뿐입니다. 물맛 가시지 않은 김치찌개 같습니다. 요즘엔 중국김치까지 몰려와 국적불명의 맛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치는 얼마나 삭혔느냐, 얼마나 묵었느냐, 배추 소금 젓갈 양념이 얼마나 절묘하게 어우러졌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중국김치나 공장김치는 겉으로만 시늉을 내고 맙니다. 한마디로 ‘얼빠진 김치’가 돼버렸습니다.

    나박김치와 겉절이

    김치 종류도 가짓수가 날로 줄고 있습니다. 동태 오징어 낙지 대구 홍어섞박지나 통대구 김치는 요즘 보기 힘듭니다. 게쌈김치 더덕김치 햇도라지김치 생두릅김치 미나리김치 부추젓김치 우엉김치 수삼나박김치 풋감김치 근대김치 풋콩잎김치 호박김치 고구마줄기김치 고춧잎김치 등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배추에서부터 소금 고춧가루 젓갈 마늘 생강 파 미나리 등 각종 재료도 제대로 국산을 썼는지 아니면 중국산인지, 반반 섞은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식당김치 그냥 모르 체하고 먹어야지, 알기가 겁부터 납니다.

    한때 역대 정권을 김치에 비유한 우스갯소리가 시중에 떠돈 적이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보쌈김치, 전두환 정권은 깍두기김치, 노태우 정권은 물김치, 김영삼 정권은 파김치, 김대중 정권은 나박김치, 노무현 정권은 겉절이김치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보쌈김치는 정권에 대드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 중앙정보부에 보쌈 싸듯이 데려다가 치도곤한 것을 비유한 것이고, 깍두기는 조직폭력배의 깍두기머리를 상징한 것입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었던 6공화국 물태우 정권을 빗대어 물김치라 한 것이고, 외환위기를 부른 YS정권은 자연스럽게 파김치가 됐습니다.

    잃어버린 김치를 찾아서

    2008년 12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정문 광장에서 열린 ‘사랑의 대바자회’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여한 연예인들.

    DJ 정권은 김치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김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모호한 정체성 때문에 나박김치라고 부른 것이라 생각됩니다. 겉절이야 설익은 사람들이 입으로만 설치는 것을 풍자한 것이겠지요. 어쨌든 각 정권의 잘잘못을 떠나 제각각 특색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특색들을 시간의 실로 한 줄에 꿰면 바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보쌈김치는 보쌈김치대로, 깍두기는 깍두기대로, 나박김치나 겉절이는 각각 그 나름대로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그 맛과 평가는 역사의 몫입니다.

    김치 맛의 본질은 곰삭은 맛입니다. 시어 문드러지기 직전에 나는 곰삭은 맛. 강된장이나 100년 묵은 간장에서 나오는 너무나 한국적인 맛. 그 맛이 바로 그 집의 음식 맛을 좌우했습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방방곡곡 집집마다 제각기 음식 맛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보면 짜고, 달고, 쓰고, 시고, 매운맛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세월이 만들어주는 ‘곰삭은 맛’도 있습니다. 제아무리 까막눈 할아버지도 칠순이 넘으면 사는 이치를 깨닫습니다. 세월에 닳고 닳다 보면 성자가 돼갑니다.

    곰삭지 않은 삶이나 음식은 겉절이와 같습니다. 남도에서는 곰삭은 음식 맛을 ‘개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음식이 아무리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워도 개미가 없으면 맛이 없는 것입니다. 소리꾼도 마찬가지입니다. 날 때부터 타고난 ‘천구성’보다는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수리성’을 으뜸으로 칩니다. 소위 ‘왱병 모가지 비트는 소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

    대한민국은 숨이 턱턱 막힙니다.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왕따가 되기 십상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사람들이 와아! 밀려갔다가, 우우! 밀려다닙니다.

    어스름 새벽, 어머니는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논일 하다가 점심 먹으러 잠깐 집에 올 때도 푸성귀 밭부터 살폈습니다. 김치는 저녁을 먹은 후 밤늦게 담갔습니다. 모든 김치재료는 울안 텃밭에 있었습니다. 소금이나 젓갈을 빼놓고는 뭐 하나 장에 나가 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텃밭은 자급자족의 작은 공동체였습니다.

    칼칼한 국물에 온갖 양념 보쌈김치. 콧잔등 찡하게 맵고 시원한 총각김치. 혀끝에 쓴맛 살짝 걸치는 고들빼기김치. 상큼하고 풋풋한 배추겉절이. 미나리 향기에 아삭아삭 씹히는 나박김치. 바다 냄새 물씬 짭조름한 생굴김치. 아이들 즐겨 먹는 담백하고 순한 백김치. 새콤달콤 오이나박김치. 곰삭은 게장 맛 묵은 지. 동지섣달 밤 사르락사르락 격자문 창호지에 눈발 부딪힐 때, 메밀묵과 함께 먹는 살얼음 낀 동치미국물.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김치를 담그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서울 사는 아들네들을 위해 담그는 김치는 소금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입맛을 잃어버리신 것입니다. 간을 맞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 자식들도 입맛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맛있던 김치를 다시는 맛볼 수 없었습니다. 들숨과 날숨 그 짧은 사이에 우리 생이 있듯이, 생지와 묵은 지 그 사이에 음식 맛이 있는 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가꾸던 울안 텃밭은 마른 풀만 겨울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밤엔 그곳에 달과 별이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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