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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수환 추기경 추모 특집

‘바보 철학’의 신학적 조명

“나는 깨닫지 못하고 사는 바보 내 삶을 미화하지 말라”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바보 철학’의 신학적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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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철학’의 신학적 조명

김 추기경은 사제들에게 손수 안부 카드를 보내곤 했다.

▼ 그럼, 선교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타종교에도 진리의 일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악의 유혹이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선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 그럼 선교할 대상은 어떻게 찾나요. 악의 유혹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울 텐데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가톨릭도 과거에는 타종교는 다 나쁘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선교하기가 도리어 쉬웠죠. 내가 아닌 것은 다 악으로 생각하면 됐으니까요.”

▼ 판단하기 어려우면, 순교하는 일도 드물어지겠네요.



“예전에는 종교 자체를 선교하기 위해서 목숨 바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대변하는 복음적 가치를 위해서 순교하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산 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던 오스카 로메로 주교님(1917~1980)은 군부정부와 싸우다 미사 도중에 암살되었죠. 예수님처럼 억압받는 이들을 대변하다 순교하신 것이지요. 추기경님께서 1964년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계실 때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한창 진행(1962~1965)되고 있었는데 당시 외신에서 회의내용을 받아 계속 기사로 내보내셨습니다. 주교가 된 다음에는 그것을 실천하려 노력하셨고요.”

▼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특징인 ‘타종교에 대한 포용’을 충실히 실천하신 거네요.

“네. 그렇지만 추기경님은 제2차 공의회의 주된 특징인 ‘교회가 자신만을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데에 더 큰 관심을 두셨다고 봅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 때는 무신론이 팽배해서 그런지 교회가 세상에 문을 닫곤 ‘교회 구원’에만 관심을 뒀습니다. 그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때부터는 자기만이 구원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현대 세계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을 보면 그러한 고민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 그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사제들 대부분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셨겠네요.

“적극적으로 참여한 분도 있고, 소극적으로 참여한 분도 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이 주관하시다가 돌아가셔서 바오로 6세 교황님이 공의회를 마치셨는데, 당시 임명된 추기경님 주교님 중에서 세상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진 분이 많이 계신 걸로 압니다. 교황청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이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하실 거라고 보고 임명하셨던 건지도 모르지요. 요즘에도 정의구현사제단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신부님이 있는 것처럼 견해가 다 같은 건 아닙니다.”

“순수한 동기는 탓하지 말라”

얘기의 주제는 자연스레 1975년에 만들어진 정의구현사제단으로 옮겨갔다.

▼ 김 추기경이 정의구현사제단을 만드신 건가요?

“추기경님이 만드신 건 아닙니다. 1974년 지학순 주교 사건을 계기로, 조직적으로 대항해야겠다는 필요성에서 사제단이 생긴 거지요. 물론 그 정신에는 동의하셨습니다. 1975년 시국강론이 실린‘추기경 김수환 이야기’283쪽을 보세요. ‘사건(유신정권 폐지를 주창한 ‘3·1명동 사건’) 관련 신부들을 무조건 잘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신앙적 소신과 양심에서, 나아가 더욱 밝고 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애국심에서 한 행동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방법을 탓하더라도 순수한 동기는 탓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방법 면에서는 생각을 달리 하신 걸로 압니다. 289쪽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신부들이 본당과 사목활동까지 나 몰라라 하고 밖에 나가 조직적 민주화 운동을 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았다. 불의에 저항하는 신부들의 올곧은 양심은 높이 살 만하다. 때론 정치 사회 문제에 나서서 의견을 밝히고 항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제 본연의 임무까지 등한시한 채 정치 사회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 더구나 사회참여 활동으로 교회가 분열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추기경님은 사제단이 기도회를 자주 여는 것에는 반대하셨습니다. 정부를 자극하면 할수록 우리의 선택 폭이 좁아진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 잦은 사회참여를 반대하시던 분이 정치에 대해 발언하신 이유는 뭔가요.

“1974년 7월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학생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서 하신 말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 ‘저도 각하께서 지적하신 정교 분리 원칙을 교회도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가 정부의 인사나 경제정책 등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도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그 나름의 인생관 사회관 세계관이 있고, 그 원리에 따라야 인간과 사회 또는 세계의 발전과 구원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정치, 경제가 여기에 위배될 때에는 발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과 사랑’ 250쪽)는 내용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 왜 그렇게 인권, 기본권을 중시하셨습니까.

“왜냐하면 인간의 기본권 존중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인권을 유린당해 눈물 쏟는 사람이 많아지면, 원한이 쌓여 우리 사회가 화해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아마도 이는 추기경님 자신이 독일 유학시절(1956~1963년)에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전공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

▼ 대다수 신부가 추기경과 같은 생각이었나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추기경님을 ‘권력욕과 허영으로 넘치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교황청에 투서성 고발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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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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