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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언론 농락한 북한의 ‘사진 정치’

사진 속 김정일 영화촬영용 특수조명으로 병색 숨겼다

  • 변영욱│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

세계 언론 농락한 북한의 ‘사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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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팔도 멀쩡하다”

이날 북한이 공개한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자연스러운 사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았다’. 첫 번째 사진은 구도에서 북한답지 않았고, 두 번째 사진은 내용 면에서 자연스럽지 않았다.

첫 번째 사진(김 위원장이 의자에 앉아서 웃고 있는 사진)에서는 나머지 등장인물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1호 사진’에 누가 등장하는가는 북한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 만들기에 동참한 사람의 면면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관례다. 북한 신문에 기념사진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기념사진은 좁은 지면에서 가장 많은 얼굴을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등장인물이 검게 표현되는 사진은 아주 특이한 경우다. 이것은 김 위원장이 앉아있는 건물 밖의 가을 단풍을 보여주고자 카메라의 플래시를 강하게 터뜨렸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카메라와 가까운 부분에 있는 김 위원장의 얼굴은 뚜렷한 반면 뒤의 인물들에는 빛이 도달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얼굴이 화면 정가운데 위치하지 않은 것도 관례에 비추어 볼 때 배경을 살리기 위한 파격적인 사진 편집이다.

두 번째 사진(관계자들에게 훈시하는 사진)의 경우, 등장인물의 손에 수첩이 들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진에 비해 파격적이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를 하는 사진을 보면, 등장인물의 손에는 수첩과 필기구가 들려 있다. 한마디 한마디가 역사인 김 위원장의 담화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11월2일 사진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빈손이다. 김 위원장의 손이 주머니 속에 완전히 들어가지도, 뒷짐을 지지도 않은 점도 특이하다. 포토숍 프로그램을 이용한 조작사진이 아니더라도 외부세계를 염두에 둔 연출사진이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일상적인 현지지도 형태가 아니라 사진 촬영을 위해 상황을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은 중병설을 제기한 외부 세계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 ‘2008년 가을 김 위원장은 건재하다’는 걸 외부에 알린 것이다. 두 장의 사진에서 북한은 김 위원장의 오른쪽 뺨과 왼쪽 뺨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일각에서 제기한 뇌수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이 사진들에 대해 서울의 언론들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김 위원장의 왼팔을 지적하며 ‘팔에 마비가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북한은 11월5일 ‘왼팔도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손뼉 치는 사진을 조선중앙방송 TV 화면을 통해 공개했다.



사진 조작은 없다

김정일 사진은 2008년 11월5일 분기점을 맞는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이 유력해 보이던 이날 오전 8시경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대 두 곳의 장병들과 찍은 단체사진 두 장을 공개했다. 건강이상설 이후 처음으로 나온 단체사진이며, 등장인물은 각각 190명과 124명이다. 축구경기 관람 사진에 이어 3일 만이었다. 이 사진은 곧바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로 전송됐다. 이날 공개한 두 장의 군부대 시찰 기념사진은 기존의 ‘1호 사진’과 똑같은 형식이다. 김 위원장은 다수의 군인 가운데 서 있으며 연단 뒤편에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기존의 사진과 다른 점은 사진의 사이즈가 크다는 것이다. 각각 2513KB와 1986KB. 그동안 조선중앙통신이 전송한 ‘1호 사진’은 200~400 KB크기의 JPEG 형식 파일이었으며 1000KB가 넘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는 포토숍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저장하면서 압축 정도를 낮춰, 사진을 확대해도 해상도가 변하지 않게 했다는 뜻이다. ‘조작인지 아닌지 크게 확대해서 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점부터 나오는 사진들은 전형적인 북한의 ‘1호 사진’이다. 북한 사진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사진 조작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북한이 선전선동을 위해 사진조작을 일삼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북한은 1945년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환영 군중대회 사진에서 소련군 사령관들을 지움으로써 김일성이 처음부터 독자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였다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 1994년에는 백두산 천지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김일성에 비해 김정일의 키가 작은데도 비슷한 크기로 보이게 했다. 또 남로당의 총수 박헌영 등 숙청된 정치인들의 얼굴이 역사 자료 속에서 지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과거의 일일 뿐이며 아주 지엽적인 사례다) 현대의 북한 신문과 통신은 정치인의 얼굴과 관련해 조작 사진을 싣지 않는다. 북한은 사진 조작을 하는 대신에 상황을 연출하는 방법을 사용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만든다.

둘째, 지면을 독점한다. 1967년 이후 신문 1면에 등장하는 정치인은 김일성-김정일 부자 이외는 없다. 아주 예외적으로 2003년 2월23일 ‘노동신문 1면’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의 전신사진이 지면의 좌측하단에 세로 10cm 가로 6cm 크기로 실렸을 뿐이다. 1966년까지 북한 ‘노동신문’ 1면에는 김일성 이외 권력자들의 모습도 실렸다. 파워 블록(power block) 안에 제한적이나마 다원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북한 신문에 실리는 인물 사진 중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얼굴보다 큰 크기의 얼굴이 실리는 일도 없다. 김 위원장의 사진이 날마다 신문에 실리는 것은 아니고 월 평균 4회에서 6회 정도 게재되는데, 그때마다 해당 지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2001년 12월17일 ‘노동신문’에는 3개면에 걸쳐 9장의 김정일 사진이 실렸다. ‘노동신문’이 6면 발행 체제인 것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보도 행태다. 사진이 아닌 초상화가 실제 얼굴 크기로 1면을 차지하기도 한다. 신문에 실리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는 세로 길이 27~28cm의 크기다. 한국인의 얼굴 크기는 이마에서 턱 끝까지 평균 23.5cm. 초상화 아래 위 여백을 제외하면 실제 얼굴 크기의 80%에 달하는 크기의 초상화가 신문에 게재되는 것이다.

모두가 연출한 사진

셋째, 북한의 사진기자들은 김 위원장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클로즈업의 기준은 사진의 아래가 와이셔츠 3번째 단추 이상에서 찍었으냐, 더 밑으로 내려왔느냐다. 외부에서는 김 위원장의 혈색과 주름살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을 원하지만 북한 사진기자들은 그렇게 촬영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아온 김 위원장의 클로즈업 얼굴 사진은 모두 외국기자들이 찍었거나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서 얼굴만 확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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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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