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7명의 부녀자를 연쇄 살해한 강호순.
허탈한 첫 만남. 하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수사팀은 참 많은 노력을 했다. 강씨를 피의자로 확신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 자료도 이미 확보한 상태. 첫 번째 단서는 CCTV였다. 경찰은 여대생 안씨가 사라진 다음날인 12월20일 수사본부를 차린 이후 줄곧 범인의 동선을 추적했다. 안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군포보건소와 휴대전화가 꺼진 안산시 건건동, 그리고 안씨의 신용카드로 범인이 현금을 인출한 안산시 성포동 등 6km에 이르는 구간에 설치된 CCTV 310여 대를 샅샅이 뒤졌다. 범행시간대(오후 3~7시) 이 지역을 통과한 차량은 7000대가 넘었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이정달 팀장의 말이다.
“차량들의 실소유자와 명의자를 일일이 만나고 다니며 알리바이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계산을 해보니 범인이라면 사건 당일 오후 3시22분께 우리가 예상한 동선을 반드시 통과할 수밖에 없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관건은 그 시각 그 동선을 지나간 범인의 차량을 찾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강씨의 검은색 에쿠스가 지목됐다. 수사팀은 예상 동선 중 일부인 안산시 건건동의 도로와 화성시 매송면 원리 도로 등에 설치된 CCTV에 공통적으로 포착된 이 차량에 주목했다. 수사팀이 예상했던 시간에서 약간 벗어나긴 했지만 문제의 차량은 그 무렵 분명히 수사팀이 지정한 동선에 출현한 ‘용의 차량’이었다.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증거를…”
이 무렵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이 용의차량으로 지목한 강씨의 차량이 불에 탄 채 발견된 것이다. 1월24일의 일이었다. 수사팀은 같은 날 오전 11시 반 강씨가 일하는 업소로 다시 찾아갔다. 화재 부분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에 데리고 왔다. 이날 그를 대면한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한춘식 형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강호순은 그날도 근무 중이었다. 멀리서 지켜봐도 너무도 평범한 모습이었다. 화재 부분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고 하니 처음에는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조사에 응했다. 하지만 멀쩡한 차량에 불이 난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며 얼버무렸다. 그리고 ‘언제 보내줄 거냐’ ‘일하러 가봐야 한다’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때쯤 범인이란 직감이 들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용의 차량에 불을 지른 건 강씨의 치명적 실수였다.”
뜬금없는 차량 화재 외에도 수사팀은 강씨가 2008년 9월말과 12월말, 2009년 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컴퓨터 운영시스템을 새로 포맷한 뒤 2007년 1월로 시간을 조작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첫 번째 경찰조사를 받은 1월23일과 24일에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경찰은 강씨가 컴퓨터 사용 흔적을 없애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으로 확신했다. 수사팀은 1월24일 오후 5시30분 강씨를 긴급체포했다.
강씨는 수사과정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수사팀이 새벽 4시 반까지 강씨를 다그치고 얼렀지만 그의 태도는 꼿꼿했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증거를 가져오세요. 증거를…”이라며 배짱을 부렸다. 떨거나 당황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