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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이야기들을

  • 김갑수│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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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껏 휴대전화 번호를 몇 번이나 바꿨는가? 사람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데는 여러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새것이 주는 희열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귀찮고 피곤하고 때론 아프기까지 하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그래서 있는 모양이다.
  • 그러나 우리는 다만 익숙해서 편할 뿐 그 좋은 것의 진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새것에 또다시 눈길을 빼앗기는 이유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이야기들을
You changed nothing! ” 줄라이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이토가 외친 첫마디다. 그는 1991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묵었던 광화문의 내 독신 아파트 풍경을 떠올렸다. 1998년인가 결혼해 부인과 함께 찾아와 구경했던 내 공덕동 작업실 풍경 역시 기억해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게 똑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용물은 대부분 달라져 있었다. 오디오 기기는 전부 다른 것이고, 음반의 양은 상상할 수 없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토의 눈에 ‘킨상(이토가 나를 부를 때 이런 소리를 낸다)’의 공간은 언제나 똑같아 보이는 모양이다. 수많은 기기, 음반, 그리고 정신없이 쌓여 있는 책, 거기에 우중충하게 늘어져 있는 용도 불명의 소품들까지. 그렇구나! 나는 언제나 똑같다. 하나도 변치 않고 똑같아 보이는 세월을 몇십년째 흘려보내고 있구나!

이토와는 여러 해째 소식이 끊겨 있었다. 일본에 들르면 만나곤 했는데, 내 불찰이 컸다. 영문 편지에 답장하는 일이 여간 고되지 않아 여러 차례 미루었더니 그예 연락이 두절되고 만 것이다. 재작년에 두 차례나 도쿄에 들렀지만 미안한 마음에 연락도 못했다.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내 성향이 우리를 다시 연결해주었다. 모처럼 긴 휴가를 얻은 그가 오래된 내 휴대전화 번호로 국제전화를 걸어 통화가 된 것이다.

‘마이 애니멀 프렌드’

이토와의 인연을 거슬러 가본다.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직장이 출판사다. 산더미처럼 자료도서를 쌓아놓고 검토하는데(정확히 말해 커닝할 거리를 찾는데), 괜찮아 보여 골라 놓은 책의 뒷면에는 항상 후덕한 할아버지 캐리커처와 함께 같은 기획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나오 준(七尾 純). 일본의 유명한 아동도서는 죄다 나나오 준 선생을 거쳐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죄스럽기도 한 데다, 마음 깊이 우러나는 존경심을 참을 수 없어 긴 편지를 보냈다. 그 인연이 만남으로까지 이어졌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나나오 선생이 서울을 방문한 것이다.

인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나고야 공대 대학원생이던 나나오 선생의 아들이 배낭여행 삼아 서울로 나를 찾아왔다. 사시나무처럼 가냘파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함께 간 성균관대 앞 카페에서 나의 권유로 노래를 부르다 불같이 노한 주인장에게 쌍욕을 들으며 쫓겨나기도 했다. ‘어디 감히 왜놈 노래를 부르냐’는 우국지사의 불호령이었다. 그때 엉엉 우는 그를 달래다 우리는 형제처럼 가까워졌다. 대학원생 이토 요분은 세파를 전혀 겪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좀 늦은 나이에 장가를 들었을 때는 가장 먼저 새신부를 대동하고 도쿄의 나나오 선생을 찾아뵈었다. 물론 나고야에 사는 이토와도 며칠을 함께 보냈다. 가녀린 나무나 풀 같아 보이는 이토를 두고 나는 ‘플랜트’라고 불렀는데, 그는 나를 ‘마이 애니멀 프렌드’라며 놀렸다. 온갖 과잉으로 넘쳐나는 천성을 그도 알아 본 것이다.



나나오 준을 통해 알게 된 일본 출판계 전문인들이나 이토를 통해 만난 대학원생들은 좋은 일본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만나기 전에 한국에 대해 열심히 공부까지 하고 나왔다. 가령 “한국에 고추가 전래된 것이 불과 300년 전인데 왜 그렇게 맵게 먹느냐?”고 묻는다. 내가 알 턱이 있나! “중국과 일본은 모두 긴 나무젓가락을 쓰는데 왜 한국만 가느다랗고 짧은 쇠 젓가락을 사용하는가?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불편하지 않나?” 아휴, 생각이나 해봤나! 김유신 장군에 대해, 세종대왕에 대해, 혹은 인사동의 유래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캐묻는데 애고야, 뭐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나고야 공대생들은 나로 인해 한국 사람은 자기 나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토와 지낸 3월초 나흘은 흡사 안타깝게 헤어진 옛 애인과 재회해 보낸 시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도 벌써 서른여덟 살의 중견 사회인이다. 첫 인사 때 박사과정이었던 그의 아내는 대학교수가 됐고, 이토도 소니사(社)의 중견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하지만 녀석의 외양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싱겁게 웃기는 버릇도 여전하다. 세월도 그도 정지해 있는데 그의 사회적 지위만 불쑥 위로 치켜 올려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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