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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언론 농락한 북한의 ‘사진 정치’

사진 속 김정일 영화촬영용 특수조명으로 병색 숨겼다

  • 변영욱│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

세계 언론 농락한 북한의 ‘사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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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뽀송뽀송한 피부는 지난해 말부터 사용한 특수조명 덕분
  • ● 얼굴색 감추고자 야외촬영 때도 대형조명 사용
  • ● 다큐멘터리 형식의 동영상 공개 임박한 듯
애처로운 행위자’ 북한이 승부수를 던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월23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함께 사진을 찍음으로써 건재함을 외부세계에 알렸다. 지난해 8월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졌다는 와병설이 처음 제기된 이후 첫 번째 공식 외빈 면담. 북한은 와병설 이후 간헐적으로 김 위원장의 동정 사진을 공개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사진을 살펴온 외부 관찰자들은 동영상을 공개하거나 외국 손님과의 면담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그의 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외부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북한이 두 장의 카드 중 한 장을 내민 것이다. 나머지 한 장의 카드도 곧 꺼내들 것 같다.

왕자루이를 면담하는 사진 속 김 위원장은 혈색이 밝은데다 머리엔 수술 흔적이 없다. 손으로 서류를 주고받는 모습도 보인다. 사진조작설이나 대역설은 더 이상 거론하기 어렵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 정보기관이 김 위원장의 와병설 초기에 증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날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중병을 앓은 것은 아닐지라도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왕자루이를 실내에서 만남으로써 김 위원장은 여태껏 입던 사진 속의 두터운 외투와 장갑을 벗었다. 오른쪽 손에 비해 좀 부어있는 왼쪽 손과 홀쭉해진 복부, 항상 신던 키높이 구두 대신 신은 낮은 신발은 지난해 10월 이전 사진 속 김 위원장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기자는 2004년부터 북한 ‘노동신문’을 연구했다. 북한 언론학 교과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을 ‘영상사진’이라고 기술한다. 그러나 복수의 탈북자와 북한 사진기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1호 사진’이라고 부른다.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도로를 ‘1호 도로’, 전용 열차를 ‘1호 열차’, 관련 행사를 ‘1호 행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프로파간다의 도구

건강이상설 이후 북한은 설(說)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사진을 통해 증명하려 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의 건강과 권력이 정상 상태임을 강변한다. 북한은 사진을 하나 공개하고 외국 언론이 문제점을 지적하면 거기에 답변하듯 또 다른 사진을 공개하면서 외부 세계의 문제 제기에 대응해왔다. 이러한 활동은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는 북한의 선전선동 담당자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언론매체에서 김 위원장의 얼굴이 사라진 것은 지난해 8월15일 ‘노동신문’이 군부대 시찰사진을 보도한 다음날부터다. 그로부터 57일 만인 10월11일 ‘노동신문’ 1면에 김 위원장의 얼굴이 다시 등장했다. 이 사진은 내부 단속용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 최고 지도자가 장기간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것에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북한 내부에 대한 정보 제공용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독자와 인민 처지에서 보면 이 사진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평범한 사진이었다. 전체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큰 크기로 실린 두 장의 사진은 기존의 사진과 큰 차이가 없다. 김 위원장의 사진은 촬영 시점을 명기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두 달 정도 지난 사진을 신문에 게재했더라도 특별히 조작했거나 독자를 속였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사진은 ‘노동신문’ 1면에 흑백으로 실렸으므로 북한 독자들이 촬영시점을 추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해상도 높은 컬러 사진을 본 한국 및 외국 언론들은 촬영 시점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10월 한반도의 날씨에 비해 숲과 풀의 색깔이 지나치게 초록빛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자 11월2일 북한 언론은 김 위원장이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김 위원장이 북한군 ‘만경봉팀’과 ‘제비팀’의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하면서 10여 장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 중 김 위원장의 얼굴이 등장하는 사진은 3컷. 이 사진들의 특징은 배경에 가을 단풍이 잘 보인다는 점이다. ‘2008년 가을 여전히 살아있는 김 위원장’을 증명하는 사진인 것이다. 한국 정부는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의 11월3일 브리핑을 통해 “북한 당국에서 발표한 ‘1호 사진’에 대해 제가 합성여부를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국가가 공식매체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진은 그대로 믿어주는 것이 관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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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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