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사실 ‘X세대’의 문화적 풍요로움은 경제적 풍요로움과, 선배들을 통해 확인된 대학생에게 보장된 미래 덕분이 컸다. 1990년대 학번은 최초로 재학 중 배낭여행과 단체관광 형태로 유럽을 비롯해 해외를 자유롭게 드나든 세대다. 그들은 아르바이트로 한 학기 등록금 정도를 모아 해외로 나갔다. 그게 당연했다. 4학년이 돼서야 바짝 취업준비를 하면 그들을 받아줄 일자리가 얼마든지 있을 것으로 믿었다. 선배 대부분이 그렇게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멋지게 한턱 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IMF’는 일순간 많은 기대를 꺾어버렸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채용 규모를 줄였고 아버지들은 갓 쉰 살을 넘겨서 퇴직을 종용당했다. 졸업이 다가올수록 공포는 커졌다. 막상 졸업한다 해도 받아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93, 94학번 복학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초반에 대학에 들어왔으나 군대에 다녀온 사이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제 힘으로 밥 먹고 살 상황’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이 됐다.
신입생들은 입학하는 순간부터 ‘스펙’을 높일 만한 공인 영어시험과 각종 자격증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도 부쩍 늘었다. 입학하는 순간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교생들처럼, 대학 신입생들 역시 학점과 ‘스펙’에 매달렸다. 이제 대학에서 낭만을 찾기 어렵다. 최근 불어닥친 경제 한파는 이런 분위기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비감 어린 호칭으로 불리는 지금의 20대. 달라지고 싶지만 그 가능성이 너무도 먼 곳에 있는 그들. 현실이 나를 갑자기 물어버릴 때, 그들을 위한 영화들을 살펴본다.
불투명한 미래, 서툴기만 한 20대
영화 ‘리얼리티 바이츠’는 코믹 배우로 잘 알려진 벤 스틸러가 감독한 작품이다.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현실이 나를 물다’ 정도가 될 이 영화는 ‘청춘스케치’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개봉한 지 15년 가까이 됐음에도 간간이 회자되는 이 영화는 무엇보다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베이비 아이 러브 유어 웨이’ ‘마이 쉐로나’ 같은 주옥같은 선율이 영화 전편을 수놓는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감히 명반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단지 노래가 듣기 좋아서가 아니라, 이 음악이 ‘현실에 물렸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는 네 명의 주인공, 그들에게 현실은 학교 울타리 안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비키, 트로이, 새미, 릴레이나 이 네 사람은 곧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간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릴레이나의 꿈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하지만 꿈을 이루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한편 평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트로이는 이미 직장에서 열두 번이나 잘린 청년이다. 어느 날 릴레이나는 잘나가는 직장에서 쫓겨나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때 그녀의 곁을 맴돌던 마이클이라는 사람이 부와 재능으로 릴레이나에게 접근한다. 미디어 업체 임원인 마이클은 릴레이나에게 꿈을 이뤄줄 수 있다고 말하고 실제 그녀의 작품이 전파를 타도록 돕는다.
문제는 방송된 영화가 당초 릴레이나가 만든 것보다 훨씬 상업적으로 편집됐다는 것. 마이클은 릴레이나의 작품을 순수 아마추어의 열정 표현 정도로 보고, 이를테면 프로페셔널하게 상업적 영상물로 재편집한 것이다. 릴레이나는 마이클에게 크게 실망하고, 자기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