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집, 열차집, 영동골뱅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군요! ” 하는 이토의 탄성 때문에 새삼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는 처음 개설한 은행계좌 하나만 몇십년째 쓰고 있다. 신용카드 역시 그 계좌로 만든 것 하나뿐이다. 휴대전화 번호도, 유선전화 번호도 개통할 때 받은 그대로다. e메일 역시 처음으로 만든 유니텔의 유료 계정이 유일하다(왜 여태 돈 내고 e메일을 쓰냐는 지적을 자주 받는데, 바꾸기 싫어서 할 수 없이 매달 1만400원을 낸다).
하나만 고수하는 경향에 ‘입사치’를 빼놓을 수 없다. 맛난 것이 먹고 싶을 때 일삼아 찾아가는 식당이 셋 있는데 모두 수십년째 단골이다. 청계천 6가 천막골목 안쪽, 마른 날에도 질척질척한 철공소들 사이에 돼지곱창구이집 ‘부여집’이 있다. 1980년 봄날, 세상을 피해 백양사에 딸린 암자에 한동안 숨어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나를 데려갈 상이군인을 소개받은 장소가 부여집이다. 그때 이래 지금까지 나는 억척스러운 단골이다. 특히 하루 데이트의 종착지는 대부분 부여집이어서 주인장은 내가 사귄 여인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부여집 아저씨가 모르는 여인은 내가 사귄 여인이 아니라 그냥 여인이다. 물론 ‘그냥 여인’들과도 자주 간다. 언젠가는 KBS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여인과 함께 갔다가 내내 철공소 아저씨들의 부릅뜬 시선을 받아야 했다. 부여집에 갈 때마다 왁자하게 들리던 ‘씨부럴’ 등의 간투사가 그날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험악한 술집에 어울리지 않는 꽃을 두고 좌중에 긴장된 분위기가 깔렸던 것 같다. 주인아저씨는 비싼 오소리감투를 서비스로 내놓았다. 그날따라 유난히 옷차림이 화려했던 아나운서는 처음 먹어본다면서도 돼지 창자를 아작아작 잘 씹어 먹었다(고맙다).
종로 피맛골 안 ‘열차집’엔 오직 아내하고만 들른다. 그곳에서 오래 일한 할머니 종업원 두 분이 우리 부부 얼굴을 잘 아는 터라 다른 여인을 대동하기가 껄끄럽다. 돼지기름으로 부쳐낸 녹두빈대떡과 어리굴젓의 조화! 그 맛을 모르면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그 사람, 맛없는 사람이다. 그 피맛골이 곧 헐리는 모양인데, 내 집이 헐리는 것처럼 괴롭다(제발 여기저기 부수지 좀 마라! ).
‘치열한 철면피한 물질’
또 하나의 단골은 충무로 골뱅이 골목에 있는 ‘영동골뱅이’다. 이 집만 20여 년째 다녀서 무려 200군데나 된다는 인근 식당의 골뱅이 맛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인상 좋던 주인아주머니는 이미 은퇴하고 주먹코 아들이 이어받았는데, 텔레비전 맛집 소개에 여러 번 등장한 모양이다(나는 벽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 캡처 사진이 정말 보기 싫다). 영동골뱅이에서 나오면 전방 5m까지 마늘 냄새가 팍팍 풍긴다. 제아무리 ‘깔끔녀’라도 한 젓가락 먹어보면 이내 마늘과 파절임 범벅에 탐닉하고 만다. 나는 화사한 옷차림과 고운 화장발에서 과격하게 뿜어져 나오는 여인의 마늘 향기에 익숙하다.
우연히 선택된 대상 하나를 계속해서 끌고 가는 것, 되도록 변경하지 않으려는 것, 거기에 무슨 깊은 뜻이 있으랴만 굳이 찾자면 ‘과거 연민 미래 불안’이라는 내 숙명적 기질이 오래된 것과 편안한 조합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것은 특별한 것이다. 음식도 사람도. 시인 정현종의 오래된 첫 시집 ‘고통의 축제’에 이런 시구가 있다.
오오 노시인들이란 늙기까지 시를 쓰는 사람들. 늙기까지 시를 쓰다니! 늙도록 시를 쓰다니! 대한민국 만세(!) 그분들이, 예술보다 짧은 인생의 오랜 동안을 집을 찾아 헤매다 돌아온 어린애라는 느낌을 나는 참을 수 없다. 반갑구나 얘야, 내가 망령이 아니다. 얘야 소를 잡으마,’-‘노시인들, 그리고 뮤즈인 어머니의 말씀’ 중에서-
‘오랜 동안을 집을 찾아 헤매다 돌아온 노시인’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그토록 열망했던 시인의 삶이었건만 어느 결엔가 시는 나를 떠나가버렸다. 대신 ‘오랜 동안 헤매다 돌아온 어린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어린애 방식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런데 시가 떠나고 남은 자리, 남겨진 삶에 대한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시가 ‘고통의 축제’ 시집에 적혀 있다.
‘내 귀에 밝게 와서 닿는/눈에 들어와서 어지럽게 흐르는/저 물질의 꼬불꼬불한 끝없는 미로들./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능청스런 치열한 철면피한 물질! ’ -‘철면피한 물질’ 중에서-
정현종이 노래한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철면피한 물질’은 무얼까? 시 전문(全文)을 제대로 읽는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철면피한 물질은 진짜 물질이다. 시를 떠나보내게 된 배경에 온갖 종류의 물질이 개입돼 있다. 돈이거나 돈으로 산 물건들이다. 정말 철면피한 물질들이다. 참 쓸쓸한 일이다. 재산 따위를 쌓으려 애쓰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러모아놓은 오디오며 음반, 책들이 모두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불과하다. 참으로 ‘능청스런 치열한 철면피한 물질! ’
그런데 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오래된 것들은 더는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다. 분명 쇳조각이나 플라스틱이나 종이로 구성돼 있지만 거기에 세월이 담기면 물성 너머 어떤 자취가 드리운다. 물질이 추상화하고, 물질의 입자와 체적이 언어로 변용된다. 나를 스치고 지나간 세월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때로 수치스럽고 때로 치욕스럽고 너무 많은 순간 비겁하고 치사했다(차마 그 내역을 말할 수는 없다). 내 오래된 e메일과 휴대전화 번호와 은행계좌 따위가 바로 그 더러운 내역의 거주지다. 그러나 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더러운 사연들이 오래되면 적어도 나에게는 더럽지 않다. 웃기기도 하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다시 ‘고통의 축제’를 읽는다.
‘여기 우리는 나와 있네/고향에서 멀리/바람도 나와 있고 불빛도/평화가 없는 데를 그리움도 나와 있네.’ -‘외출’ 중에서-
오래된 것들. 참으로 오래된 것들. 어떤 우연의 개입으로 나에게 닿아 오랜 시간을 함께 흘러온 오래된 것들. 오래된 것들은 스스로 추억을 재구성해 현실의 나를 새롭게 조립한다. 간혹 나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낡아버린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느끼게도 만든다. 줄라이홀을 보고 20년 전의 작업실과 똑같다며 이토는 “You changed nothing! ”을 외쳤다. 그러니까 줄라이홀은 오래된 작업실이다. 오래된 공간이란 얼마나 다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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