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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⑧

아일랜드가 빚은 명주, 그리고 아버지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아일랜드가 빚은 명주, 그리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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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가 빚은 명주,          그리고 아버지
제리는 법정에서 무죄를 항변했으나 경찰의 증거 조작으로 재판은 불리하게 돌아갔다. 폴이 뒤늦게 진실을 말했으나 그것도 소용없었다. 매춘부의 집에서 돈을 훔친 사실이 드러나면서 증언의 신뢰성이 추락한다. 배심원들은 제리와 그의 친지들이 유죄라고 결정한다. 제리는 무기징역, 아버지는 12년형, 고모는 14년형을 선고받는다. 재판이 끝난 뒤 폭발 테러의 주범인 바커가 다른 죄목으로 교도소에 들어온다. 바커는 누명을 쓴 제리 가족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다. 그러나 경찰은 되돌릴 수 없다면서 “모른 척하라”고 말한다. 바커는 제리와 조제프에게도 이 사실을 말한다. 제리는 누명을 썼음에도 바커가 아일랜드를 위해 용감한 행동을 했다고 추어올린다. 조제프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살인행위였다고 바커를 비난한다. 제리는 교도소에서 바커를 도우면서 영국인들과 대결하지만 바커의 지나친 폭력 지향에 실망한다. 아버지 조제프의 지병인 폐질환은 점점 더 악화한다.

이즈음 우연히 등장하는 이가 인권 감시를 위해 교도소를 방문한 여변호사 피어스(엠마 톰슨 분)다. 그는 조제프와 면담한 뒤 부자를 돕겠다고 결심한다. 제리는 피어스에게 아버지한테 헛된 꿈을 심어주지 말라고 말하지만 피어스의 노력으로 조제프와 제리의 억울한 사연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진다. 아버지의 설득을 받아들인 제리도 누명을 벗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 조제프가 지병으로 사망한다. 겉으로는 투정을 부렸지만 속으로는 아버지를 사랑했을 터. 제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피어스와 함께 법정 투쟁을 벌인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마침내 피어스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 제리와 지인들은 무죄를 선고받는다. 수감된 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엔 아일랜드의 국민주(酒)가 등장한다. 아일랜드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세계적 명주 기네스. 이 맥주는 제리와 폴이 만난 페리선에서 등장한다. 둘은 주크박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기네스를 마신다.

영화에서 이 술을 기네스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흑백의 아름다운 조화는 이 술이 기네스임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한다. 제리가 훔친 돈을 갖고 고향에 돌아온 뒤 거실에서 가족과 담소를 나눌 때 조제프가 마시는 술도 기네스다. 쉐리단 감독은 아일랜드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기네스에 대한 사랑을 이 장면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을 게다.



기네스북

아일랜드인의 기네스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상당수의 영화에서 아일랜드의 상징으로 이 맥주가 등장한다. IRA가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 ‘크라잉게임(The Crying Game)’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기네스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다. 우리는 ‘기네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맥주보다 ‘기네스 월드 레코드’를 먼저 떠올린다.

‘기네스북’은 자연·역사·과학·인문 분야의 특이한 기록을 수록한 책이다. 이 책은 1951년 기네스양조장의 책임자이던 휴 비버가 유럽에서 가장 빨리 나는 새가 어떤 종인지 궁금하게 여긴 데서 비롯했다. 이처럼 사소하면서도 흥미로운 호기심을 풀어주는 책이 등장하면 잘 팔리리라는 판단에서 기네스양조장은 기록광으로 소문난 노리스 맥훠터 형제에게 ‘월드 레코드 북’의 제작을 의뢰한다. 초판은 1955년 나온다.

기네스양조장은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1759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세운 회사다. 한때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생산회사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지금도 기네스는 고급 맥주의 대명사로 불린다.

흑맥주의 대표선수인 기네스는 잘 볶은 보리에서 비롯한 묵직하면서도 격조 있는 맛이 일품이다. 옻칠처럼 검고 광택이 나는 맥주를 하얗게 덮은 거품이 기네스의 알파요, 오메가다. 이 매혹적인 거품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비밀은 질소 가스에 있다. ‘드래프트 기네스’를 서빙할 때 쓰는 질소 가스는 생맥주를 서빙할 때 사용하는 이산화탄소 가스에 비해 용해도가 낮다. 낮은 용해도 덕분에 높은 압력이 만들어지고 높은 압력 덕택에 기포가 작은 크기로 형성된다. 작은 거품이 크림과 같은 형태로 모인 게 기네스 특유의 흰 거품 띠다.

하얀 거품

기네스를 따를 때는 컵의 4분의 3가량을 먼저 채운 뒤 기포가 충분히 위로 올라온(settling) 것을 확인하고 나머지를 채워야 한다. 그래야 거품이 아름답다. 기네스사는 ‘좋은 일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생긴다(good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라는 광고 문구를 통해 이 짧은 기다림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아일랜드가 빚은 명주,          그리고 아버지
김원곤

1954년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의학박사(흉부외과학)

우표, 종(鐘), 술 수집가

現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그런데 기네스사가 캔맥주와 병맥주를 내놓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질소 펌프를 사용할 수 없기에 생맥주와 같은 거품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기네스 애호가들은 캔 기네스와 병 기네스에 실망했다.

기네스사의 고민은 질소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볼을 개발하면서 해결됐다. 이 볼을 병이나 캔에 넣어두면 병, 캔이 열릴 때 발생하는 압력 차이로 질소가 볼의 작은 출구로 빠져나오면서 생맥주를 따를 때와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기네스사의 기술자들이 발명한 이 볼은 1988년 캔맥주에 처음 도입됐다. 지금 시판되는 제품에서 볼 수 있는 부유형 볼은 1997년부터 사용한 것이다.

맥주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기네스의 흰색 거품을 보면 목이 타게 마련이다. 오늘 저녁, 사랑하는 이와 함께 기네스를 들이켜는 건 어떨까? 그 사랑하는 이가 아버지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신동아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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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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